대한민국 최고 인사전문가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이 9일 고재학 논설위원과 정부 인사시스템 개선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 전 처장은 “국가대표급 인재를 뽑는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아이들 미래가 굉장히 암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고영권 기자

이근면(67) 초대 인사혁신처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인사전문가다. 글로벌 기업 삼성에서 36년간 인사 혁신을 이끌었다. 삼성 특유의 열린 채용과 직무적성검사(SSAT) 도입, 성과 중심의 인사시스템 정착 등이 그의 작품이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2014년 11월 박근혜 정부가 공직사회 혁신을 위해 신설한 인사혁신처 초대 처장에 임명됐다. 그는 19개월 간 민간전문가 영입을 늘리기 위한 개방형 임용제 개편, 공무원연금 개혁, 성과연봉제 확대 등 채용제도 및 인사 혁신에 큰 성과를 거뒀다.

최근 문재인 정부 2기 내각 구성을 놓고 인사 실패 논란이 거세다. 인사와 검증을 담당했던 청와대 인사수석ㆍ민정수석 등의 문책론도 제기된다. 박근혜 정부도 문고리 3인방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전횡으로 인사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왜 역대 정부마다 인사 실패 논란이 반복되는 걸까. 이 전 처장을 만나 정부 인사시스템 개선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인사(人事)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사람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다. 흔히 ‘인사는 만사’라지만, 실은 ‘인사는 만사의 시작’이다. 더 풀어서 얘기하면 조직의 성공을 위한 출발점이다. 출발이 잘못되면 결과는 보나마나다. 인사는 조직의 임무에 적합한 사람을 앉히는 것이다. 조직이 할 일과 이 사람이 적합하냐를 따지는 것이 인사의 요체다. 같은 자리라도 조직의 할 일은 그때그때 달라진다. 예컨대, 군인의 경우 전시엔 전쟁 잘하는 사람을, 평시엔 훈련 잘하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그냥 내 맘에 드는 사람을 뽑는 것은 비전문가들이 하는 것이다. 인사는 ‘전문적인 영역’이다.”

-정부 인사가 ‘전문적으로’ 이뤄진다고 보나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은 2000년대 초 예산 100조짜리 국가였지만 지금은 500조짜리 국가다. 조직이 5배 성장했는데 인사시스템을 그대로 쓰면 어떻게 되겠나. 그런데 우리는 그대로 쓰고 있다. 20년 동안 국가 위상도 달라지고 국민 눈높이가 높아졌음에도 공공영역의 인사시스템은 바뀌지 않았다. 반면 민간영역은 세계와 경쟁하며 일류 수준에 근접했다.”

-고위공직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이 뭔가. 전문성인가, 도덕성인가, 리더십인가

“정부 역할이 대국민 서비스로 탈바꿈한 지 오래다. 국민을 통제, 관리하는 기능에서 벗어났다는 얘기다. 그러니 전문성이 제일 중요하다. 그 다음은 리더십이다. 국정은 연습하는 곳이 아니다. 리더십이 반드시 검증돼야 한다. 평생 한 번도 조직을 운영해보지 않은 사람이 고위직을 맡았을 때의 폐해는 엄청나다. 그 다음이 도덕성이다. ‘고위공직자 7대 원천배제 기준’ 중 병역기피나 성범죄는 용납되기 어려운 결함이지만, 위장전입 등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지금 잣대로 과거 행태를 모두 재단할 수는 없다. 절대 허용 불가인 도덕성과 불가피했던 시대적 도덕성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고위 공직자 도덕성 기준, 선출직에 맞추는 게 합리적
지난달 31일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오른쪽)의 자진사퇴에 이어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왼쪽)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명철회로 장관 후보자 가운데 2명이 사실상 동시에 낙마하게 됐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최정호 국토부 장관 후보자는 전문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투기 논란으로 낙마했다.

“현 정부는 다주택자들에게 있는 주택도 팔라고 권했다. 다른 부처도 아닌 부동산 정책을 담당하는 장관으로 다주택자를 임명한 것은 국민 눈높이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교육부나 과학기술부 장관이 논문 표절을 했다면 마찬가지로 낙마 사유다. 전문성과 함께 해당 부처에서 특별히 요구되는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

-청와대는 낙마 후보자에 대해 위법은 없었고 7대 기준에도 어긋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국민 눈높이’에 맞춰 인사검증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도덕적 잣대는 상대적이다. 공직자를 추천한 쪽의 도덕적 잣대와 국민의 도덕적 잣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반복되는 논란을 피하려면 어떤 선을 정해야 한다. 7대 기준도 될 것과 안 될 것을 구분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게 좋다. 예컨대, 위장전입의 경우 토지 투기를 위한 것인지, 아이 교육을 위한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 행위 자체의 적극성과 의도성을 따져 세밀한 기준을 만들지 않으면 똑같은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지금은 전문성을 따지기보다 도덕적 약점을 파고들어 망신 주기로 흐른다는 비판이 많다.

