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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분쟁지역] '영토 상실'로 끝난 IS패배... 점조직 보복전은 진행중

입력
2019.04.05 19:0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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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최후 거점이었던 시리아 동부 바구즈 지역의 한 건물 옥상에 쿠르드ㆍ아랍연합 ‘시리아민주군(SDF)’의 깃발이 펄럭이는 가운데, SDF 소속 대원이 마을 일대를 내려다보고 있다. IS 소탕작전을 펼쳐 왔던 SDF와 미군은 전날 “바구즈에서 IS를 완전히 제거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IS가 점조직 형태로 곳곳에서 명맥을 유지하며 반격에 나서는 등 시리아 전쟁은 또 다른 국면에 진입하고 있는 모습이다. 바구즈=EPA 연합뉴스
지난달 24일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최후 거점이었던 시리아 동부 바구즈 지역의 한 건물 옥상에 쿠르드ㆍ아랍연합 ‘시리아민주군(SDF)’의 깃발이 펄럭이는 가운데, SDF 소속 대원이 마을 일대를 내려다보고 있다. IS 소탕작전을 펼쳐 왔던 SDF와 미군은 전날 “바구즈에서 IS를 완전히 제거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IS가 점조직 형태로 곳곳에서 명맥을 유지하며 반격에 나서는 등 시리아 전쟁은 또 다른 국면에 진입하고 있는 모습이다. 바구즈=EPA 연합뉴스

지난 2일(현지시간)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 우호적인 중동언론 ‘알 마스다르 뉴스’는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의 마지막 근거지인 바구즈를 탈출한 IS 대원들이 전날 시리아 정부군(SAA)을 공격했다고 전했다. 공격 발생 지역은 IS가 부분적으로 파괴했던 팔미라 유적지 외곽으로, IS 잔여 세력이 퇴각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리아 사막지대 인근이다. 이라크와 요르단으로도 이어진 이 사막 일대는 이라크전쟁 당시 이라크 ‘저항세력’이 재결집하고 회생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공격은 쿠르드계가 주축인 시리아민주군(SDF)이 ‘IS의 패배’ 소식을 발표한 지 9일만에 이뤄졌다. “SDF 총사령부의 이름으로, 그리고 우리와 함께 싸운 동맹세력들을 대표하여 바구즈의 IS 잔당이 오늘 완전히 패배했음을 선포한다.” SDF 공보국의 성명은 이렇게 시작됐다. 성명은 이어 “다에시(IS를 경멸적으로 일컫는 말)와 알카에다에 맞선 싸운 우리는 시리아 동북부 500만 시민을 테러리즘에서 구해냈고 이 빛나는 성과를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했다.

IS의 영토 상실은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칼리프 국가를 선언한 지 4년 9개월(1,737일)만이다. 4년여 동안 치른 대가는 너무도 컸다. 특히 “IS의 패배”라는 헤드라인에 가려진 민간인 피해 규모는 좀체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IS 점령 시절, 그들의 상징적 수도로 기능했던 시리아 북부 도시 락까의 활동가들이 운영하는 블로그 ‘락까는 서서히 학살당하고 있다(RBSS)’는 IS가 ‘인간 방패’로 이용한 민간인들이 SDF와 미군 등의 공격에 학살당한 현장을 사진으로 전했다. 미군 및 동맹군의 공습으로 인한 인명 피해를 기록해온 ‘에어워즈’에 따르면, 2014년 8월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공습이 시작된 이래 사망자 수는 최소 7,559명, 최대 1만2,156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5,053~8,291명이 시리아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런 엄청난 대가를 치렀음에도 IS는 영토만을 상실했을 뿐 극단주의 사상과 잔여 세력은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이라크 역사학자이자 안보전문가로 이라크 정부의 ‘대(對)IS 작전 자문’ 역할을 해왔던 후샴 알하셰미 박사는 지난달 29일자 ‘아시아 타임스’에서 “IS 지도자 바그다디를 보위하는 경호팀이 칼리프 국가보다 칼리프가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칼리프 바그다디는 전투에 참여한 적이 없고 분명히 살아 있다고도 그는 말했다. 현재 행방이 묘연한 바그다디는 ‘바디아’로 불리는 시리아 동남부 사막지대로 숨어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로 지난 1일 공격이 발생한 지역이다. 바그다디는 이미 지난해 8월 22일 발표한 마지막 오디오 성명에서 “영토 상실에 개의치 말고 서방(동맹) 목표물 타격에 집중하라”고 추종자들을 선동한 바 있다. IS가 이미 영토에 대한 집착을 접었지만, 공격은 멈추지 않을 것임을 알리는 신호였다.

