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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사회에 경고… 빈부 격차, 마음의 병까지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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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사회에 경고… 빈부 격차, 마음의 병까지 키운다

입력
2019.03.28 16:30
수정
2019.03.28 19:38
23면
0 0

“불평등이 경제구조 뿐 아니라

개인의 의식ㆍ공동체까지 흔들어

의료비 지원ㆍ세제 혜택 등 보다

원천소득을 비슷하게 맞춰줘야”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사람들의 몸과 마음은 건강하지 못하다. 선진국이어도 마찬가지다. 개인도 사회도 건강해지려면 소득 격차를 줄여 평등해지는 게 답이다. 서울 신촌의 한 패스트푸드 업체 배달노동자가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이다 바닥에 앉아 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사람들의 몸과 마음은 건강하지 못하다. 선진국이어도 마찬가지다. 개인도 사회도 건강해지려면 소득 격차를 줄여 평등해지는 게 답이다. 서울 신촌의 한 패스트푸드 업체 배달노동자가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이다 바닥에 앉아 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미국은 25% 이상, 일본 독일은 10% 미만.’ 각 나라 국민이 일생 동안 정신 질환에 걸리는 비율을 집계한 수치다. ‘영국정신의학저널’에 보고된 논문에 따르면, 소득 불평등이 심한 나라는 비교적 평등한 나라에 비해 정신 질환이 발병률이 3배까지 높았다. 생활 수준이 비슷하다고 해도, 소득 격차가 큰 사회에선 사람들의 마음의 병이 더 깊어진다는 얘기다.

공공 보건 역학의 세계적 권위자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 명예교수와 케이트 피킷 캐나다 요크대 교수는 불평등이 경제 구조뿐 아니라 개인의 의식, 나아가 공동체를 망가뜨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두 사람은 지난 2012년에 출간한 ‘평등이 답이다(The Spirit Level)’에서 빈부 차이가 큰 사회일수록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개인들이 건강 문제로 고통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입증해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번에는 ‘정신 건강’으로 주제를 좁혔다. 책은 최신 연구 결과들을 근거로 불평등이 정신 건강에 끼치는 해악을 학문적으로 입증해 나간다. 두 사람은 이번에도 똑같이 외친다. “불평등이 모든 문제다! 평등해야 건강하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정신 건강을 좌우하는 것은 사회적 지위, 즉 서열이다. 경제적 능력이 엇비슷하더라도 최고 상급자로 일하느냐 지시와 명령에 복종하는 위치냐에 따라 받는 스트레스 격차는 매우 크다. 영국 공무원들의 스트레스 지수를 살펴본 결과, 상사보다 부하 직원들의 우울감이 더 높게 나타났다. 직급이 높아질수록 상응하는 보상이 주어지는 반면, 하급 직원들은 무기력감, 불안에 시달린다.

그러나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은 불평등을 굳이 말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행복하다’거나 ‘건강하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 불평등의 고통을 감추려 든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낼 경우 더 험한 취급을 받을까 두려워서다.

이들의 심리 상태는 극단으로 갈린다. 주눅들거나, 과시하거나. 먼저 우울과 자기비하에 빠져드는 경우가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옷차림, 말투, 지식 수준을 흉보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집에 틀어박힌다. 반대는 자기도취에 빠지는 경우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부유하고 화려한 일상 사진을 자주 올리는 사람들은 바닥에 떨어진 자존감을 감추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일 수 있다. 술∙마약∙쇼핑 중독 역시 불평등이 낳은 정신 질환이다. ‘먹방’의 유행도 무관치 않다.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절은 끝났다. 부모의 경제력과 지위가 대물림 되는 사회에서 불평등은 뼛속까지 고착화 된다. 책에 소개된 세계은행의 실험이 단적인 예다. 서로 다른 계급(카스트) 출신인 인도 소년들을 모아 문제를 풀게 하고 성적을 매겼다. 서로의 카스트를 알기 전에는 계급이 성적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카스트가 공개되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낮은 카스트 아이의 성적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계급의 위계에 억눌려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능력주의에 대한 환상을 깨야 한다는 것이 책의 따끔한 지적이다. “사람들 사이에 능력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 차이는 위계에 의한 산물이지, 위계를 발생시키는 근원은 아니다.”

불평등 트라우마

리처드 윌킨슨•케이트 피킷 지음•이은경 옮김•이강국 감수

생각이음 발행•464쪽•1만 9,000원

책이 제시하는 대안은 뻔하지만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것. 근본적으로 소득 격차를 줄여나가는 것이다. 저소득층에게 의료비를 지원하거나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은 임시방편이다. 그것보다 원천 소득을 비슷하게 맞춰주는 것이 핵심이다. 종업원 지주제 의무화, 생활임금 및 기본소득 도입, 누진세 강화 등 경제 민주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논의가 진전되지 않는 정책들이다. 저자들은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불평등을 손가락질하고 평등을 부르짖는다. “더 나은 사회의 개념을 공유하면 정책에 일관성이 생긴다. 진보정치가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해서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꿈꾸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너무 많이 제기된 문제, 너무 많이 제시된 답이라고? 더 흔한 문제가 무엇인지, 답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외면하는 당신을 질책하는 목소리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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