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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자녀에 대한 기대, 그리고 갈등

입력
2019.04.08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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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부모에게나 자식에 대한 기대 때문에 자녀와 갈등을 겪는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지금이야 우리 아이들이 나와 함께 어울려 식사를 하거나 같이 여행 가기를 좋아하지만, 나 역시 아이들의 사춘기 시절에 다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갈등이 많았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부모는 향후 50년 동안 10만 가지 걱정을 하며 살게 된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위대하고 잘한 일이지만, 이제까지 해본 어떤 일보다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중학생 딸이 왜 손바닥 만한 스커트를 입고 외출해서는 안되는 지를 놓고 까다로운 협상을 해야 한다. 하지만 결국 딸은 말을 듣지 않고 가문이 배출한 가장 야한 여자가 되어 휑하니 나가 버린다. 대학생 딸에게 밤 12시 전에 집에 반드시 들어와야 하는 지를 설득하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이론적으로 아이가 사춘기를 별 탈 없이 통과하게 만드는 것보다 강아지에게 자동차 운전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더 쉽다.

우리 아이들이 미래에 나를 고급스런 노인휴양시설에 넣어줄지, 아니면 껌을 짝짝 씹으면서 의사한테 의료보험에 안락사가 포함되느냐고 물을 지는 지금의 내 태도에 달려 있다. 과거 결혼 전 내가 내 처와 데이트를 할 때는 휴대폰이 없어서 만나자는 약속을 할 때마다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당시 나는 사법연수원에 다니고 있었고, 그녀는 서울대 3학년 학생이었다. 그녀에게 전화를 하면 대부분 그녀가 받았지만, 가끔은 장모님이 받으셨다. 장모님은 별다른 말씀 없이 바꾸어 주셨는데, 한번은 장모님이 간곡한 어투로 나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다. “그 애를 새벽 1, 2시보다 조금만 일찍 집에 바래다 주면 좋겠는데…” 하지만 그렇게 해드리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이중 기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부모는 자녀가 항상 걱정스럽다. 어리고, 세상물정 모르고, 나쁜 길로 빠지지 않을까 언제나 노심초사한다. 하지만 부모가 생각하는 것만큼 자녀는 어리석거나, 생각이 없는 것이 결코 아니다. 젊은 시절 실수 좀 하면 어떠랴. 그것은 자녀들의 특권이다. 많은 부모들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의도하지 않게 자신들만의 시각으로 잘못된 방식의 애정을 쏟고 있다. 사실 그들이 어른보다 세상의 목소리를 더 잘 듣는다.

부모가 할 일은 그들이 세상이 강요하는 틀에서 벗어나 그대로의 자기다움을 펼치도록 도와야 한다. 자녀들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포기하라. 당신이 당신 부모님 뜻대로 되지 않았던 것처럼 아이들 역시 당신 뜻대로 자라주지 않는다.

난 이제 완전히 아이들을 믿고 지지한다. 아이들이 어떤 결정을 하든 말이다. 그 결정이 틀렸다고 해도, 그 실패에서 배우면 되는 것이다. 자녀들을 놓아 주자. 그 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 자녀들이 부모의 보살핌이나 충고 없이는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사랑하는 자녀들에 대한 모독이다.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아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자녀들에게 부모의 기준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비록 부모의 몸을 빌려 태어났지만, 아이들 역시 자기 만의 영혼과 꿈을 가진 독립된 인간이다. 그들만의 철학과 삶의 기준이 있는 것이다. 이를 존중해 준다면 자녀들은 그것만으로도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며 성장하게 된다. 부모의 인정을 받고 자란 아들, 부모의 극진한 사랑을 받고 자란 딸은 결코 잘못되는 일이 없다.

자녀의 성취를 사랑하는 부모가 아니라 자녀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줄 수 있는 만큼의 사랑을 주고,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자녀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그 시간을 마음껏 즐겨보자.

윤경 법무법인 더리드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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