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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국가기간망에 막 갖다 붙여서야

입력
2019.03.28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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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이 최근 한 달 시차를 두고 내놓은 지급결제 정책안에는 두 기관의 미묘한 신경전이 감지된다.

금융위는 지난달 25일 발표한 ‘금융결제 인프라 혁신 방안’에서 핀테크 기업에 금융결제망을 개방하는 안을 중장기 과제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금융결제원 소관 소액결제시스템 중 하나인 전자금융공동망에 참가할 자격을 기존 은행과 증권사뿐 아니라 핀테크 업체에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핀테크 기업은 자사 전산망을 금융공동망에 연결(업계에선 ‘붙인다’고 표현한다)하고 고객에게 망 내 다른 기관과 모바일로 돈을 주고받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예컨대 은행 모바일뱅킹 앱을 실행하면 은행과 증권사, 일부 2금융권(저축은행 등 예금취급기관)만 이체 가능한 기관으로 표시되지만, 앞으로는 핀테크 회사도 당당히 목록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반면 한은은 지난 26일 공개한 ‘2018년 지급결제보고서’에서 향후 정책방향 중 하나로 ‘차액결제리스크 관리 강화’를 제시하면서, 올해부터 차액결제 참가은행이 제공해야 할 담보증권 비율을 현행 순이체한도 대비 50%에서 2022년 100%로 단계적으로 인상한다고 밝혔다.

풀어쓰면 이렇다. 소액결제시스템에서 이뤄지는 자금이체는 건수는 매우 많은 반면 건당 금액은 상대적으로 적은 터라, 금융기관들은 번거롭게 매번 돈을 주고받는 대신 한은이 운영하는 거액결제시스템인 한은금융망을 통해 하루 한 번 차액만 정산한다. 이때 자금 부족으로 결제를 못하는 불상사를 막고자 한은은 기관별로 정산해야 할 차액이 너무 커지지 않도록 한도(순이체한도)를 정해놓는 동시에 그 한도만큼 담보를 제공 받는 이중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 이 담보 비율을 향후 4년 동안 2배 높여 안정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순이체한도 기준으로 소액결제 참가기관들의 부담은 42조원가량 늘어난다. 금융결제망 문호가 개방된들 스타트업처럼 자금력 약한 기업에겐 언감생심이다.

금융 신산업 육성의 발판으로 지급결제망을 활용하는 안을 둘러싼 금융당국과 중앙은행의 불편한 기류는 금융위 간부 출신인 김학수씨의 금융결제원장 내정으로 심화하고 있다. 설립 이래 한은 임원 출신이 도맡아온 원장 직을 ‘금융위 인사’가 맡게 되면서 향후 지급결제제도 운용에 있어 금융당국의 정책 의지가 상당히 반영될 거란 관측이 나온다. 금융결제원 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총회의 의장을 한은 총재가 맡고 있다지만, 실무에서 폭넓은 전결권을 발휘하는 이사회에선 원장이 주도권을 행사하기 마련인 까닭이다.

금융위 안은 핀테크 업계의 비용 절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핀테크 서비스의 기본이 간편송금인데, 지금은 업체들이 전자금융공동망을 직접 이용할 수 없어 망 참여자인 은행들과 일일이 제휴를 맺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송금 한 건당 400~500원을 은행 수수료로 물어야 한다. 지난해 2분기 기준 간편송금 일일 이용건수(132만건)를 대입해 단순계산하면 업계가 매일 부담해야 하는 수수료 비용은 5억~6억원대다. 금융당국은 우선 은행에 ‘합리적 비용 조정’을 요구해 핀테크 업체의 부담을 낮추고 차제에 이들 업체가 금융결제원에 정식 가입해 소정의 회비만 내면 금융결제망을 맘껏 이용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이나 전산시스템을 개편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핀테크 업체가 은행에 내고 있는 수수료를 대폭 깎아주는 것과 이들을 아예 금융결제망에 ‘붙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망 참여가 허용되는 순간 해당 기관에는 고객에게 계좌를 제공할 권한이 부여된다. 핀테크 회사가 일반인에게 ‘예금’을 받는 셈이다.

“사실상의 ‘은행’들이 난립하면서 대규모 결제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는 한은 내부 목소리를 괜한 우려로 치부하기 어렵다. 이에 금융위는 핀테크 회사 계좌 예치금 중 일부만 운용을 허용하고 나머지는 제3의 기관에 예탁하도록 하는 대책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매일 52조원(지난해 2분기)에 가까운 자금이 오가는 전자금융공동망에서, 전문 금융사도 아니고 대부분 대형 기업도 아닌 핀테크 업체들이 하루하루 무사히 자금을 맞출 수 있을지 걱정되는 게 사실이다. 5대 국가기간망의 하나인 금융전산망에 진입장벽을 더 높이겠다는 한은의 방침에 수긍이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훈성 경제부 차장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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