“현 청문회 방식을 고쳐야 한다는 게 국민 대다수의 의견이다. 장점을 찾아내는 청문회가 돼야 하는데 우리는 단점만 찾는다. 장점이 성과를 내는 것이지 단점이 성과를 내지는 않는다. 고위공직자에게 적용되는 도덕성 수준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청문회에서 질문하는 국회의원들은 그 만큼의 도덕성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국민이 선출했으니 국회의원의 평균적 도덕성이 사회가 인정하는 도덕성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선출직이 아닌 공직자에게만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건 문제가 있다.”

-국회의원의 도덕성에 맞추는 게 합리적이라는 건가

“그렇다. 국회의원은 국민이 용인한 선출직이니 그들의 평균적 도덕성이 고위공직자 도덕성의 기준이 돼야 한다고 본다. 물론 이해충돌 방지 등 선출직에 대해서도 국민 눈높이가 달라지고 있고 그런 시대 변화를 반영해 도덕성 기준도 보완해야 할 것이다.”

◇보수ㆍ진보진영 벗어난 제3섹터에 인재 많아
'환경부 블랙리스트 문건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달 25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동부지법 법정으로 들어가던 중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정부 인사시스템을 어떻게 바꿔야 하나

“단기적으론 검증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 7대 기준을 철저히 분석해 낮출 건 낮추고 높일 건 높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낙하산ㆍ보은 인사 관행에서도 탈피해야 한다. 최근 환경부 사례와 같이 청와대가 장관 인사권에 개입했다면 젊은이들 채용 비리와 다를 바 없다. 역대 정부도 똑같았지만 이제 국민들이 용인하지 않는 수준까지 왔다. 중기적으론 청문회 제도를 고쳐야 한다. 정책과 전문성 중심으로 ‘장점 찾기’를 하는 청문회가 돼야 한다. 도덕성은 기본적으로 따져야 하지만 그 수준에 대해선 합의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흠집 내기, 망신 주기 청문회가 된다면 제대로 된 전문가를 뽑기 어렵다. 청문회를 공개(전문성)와 비공개(도덕성과 의혹) 영역으로 나누는 문제를 더 이상 늦춰선 안 된다.”

-국정철학과 무관하게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전문가를 뽑아야 되는지, 능력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코드가 맞는 인사를 뽑아야 하는지 헷갈린다.

“대통령은 국민 전체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인재를 뽑아야 한다. 진보ㆍ보수 진영을 벗어난 제3섹터에 뛰어난 인재가 훨씬 많다. 정치권 근처에 있는 사람만 활용하니 코드 인사 문제가 반복되는 것이다. 장관은 개인 생각을 펼치는 자리가 아니다. 국가 발전이라는 미션을 수행하는 자리다. 장관직을 수락했다면 정책 기조에 동의한다고 봐야 한다. 전문가 집단엔 정치색 없이 국가 발전에만 집중해서 일할 사람이 많다. 대척점에 있는 반대 진영 사람을 쓰라는 얘기가 아니다. 정권이 아닌 국가 전체를 보며 해당 업무를 가장 잘 해낼 사람을 발탁해야 한다. 신입사원을 뽑을 때도 학연 지연 혈연을 배제하는 것이 대세인데, 왜 내 입맛에 맞는 사람만 써야 하나.”

-실제 인재풀을 넓히라는 요구가 많다. 체계적인 인재 관리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인사시스템을 개선하려는 정부 차원의 노력이 있었다. 그런 노력이 계속 이어졌다면 한층 업그레이드된 인사시스템을 볼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다. 역대 정부는 인재풀을 정권 차원의 시스템으로만 운영했다. 국가 차원의 시스템으로 탈바꿈돼야 한다. 인재 DB는 다음 정부로 넘겨줘야 할 중요한 자산이다.”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이 9일 고재학 논설위원과 정부 인사시스템 개선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고영권기자
-야당에선 인사 실패 책임을 물어 민정수석 등을 해임하라는데.

“정권 초반 인사 파동이 있었을 때는 대통령의 문제이지, 참모에게 정치적 책임을 물을 문제가 아니라고 봤다. 그런데 같은 일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검증에 실수가 있었든지, 대통령 판단에 대한 보좌가 잘못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래야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 인사 실패가 반복되는 건 국정 낭비다.”

-정권이 바뀌면 공공기관 CEO, 감사 등 수백 명이 물갈이 되고, 이 과정에서 낙하산 인사 논란과 소모적 정쟁이 반복된다.

“어느 정권이나 똑같다. 낙하산 인사가 관행이라지만 법적으로 논란이 되는 게 현실이다. 공공기관의 손실과 비효율도 심각하다. 대선 공신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 합리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공기업에 부적격자를 낙하산으로 배치하면 수천억, 수조 원의 손실이 생길 수 있다. 국민이 이런 폐해를 계속 감수할 수는 없다. 접점을 찾아야 한다. 약 2,000명 수준인 대선 공신을 음성적인 낙하산 인사로 처리할 게 아니라 양지로 끌고 나올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대통령국가자문위원회를 만들어 비상근 자문위원으로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자. 연봉 1억씩 주고 40개 분야로 나눠 국정자문조직을 운영하면 연간 2,000억 예산이 들어간다. 이렇게 하면 낙하산 논란도 해결되고 무능력 공신의 공기업 진출에 따른 폐해도 줄어들고 국가로서도 이득이다. 물론 여야와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인터뷰=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정리= 권현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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