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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다미앵 신부(4.15)

입력
2019.04.15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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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한센병 환자들을 구호한 다미앵 신부.
하와이 한센병 환자들을 구호한 다미앵 신부.

성서와 기독교 전통 안에서 한센병(나병)은 예수의 면류관이나 십자가의 상징과 겹치는 듯하다. 배척하고 격리해야 할 절대 부정(不淨)이던 구약의 한센병은 예수가 그들 환자들 속으로 들어가 환부를 보듬고 치유한 이래 가장 어렵고 숭고한 소명이 되었다. 나병 환자의 환부는 기적의 가장 유력한 거처이기도 했다. 예수의 뜻을 받든 프란치스코를 비롯한 수많은 성인들과 수도사들이, 한반도 남단 소록도의 ‘두 천사’ 등 알려졌거나 알려지지 않은 ‘형제 자매’들이, 나균(癩菌)의 정체나 한센병의 기전을 알기 전부터 그들을 도왔다. 벨기에 출신 사제 겸 선교사로 하와이의 나환자를 돌본 다미앵(Damien,1840.1.3~1889.4.15) 신부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4남매 모두 수녀와 사제가 될 정도로 신앙 깊은 농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해외 선교를 중시하던 ‘예수와 마리아 성심수도회(일명 Picpus수도회)’에 들어 벨기에 뢰번(루뱅)과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한 뒤 하와이 선교사로 파견됐고 호놀룰루 대성전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가 본격 선교활동을 시작할 무렵이던 1865년의 하와이는 영국 영향력 하의 입헌군주국이었다. 왕실은 나병 환자의 격리수용 법을 제정, 무인도인 몰로카이 섬으로 환자들을 사실상 추방했다. 1873년 5월, 다미엥은 주교의 허락을 받아 몰로카이 섬에 입도, 그들의 집을 짓고 간병하며 함께 생활했다. 그의 헌신적인 봉사활동은 영국을 비롯 전 유럽과 미국으로 알려졌고, 성공회나 개신교신자들 중에도 헌금하는 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하와이 정부는 1881년 그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한센병은 전염성이 강하진 않지만(3종 전염병) 병원균으로 전염되는 질병이다. 다미앵은 1885년 한센병에 감염됐고, 89년 만 49세로 별세했다. 그는 2009년 시성(諡聖)됐다.

호놀룰루의 한 개신교 목사가 미국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다미앵이 원래 지저분한 사람이고 부주의해서 병에 감염됐고, 국가보건국이 한 일이 그의 봉사로 과장됐다”고 썼고, 그 글이 신문에 게재돼 논란이 일었다. 4년 뒤 보물섬의 작가 스티븐슨이 현지에 머물며 진상을 확인, 그 목사의 옹졸한 악의(惡意)를 신랄하게 고발하는 글을 발표했다. 더 훗날 역사ㆍ인류학자들에 따르면 다미앵의 헌신이 부각되는 와중에 현지 정부와 주민들의 노력이 지워진 면이 없지 않았다고 한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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