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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자율성을 이기는 학습방법은 없다

입력
2019.03.30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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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년간 한국에서 많은 대학생을 만났고, 이번 학기에는 스웨덴 예텐보리대 (Gothenburg University)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사실 큰 기대를 갖고 시작하지는 않았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내 아이를 북유럽에서 교육시켰기 때문에, 북유럽 교육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북유럽의 학교는 아이가 아이답게 자라도록 해 준다. 이는 동시에 학습 시간이 우리보다 훨씬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확하게 이야기를 하면 수학, 과학 등의 문제를 푸는데 시간을 적게 쓰는 학습이다. 그로 인해 학생들의 수학 수준에 대한 걱정이 앞섰고, 나의 첫 강의는 그런 선입견과 함께 시작됐다.

이 대학에서는 학생 출석을 체크하지 않는다. 강의는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면 학생이 오는 것이다. 물론 시험을 안 보거나, 100점 만점 중 60점을 넘지 못하면 낙제를 하게 된다. 한국의 대학에서는 거의 모든 수업에 출석 점수가 최소 10% 정도 포함돼 있다. 한국 대학에 부임한 첫해에 출석을 부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불만이 있었다. 노력한 학생에 대한 보상을 해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후, 불평 불만을 듣지 않으려고 출석 체크를 비교적 부지런히 했다. 이런 한국 대학 생활에 꽤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출석 체크를 하지 않으면 학생들이 수업을 빠질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학생이 강의에 참석했을 뿐만 아니라, 단 한 명도 강의 시간에 늦게 들어오거나 수업이 끝나기 전에 먼저 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서구의 대학 강의실은 한국보다 분위기가 자유로운 것이 사실이다. 이 대학의 학생들은 심지어 교수의 이름을 부른다. 예를 들면 ‘닐슨 교수님’이 아니라 ‘영주야’하고 부르는 것이다. 사실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는 초등학교에서도 아이들이 선생님을 성이 없이 이름만 부르기 때문에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진짜 놀란 일은, 이 자유로운 분위기 안에서도 강의 시간에 휴대폰에 혼을 빼앗긴 학생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동료 교수에게 물어보았다. 내 강의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대체로 그런 편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강의를 할 때면 으레 굉장히 피곤해 보이는 학생들이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비결이 뭘까.

한국에서는 3시간짜리 강의를 하게 되면 중간에 약 15분 정도의 휴식 시간을 갖는다. 50분동안의 수업 후 10분의 휴식을 취하는 꼴이다. 이때 한국 대학생들은 대체로 자기가 앉아있던 자리에 그대로 앉은 채로 친구와 수다를 떨거나, 책상에 엎드려 잔다. 스웨덴 대학은 45분의 공부 후, 15분의 휴식을 취한다. 스칸디나비아 스타일답게 쉬는 시간이 약간 길다. 그런데 스웨덴 학생들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이 휴식 시간 동안 강의실을 떠난다. 그리고 휴식 시간이 끝나기 1분 전쯤 돌아온다. 바깥 공기도 마시고 하면서, 진짜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런 태도가 아니라 성과였다. 이 대학의 학점은 A, B, C, D, F가 아니라 합격, 불합격 두 가지로 나간다. 이미 한국 대학에서 합격, 불합격으로 학점이 나가면, 리포트의 질과 시험의 성과가 한도 끝도 없이 떨어진다는 경험을 한 터였다. 그럼에도 내가 우려했던 일은 한 번도 벌어지지 않았고, 내가 가졌던 생각들은 모두 잘못된 선입견이었다는 것이 명백하게 증명이 됐다. 모든 학생의 리포트 수준과 계산을 많이 요구했던 시험 성과는 내가 가르친 어떤 강의를 들은 학생들보다 평균적으로 좋았다.

물론 겨우 한 번, 한 과목을 강의하고 일반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게 뭘까’라는 의문에 자율적인 학습의 모습과 성과일 거라는 답을 떠올려 보았다.

영주 닐슨 스웨덴 예텐보리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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