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부당해고·복직소송··· 양도수씨의 잃어버린 10년 
양도수씨가 폐 절제 후 10년간 거친 산재·부당해고·복직소송 과정을 화이트보드에 자세히 적어가며 설명하고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

이름보다 ‘폐 잘라낸 개발자’로 더 잘 알려진 정보통신기술(ICT)인. 18년 차 개발자 양도수(44)씨다. 농협정보시스템에서 개발자로 일하다 오른쪽 폐의 절반을 잘라낸 그는 긴 싸움을 거쳐 산업재해 인정을 받으며 IT 개발자 과로 피해의 책임이 회사에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입증했다. 그는 지난 1월 복직소송에서 패했고 소송비용 부담으로 인해 항소를 포기했다. 지난달 8일 한국일보사에서 만났다. 

 ◇2년 5개월 8,770시간 근무…폐 25%를 잃다 

양씨는 2006년 7월 농협정보시스템에 공채 1기로 입사해 2008년 12월까지 근무했다. 농협쇼핑몰 재구축 프로젝트에 투입돼 2년 5개월간 밤늦게까지 주말도 없이 일했다. 양씨는 “그 기간 토, 일요일 포함해 하루나 이틀 쉬었다”며 “나중에 소송을 위해 근무한 시간을 합쳐보니 8,770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주당 70시간 근무한 셈이었다.

“2008년 8월 즈음부터 기침이 많이 나오고 밥 먹다가 졸 정도로 졸음이 쏟아지고 그러다 일어나면 속옷이 젖을 정도로 땀이 나더군요. 처음엔 만성피로인 줄 알았어요.” 어느 날 건강검진 후 병원에서 받은 전화가 양씨의 인생을 바꿨다. “병원에서는 ‘암 환자세요?’라고 묻더군요. 혈액검사 수치에서 CA19-9라는 수치가 있는데 말기 암 환자가 400정도 나오는 게 저는 700이 넘게 나왔다고요.”

급히 찾아간 병원에 입원한 양씨는 폐에 염증이 심각한 것으로 밝혀져 2주간 항생제 처방을 받았으나, 면역력이 너무 약해진 상태라 약으로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결국 2009년 1월 오른쪽 폐 하엽(下葉)을 잘라낸 양씨는 결핵성 폐농양 진단을 받았다. 그 사이 양씨는 대기팀으로 인사발령이 났다. 수술한 지 한 달도 안 돼 회사에 복직했지만, 계단 두 개 층도 올라가기 힘들 만큼 약해진 체력에 결국 휴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휴직 기간 중 왜 이런 병을 얻었는지 추적했다. 회사가 보낸 연봉통지서에서 자신의 연봉이 깎인 사실을 알게 된 다음이다. 양씨는 “회사에서 제일 열심히, 하라는 대로 일해 질병까지 얻었는데 연봉이 깎였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만나본 노무사들은 모두 “우리나라에서 과로로 인한 면역력 저하로 산재 받은 사례가 없다. 근무시간 인정을 어떻게 입증할 거냐”고 물었다. 양씨는 신용카드 사용내역과 위치, 하이패스 기록을 뒤져 ‘8,770시간’에 대한 입증자료를 뽑아냈다. 2009년 11월 노동부에 진정을 넣으며 회사와의 전면전이 시작됐다. 이듬해 2월 양씨는 휴직연장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회사는 양씨를 해고했다. 그는 고용보험에서 날아온 신분변동통지서를 보고 자신이 해고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야근 수당, 부당해고 둘러싼 10년의 다툼 

이후 양씨가 다니던 회사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한 소송은 10여 년간 숨 막히게 이어졌다. 2010년 양씨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판정 신청을 내고, 복직 판정을 받자마자 회사는 이의신청 기간 14일 중 마지막 날 양씨에게 특급 등기우편을 보내 양씨를 원직 복직시키는 동시에 해고했다.

양씨는 2010년 4월 연장 야근 휴일 심야 수당을 돌려받기 위한 소송을 시작했고 2013년 1심에서 요구한 금액의 25%를 돌려받는 판결을 받았으나 항소해 2014년 75%를 돌려받을 수 있게 됐다. 2013년에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업재해 소송에 돌입, 2016년 6월 과로로 인한 면역력 저하에 대해 산업재해가 인정됐다. 기념비적인 승리였다. 산재 판정결과와 야근 수당 지급 승소 결과를 가지고 2016년 시작한 부당해고 소송은 하지만 지난 1월 1심에서 패소했다.

“폐 절제 수술을 하고 3~6개월이 지나면 출근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데 내가 출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는 근무할 의사가 없다고 봤습니다. 법원이 의사들이 통상적으로 제시한 의견만 보고 그 앞에 있었던 엄청난 과로 상황과 내 몸 상태는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던 셈이죠.”

 ◇‘병’소속으로 ‘갑’에게 폭언, 폭행당해 

양씨는 농협정보시스템과의 소송을 진행하는 도중에도 다른 직장에서 폭언, 폭행을 당했다. 2017년 2월 롯데하이마트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회사에서 프로젝트 매니저(Project Managerㆍ PM)으로 일하던 그는 관계 회사 회의에서 롯데하이마트 팀장으로부터 욕설을 듣고 부하 직원에게 멱살을 잡혔다. “직원의 업무 관리를 팀장에게 부탁했을 뿐인데 ‘병(丙)’ 회사 소속이 ‘갑(甲)’의 직원에 대해 이래라저래라한 것에 화가 났는지 험한 욕을 퍼부었고, 나도 화가 나 욕으로 응수하자 함께 온 직원이 내 멱살을 잡아 끌었어요. 이전에도 개발사항 수정을 요청하고는 기한이 늘어난다고 욕을 한 적이 있었죠.”

이 사건 후 양씨는 업무에서 빠지라는 압력에 시달렸고, 두 달 뒤 사표를 냈다. 하지만 40대 개발자의 재취업은 쉽지 않았다. 개발자들의 커뮤니티 사이트 OKKY(https://okky.kr)에 억울한 사연을 알리고 나서야 회사의 사과를 받고 복직할 수 있었다. 가해자인 팀장은 지방으로 좌천됐다가 6개월 만에 다시 팀장직을 달고 본사로 복귀했다.

양씨는 두 회사에서 부당한 처사에 시달리는 동안 당국은 손을 놓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2009년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었을 당시 농협정보시스템이 내 서명을 위조한 야근 서류를 제출했는데도 고용부는 이를 조사하지 않았고, 민사소송 기간에도 회사에 단 한 번도 조사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2013년 국회의원들이 농협정보시스템에 현장방문을 간다고 하니 그제야 부랴부랴 특별감독을 실시했는데 결과는 ‘아무런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고 퇴직금을 한번 늦게 지급한 게 나와 계도 조치했다’가 전부였어요. 산업재해 인정자가 나왔는데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글·사진=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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