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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가짜과학에 대처하는 자세

입력
2019.04.09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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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과 미용을 한번에” “비타민보다 효과 뛰어난 젋어지는 물” “무색 무취 무미의 보약...” 최근 국내에서 인기를 누리는 일부 수소수 제품의 광고다. 이 정도는 약과다. 수소수는 아토피와 천식, 호흡기 질환, 당뇨, 치매 등에도 효과가 있으며, 숙취 해소, 소화, 혈액 정화, 심지어 미세먼지도 차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쯤 되면 수소수는 음료가 아니라 만병통치약이다. 이러한 주장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아 식약처는 최근 24개 판매업체와 347개 쇼핑몰을 단속했다. 가짜과학에 철퇴를 내린 것이다.

가짜과학은 사이비과학, 유사과학이라고도 한다. 증거가 허술하거나 증거가 조작 혹은 삭제되거나, 개인적 믿음을 반영하거나, 논리가 비약된 과학적 주장을 일컫는 용어다. 다른 가짜과학의 사례들에 비하면 수소수는 애교에 가깝다. 인간 생명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가짜과학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예방접종이다. 1998년 영국의 대장외과 전문의였던 앤드루 웨이크필드는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연구결과를 권위 있는 학술지에 발표했다. 이 연구는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인구에 회자되었다. 그런데 이 연구는 백신 부작용을 주장하며 집단소송을 낸 측으로부터 돈을 받아 진행된 ‘청부과학’이었다. 연구자 자신의 의견과 맞지 않는 연구결과가 삭제 혹은 조작되었다는 것도 발견돼 6년 후 학술지에서 철회됐다. 이후에 진행된 수많은 연구를 통해 백신과 자폐증은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가짜과학이 백신에 대한 의심을 부추긴 바람에 영국의 예방접종률은 한때 80% 미만으로 떨어졌다. 과거에는 홍역 완전 퇴치국이었던 미국은 올해 초 홍역 비상사태를 선포하기도 했다. 백신이 아이에게 해롭다는 ‘백신 괴담’이 홍역 확산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백신에 대한 가짜과학의 위력이 여전하다는 뜻이다.

소비자는 가짜과학과 진짜과학을 구분하기 힘들다. 과학자의 논문을 직접 찾아보고 그 결과를 깊이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유명 연예인 20명 이상이 선택한 프리미엄...” 이라는 광고에 귀가 솔깃하긴 쉽다. 국제 인증을 받았거나 상을 받았다는 광고는 구체적인 내용은 몰라도 제품에 대한 신뢰감을 높인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건강 전문가들과 연예인들이 나란히 앉아 특정 식품이 질병 예방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학적 근거의 진위에 앞서 시청자의 흥미를 자극해야 하는 것이 미디어의 생리다.

백신의 세계적 권위자 폴 오핏은 30년 이상 예방접종을 연구한 전문가의 말과, 이미 폐기된 가짜과학을 들먹이며 개인적 신념으로 “예방접종을 반대”하는 연예인의 말을 언론이 똑같은 비중으로 다루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과학자가 연구결과를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게 소통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점도 문제다. 폴 오핏은 아이들이 너무 많은 백신을 너무 빨리 맞는다는 백신 반대자들의 비판에 대해 “아이들은 1만대의 백신 주사를 맞아도 문제 없다”는 연구결과를 언론 인터뷰에서 여과 없이 말했다. 이 인터뷰로 인해 그는 백신 전문가가 아니라, 주사가 두려워 울음을 터뜨리는 어린 아이와 그 부모들의 심정을 외면하는 악인으로 낙인찍혔다. 공감 소통에 실패한 전형적인 사례다.

소비자 스스로도 가짜과학에 대처해야 한다. 인터넷에 난무하는 건강 정보에서 옥석을 가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개인의 경험담과 전문가가 제공하는 과학 정보의 차이를 꼼꼼히 비교해 보자. 이견이 있는 과학 정보는 그 근거의 무게를 비교하자. 전문가라고 하는 이들이 진짜 전문가인지 평가하자. 우선 건강기능식품도 아니고 일반음료수로 분류된 수소수가 만병통치약일 리가 없다는 점부터 기억하자.

백혜진 식품의약품안전처 소비자위해예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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