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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2.0]“종로 낙원상가 일대를 사회적기업 문화공간으로”

입력
2019.04.01 04:40
수정
2019.08.01 16:05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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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4층 ‘실버영화관’. 평일이었지만 어르신들로 북적였다. 이날은 한국영화 ‘산딸기2’가 상영 중이었다. 3월 한달 간 상영됐던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형제는 용감했다’, ‘골목이 끝나는 곳’ 등 할리우드 고전영화 포스터도 함께 그려진 상영작 일정표에 눈이 가는 글귀가 있었다. ‘선명한 화질, 정확한 번역, 큰 자막으로 제공됩니다.’

실버영화관은 지난 2009년 첫 선을 보인 이후 10년 동안 어르신들의 곁을 지켜왔다. 만 55세 이상이면 단돈 2,000원에 추억의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서울 시내 유일한 어르신 영화관이다. 10년간 관람권 값도 그대로다.

국내 최초로 노인 세대를 위한 영화관을 선보인 김은주(45) 실버영화관 대표는 “처음엔 얼마나 할 수 있겠냐고 걱정하던 분들이 더 많았다”며 “하루에 1,000~1,500명의 어르신이 오시는데 어떻게 문을 닫을 수 있나. 뚝심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여전히 걱정하는 분들에겐 이렇게 말한단다. “저는 사회적기업가입니다. 돈을 버는 것보다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게 저의 일입니다”라고.

[저작권 한국일보] 김은주 실버영화관 대표는 “올해가 실버영화관을 운영한지 10년째 되는 해”라며 “종로 낙원상가 일대를 어르신들만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확장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류효진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김은주 실버영화관 대표는 “올해가 실버영화관을 운영한지 10년째 되는 해”라며 “종로 낙원상가 일대를 어르신들만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확장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류효진 기자

◇유튜브 서비스ㆍ떼창 공연…노인 문화공간 확장

김 대표는 요새 고민이 많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지만 정작 노인 세대가 즐길 만한 문화 공간이 적어서다. 그는 실버영화관을 어르신들의 ‘문화 놀이터’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먼저 4월부터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를 활용하는 사업, 미세먼지로 인한 고민을 해결할 ‘종로는 맑음’ 사업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예를 들어 어르신들에게 유튜브로 영화와 공연 정보를 제공하거나, 어르신들이 직접 유튜브에 정보를 올릴 수 있는 무료 서비스를 계획하고 있다. 촬영 장소나 장비를 대여해주는 유료 서비스도 고려 중인데, 노인뿐 아니라 젊은 고객들도 유치하기 위해 저렴한 대여료를 제시하겠다는 전략이다. ‘종로는 맑음’은 미세먼지로 외출 자제를 권유 받는 노인들을 위해 고안했다. 낙원상가 인근에 나무를 심고, 공기청정기가 설치된 저렴한 휴식 공간을 만들 계획도 있다.

김 대표는 최근 방송인 송해와 배우 전원주, 가수 김세레나 등 실버 세대를 대표하는 연예인들의 공연을 기획해 인근 낭만극장에서 진행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극장 안에서 마음껏 ‘떼창’을 할 수 있어 전석이 매진되는 등 인기가 많다. 처음에는 오후 2시에 1회 공연만 열었지만, 반응이 좋아 오후 1시와 3시 총 2회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연예인들이 교통비 정도만 받으며 재능기부 형태로 참여해 관객은 비용 부담이 없다.

공연 이후에는 20~30분 가량 춤을 출 수 있는 ‘사이다텍’도 펼쳐진다. 어르신들이 젊은 시절처럼 노래와 춤으로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김 대표는 “노인을 대상으로 한 사기성, 미끼성 공연이 많아졌다”며 “더 충격적인 건 어르신들이 그런 공연인 줄 알면서도 가신다”면서 안타까워했다. 적어도 그곳에서는 노인들의 얘기를 들어주기 때문이란다. 낭만극장의 떼창 공연과 사이다텍은 노인들이 소외되고 있는 사회적 문제 앞에 김 대표가 제시하는 대안이다.

원래 중년 영화관을 표방했던 낭만극장은 떼창 공연을 계기로 노인들을 위한 사회적기업이자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3,000원이던 관람권 가격도 2,000원으로 내렸고, 실버영화관과 ‘형제’가 돼 어르신들을 맞고 있다. 김 대표는 이제 야외 영화관 등 인근 거리를 활용한 정기 행사도 기획 중이다.

“사회적기업의 혁신은 별 게 아닙니다. 사회적기업들이 연대해 순기능을 낳았다는 것만으로 혁신적이죠. 낙원상가를 중심으로 한 종로 일대 전체를 어르신들의 문화공간으로 확장하는 작업도 구상 중입니다.”

[저작권 한국일보] 한 어르신이 실버영화관의 상영작 일정표를 보고 있다. 매주 금요일마다 새로운 영화가 상영되기 때문에 노인 관객들이 가장 많다. 류효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한 어르신이 실버영화관의 상영작 일정표를 보고 있다. 매주 금요일마다 새로운 영화가 상영되기 때문에 노인 관객들이 가장 많다. 류효진기자

◇“노인 문제 접근, 어렵지 않아”

김 대표는 실버영화관을 위해 집을 팔았다. 매달 나가는 임대료 2,000만원이 없어 영화관 운영이 흔들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갈 곳 없는 노인들을 생각하면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독립영화관이나 예술영화관에는 5,000만~2억원까지 지원해줍니다. 그런데 노인전용영화관에는 지원해줄 수 없다고 하네요. 노인을 위한 문화공간을 만드는 비즈니스는 혁신적이지 않다고 보는 걸까요?”

김 대표에게 힘이 된 건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었다. SK케미칼로부터 1억2,000만원의 지원금을 받으면서 실버영화관 운영이 가능해졌다. 또한 우수한 사회적기업에 제공하는 SK그룹의 인센티브 덕에 김 대표는 실버 연예인들의 공연도 기획할 수 있었다.

“그 흔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어르신들이 왜 가지 않을까요? 번호표 뽑고 기다리거나 무인 발권기 쓰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죠. 실버영화관에선 그저 선착순으로 표를 사 들어가면 됩니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노인 자살률 1위”라며 “노인 문제 접근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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