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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1944년의 아이린 모건(4.9)

입력
2019.04.09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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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 모건의 대법원 상고 소식을 전한 'Afro-American Newspaper'. historynet.com
아이린 모건의 대법원 상고 소식을 전한 'Afro-American Newspaper'. historynet.com

미국 민권운동사의 가장 격렬하고 참혹한 계절이었던 1964년 미시시피주의 이른바 ‘자유의 여름(Freedom Summer)’ 이전에 1961년 버지니아 캐롤라인 조지아 앨라배마 미시시피 뉴올리언스 루이지애나의 ‘프리덤 라이더스(Freedom Riders)’가 있었고, 더 전인 1947년 프리덤 라이더스와 동일한 형식의 주간(interstate) 고속버스 흑백분리 저항 시위인 노스캐롤라이나의 ‘조화의 여행(Journey of Reconciliation)’이 있었다. 그리고 1946년 연방대법원의 ‘모건 v. 버지니아 주’ 분리 차별 위헌소송에서 승리한 흑인 여성 아이린 모건(Irene Morgan, 1917.4.9~2007.8.10)의 1944년 ‘사건’이 있었다.

아이린 모건은 2차대전 중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전투기 부품업체에서 일한 ‘로지 더 리베터(Rosie the Riveter)’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였다. 셋째를 유산한 그는 휴가를 받아 버지니아 글로스터(Glouccester) 카운티 친정에서 휴식한 뒤 ‘그레이하운드’ 주간 고속버스로 볼티모어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버지니아 미들섹스 카운티에서 백인 한 명이 승차하자 운전기사는 모건과 그의 곁 흑인 여성에게 자리를 뒤로 옮기라고 요구했고, 모건은 거부했다. 모건은 급기야 출동한 보안관의 사타구니를 걷어차고 체포영장이라고 들이민 종이를 찢기도 했다. 강제로 끌어내리려 한 다른 보안관의 셔츠를 찢기도 했다. 훗날 모건은 “물어뜯으려 했지만 더러워 보여서 참았다”고 말했다.

그는 공무집행 방해 및 흑백분리ㆍ차별법인 ‘짐 크로(Jim Crow)’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지만, 공무방해 벌금 100달러는 수긍한 반면 차별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항소했다. 주 대법원에서 패소한 그는 연방대법원에 상고했다. 그를 도와 승리로 이끈 변호사 중 한 명이 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고문변호사였던 훗날의 대법원 판사 서굿 마셜이었다.

그의 승리를 기념하고 흑백분리ㆍ차별의 위헌 법률을 무력화하기 위한 ‘인종평등위원회(CORE) 소속 흑ㆍ백인 활동가 16명이 이듬해 ‘조화의 여행’을 시작했다. 시카고를 출발해 남부를 종단하려던 그들의 여행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난폭하게 저지당했고, 리더인 바야드 러스틴(Bayard Rustin)은 22일 동안의 사슬 노역형(Chain Gang)을 살았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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