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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반발에...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갈 길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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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반발에...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갈 길 멀다

입력
2019.04.10 04:4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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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보험금 미청구 원인 그래픽=박구원 기자
실손보험금 미청구 원인 그래픽=박구원 기자

실손의료보험은 가입건수 약 3,400만건(작년 6월 기준)으로 어느덧 ‘국민보험’ 반열에 올랐지만, 여전히 “보험금 청구 절차가 지나치게 불편하다”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소비자 10명 중 7명은 소액 보험금을 아예 포기하고, 병원에서 결제와 동시에 보험사로 진료비 자료를 보내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에 국회에선 보험금 청구 절차를 간소화하는 법안이 발의돼 논의에 들어갔고, 보험업계도 소비자의 편의 개선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자칫 보험금 청구 간소화가 국가의 진료비 통제로 이어질 지 모른다는 의료계의 반발이 강력해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높아 보인다.

◇”청구 어려워 소액 보험금은 대부분 포기”

9일 보험업계와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ㆍ대한병원협회 등 주요 의료단체들은 지난달 말부터 ‘보험업법 일부개정안’에 반대하는 입장을 잇따라 밝히고 나섰다. 지난달 27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실손보험 청구 전자ㆍ간소화’를 위한 법률 개정안이 법안심사소위원회로 회부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올해 1월 같은 당 전재수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보험회사에는 실손보험의 보험금 청구 전산시스템 구축ㆍ운영을 요구하고 의료기관에는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가 요청할 때 의료비 증명서류를 전자형태로 전송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재 실손보험 가입자가 보험금을 청구하려면 의료기관에 직접 방문해 필요 서류를 발급받고, 이를 팩스ㆍ이메일ㆍ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등으로 보험사에 제출해야 한다. 이 때문에 특히 진료금액이 적은 경우엔 아예 청구를 하지 않는 사례가 많다.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가 공동 의뢰한 한국갤럽 조사 결과, 실손보험 가입자의 ‘보험금 미청구’ 비율은 47.5%에 이르렀고 이 가운데 70%가 “미청구 금액은 5만원 이하”라고 답했다. 전재수 의원은 “실손보험 가입 취지를 무색케 하는 현재의 청구 시스템은 오래 지적돼 온 문제점”이라며 전산화 도입을 적극 주장했다.

◇의료계 “국가가 의료비 통제하겠다는 속내”

하지만 의료계는 이번 개정안에 거대한 음모가 숨어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고용진 의원안에서 보험자료 전송업무 중계기관으로 국민건강보험 지급심사를 담당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을 지목했다는 데 의료계는 주목하고 있다. 심평원이 중계기관으로 관여하면 기존의 공공 건강보험처럼 결국 실손보험의 비급여 항목 진료비 심사도 국가기관이 개입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손보험 청구 전자화는 본래 보건복지부와 금융당국이 공동 설계 중인 ‘공ㆍ사 보험 연계 정책안’의 일부였다. 실손보험 과다 지출이 건강보험의 재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 때문에 양측을 연계해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경감하겠다는 정책안이다. 하지만 여기에 건강보험상 비급여 진료의 표준화 내용도 담겨 있어 진료비 통제를 꺼리는 의료계의 반발을 부른 바 있다.

박종혁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현재 건강보험 사례만 봐도 심평원을 경유하면 청구 간소화는커녕 지급 시일이 오히려 훨씬 오래 걸릴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실손보험금 청구 방식 개선안 설문조사 결과 그래픽=박구원 기자
실손보험금 청구 방식 개선안 설문조사 결과 그래픽=박구원 기자

◇소비자 불편 줄일 묘수는

그러나 현재 논의되는 법안은 이 정책안과는 무관하게 청구 전자화 부분만 따로 제출한 법률안이다. 올해 1월 발의된 전재수 의원안은 의료계의 의견을 일부 수용, 심평원을 기명하는 대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문중계기관’에 전산시스템 구축을 위탁하도록 명시했다.

실손보험을 판매 중인 보험사들은 사태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 우선 보험사들은 실손보험 청구 전자화가 완료되면, 당장 소액 보험금 청구가 늘어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지만 보험서류 처리 비용이 줄어드는 한편, 보험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 이미 대다수 의료기관과 전산망이 구축돼 있는 심평원이 중계기관을 맡게 되면 전산망 구축에 드는 비용도 아낄 수 있다는 기대도 감추지 않는다.

하지만 의료계는 이런 보험업계의 기대에 “민간보험의 전산망 비용을 공공에 떠넘기려는 게 아니냐”고 반발하고 있다. 실제 이미 대형 병원과 일부 보험사는 개별 협약으로 전산망을 구축해 진료비 자료를 전송하고 있다. 다만 보험사들은 중소형 병ㆍ의원까지는 전산망 확대가 어렵다는 점을 강조한다. 대형 병원은 대외 이미지 등을 고려해 적극 나서는 편이지만 작은 병원들은 진료비 공개를 꺼려 전자 시스템 설치에 부담을 느낀다는 설명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심평원의 중계가 자동차보험에는 이미 정착된 만큼 의료계가 결심만 한다면 도입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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