지난 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무슬림 여성들이 시리아 전쟁 도중 이슬람국가(IS)에 납치된 아이들의 무사귀환을 위해 정부가 힘써달라고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브뤼셀=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무슬림 여성들이 시리아 전쟁 도중 이슬람국가(IS)에 납치된 아이들의 무사귀환을 위해 정부가 힘써달라고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브뤼셀=로이터 연합뉴스

이달 1일 공격도 그렇거니와 IS가 패배했다는 뉴스는 이내 곧 “IS 점조직(IS sleeper cells)의 반격”으로 대체되고 있다. 시리아인권관측소(SOHR)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시리아 동북부 데르에조르 지방에 위치한 티반에서는 IS 점조직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폭탄차량 공격으로 SDF 대원 두 명이 숨졌다. 다음날에도 같은 지방에서 IS의 테러로 SDF 대원 한 명이 사망했다. 시리아전쟁을 상세히 기록해온 SOHR은 4,000~5,000명 가량의 IS 대원들이 시리아 동북부 일대에 점조직으로 남아 활동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미군과 SDF를 겨냥한 IS 점조직의 공격은 이미 패색이 뚜렷했던 올해 1월 16일에도 만비즈의 ‘팔레스 드 프린스’ 식당 앞에서 감행됐다. 이날 IS의 자살공격으로 식사를 하러 온 미군 네 명을 포함해 총 19명이 목숨을 잃었다.

IS 세력 일부는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브 지방으로도 피신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1월 28일 SDF 공보국장 무스타파 발리는 IS 대원들이 밀수 브로커를 통해 자신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트위터로 공개했다. IS 잔여 세력이 “(알카에다 계열 무장단체인) 하이얏 타흐리르 알 샴(HTS)이 장악한 이들리브나 터키로 안전하게 보내주길 원했다”는 내용이다. 발리 국장은 “그러나 타협은 없다. 마지막 테러리스트가 괴멸할 때까지 싸운다”는 전의로 해당 트윗을 마무리했다.

지뢰밭 요소는 반군 조직에만 있지 않다. 쿠르드 전문기자이자 중동분쟁 평론가로 활약해온 블라디미르 반 윌덴버그는 최근 ‘미들이스트센터’에 기고한 장문의 글에서 “터키, 이란, 시리아 정부 모두 미국의 지원하에 있는 SDF 통치구역을 흔들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정부가 현지인이나 전직 IS 대원을 고용해서 공격을 감행하고는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고 부인하는 건 아주 쉬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IS는 실제 공격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들의 소행임을 주장하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조직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나 터키 모두 IS 점조직을 침투시켜 SDF에 대한 직접적 공격을 감행할 수도 있다”는 반 윌덴버그의 분석은 설득력이 없지 않다.

이슬람국가(IS) 격퇴 작전에 참여해온 쿠르드민병대(YPG) 소속 여성수비대(YPJ) 대원들이 지난달 28일 시리아 카미실리 지역에서 IS에 대한 승리를 축하하는 군사퍼레이드를 진행하고 있다. 카미실리=로이터 연합뉴스
이슬람국가(IS) 격퇴 작전에 참여해온 쿠르드민병대(YPG) 소속 여성수비대(YPJ) 대원들이 지난달 28일 시리아 카미실리 지역에서 IS에 대한 승리를 축하하는 군사퍼레이드를 진행하고 있다. 카미실리=로이터 연합뉴스

IS 점조직의 위협은 그 누구보다도 SDF 스스로 잘 알고 있다. SDF 공보국장은 지난달 31일 트위터로 전날 발생한 IS의 공격과 SDF 대원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IS 점조직이 아직 지역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IS의 효율적인 퇴치를 위해 SDF와 동맹군 간의 효율적 군사동맹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문제는 좀 더 복잡해 보인다. 바로 ‘미군과 외세 축출’을 명분으로 내건 친(親)아사드계 무장조직들이 지난해부터 심상찮게 출현하면서 또 다른 전선도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동부지역대중저항’(PRERㆍ이하 ‘대중저항’)이라는 조직을 보자. 대중저항은 지난해 2월 24일 시리아 아사드 정권과 이란의 지원으로 출범한 친정부 무장단체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같은 해 4월 5일 미군기지에 대한 로켓 공격의 배후를 자처했다. 그보다 한 주 전인 3월 27일에는 SDF 스파이로 알려진 이가 괴한의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이 있었다. 대중저항은 이 또한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여전히 ‘기이한(mysterious) 그룹’으로 묘사될 만큼 정체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반미ㆍ아랍민족주의를 내건 조직으로 거론되고 있다. 한때 IS의 수도였고 지금은 SDF의 통치하에 있는 락까에서 지난해 6월 시리아 국기를 내걸고 등장한 무리도 이 대중저항으로 추정된다. 아사드 대통령은 작년 6월 13일 “우리는 이 저항운동이 시리아 국민으로서 합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며 노골적인 지지를 보였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IS의 패배는 그러나 시리아전쟁 사태가 해결됐다기보다는 또 다른 단계에 진입했음을 알려준 측면이 강하다. IS가 사라지자 SDF, 특히 쿠르드민병대와 미 동맹군은 다른 모든 세력들에게 ‘공통의 적’으로 보다 뚜렷이 각인됐다. IS는 미국과 손잡고 자신들을 몰아낸 SDF를 상대로 점조직의 게릴라전이나 다른 조직과의 전술적 공조, 또는 무차별적인 ‘소행 밝히기’ 수법에 의한 존재감 유지 등 어떤 식으로든 보복전을 이어가면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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