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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전쟁 중인 중국, 선거 앞둔 일본… 과거사 접어두고 밀착 가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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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전쟁 중인 중국, 선거 앞둔 일본… 과거사 접어두고 밀착 가속화

입력
2019.03.27 00:18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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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작년 난징 대학살 추도식서 “관계 안정이 서로 이익”

아베 총리는 중국 춘제에 중국어로 영상 찍어 화답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신화통신 뉴시스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신화통신 뉴시스

“중일 관계 안정은 서로에게 이익이다.”

지난해 12월 13일 난징 대학살 81주기 추도식. 연단에 오른 왕천(王晨) 정치국원 겸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은 일본을 향한 발언의 수위를 조심스레 낮췄다. “우리는 역사를 기억하고 과거를 잊지 않을 것을 선서한다”며 중국인들의 역사의식을 강조했을 뿐, 한국처럼 일본을 싸잡아 비난하고 감정적 분풀이의 대상으로 폄하하는 격한 언사는 없었다. 1937년 일본군의 무차별 살육으로 30만명의 목숨을 잃은 비극의 현장에서 그렇게 다시 희망의 싹이 움텄다.

중국 정부도 차분한 기조를 유지했다. 2014년부터 난징 대학살 추모일을 국가급 행사로 격상해 대대적인 반일감정을 부추겼지만, 중일 관계가 풀리면서 추도식에 참석하는 고위인사의 격이 갈수록 낮아졌다. 어지간한 행사는 생방송으로 전하는 중국 관영 CCTV조차 지난해 81주년 중계를 건너뛸 정도였다.

영토분쟁 와중에도 서로 손 잡아

전례 없는 중국의 유화 제스처에 일본 정부도 맞장구로 화답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1월 28일 시정연설에서 “지난해 방중으로 중일 관계가 완전히 정상 궤도로 돌아왔다”며 “앞으로 정상 간 왕래를 반복해 다양한 분야의 교류를 심화하면서 양국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겠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시정연설 당시 “안정적인 우호관계를 발전시키겠다”고 뜨뜻미지근하게 반응한 것과 달리 화끈하게 중국의 손을 들어줬다. 아베 총리는 특히 중국의 설인 춘제(春節)를 앞둔 2월 4일에는 중국인을 향해 서툰 중국어로 인사말을 건네며 신년 축하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기껏해야 신문 지면에 축하의 글을 게재하던 예년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한때 중일 관계는 일촉즉발의 험악한 상황으로 치달았다. 동중국해의 센카쿠열도(尖阁列岛ㆍ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분쟁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력 충돌의 위협이 가신 것도 아니다. 중국 해경선이 일본 영해를 올해에만 8차례 침범해 양측의 신경전은 여전하다.

하지만 늘 과거사 문제에 발목이 잡혀 제자리를 맴도는 한일관계와는 달랐다. 2010년 이후 8년간 중단된 고위급 경제대화가 지난해 4월 재개되면서 물꼬를 텄다. 양국은 정상급 상호방문에 합의하고 높은 수준의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추진키로 했다. 또 일본은 인도ㆍ태평양 전략이 중국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ㆍ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구상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국 간 묵직한 숙원사업을 모두 해치운 셈이다. 아베 총리가 지난해 10월 현직 총리로는 7년 만에 중국을 방문하면서 양국은 우호조약 체결 40주년 잔칫상을 거창하게 차렸다.

떠밀린 중일, 하지만 이용하는 것도 능력

물론 중국과 일본이 자력으로 관계 개선에 속도를 냈다고 보긴 어렵다. 중국은 지난해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한창 달아오르자 새 파트너 일본과 보조를 맞추기 시작했다. 더구나 급속히 해빙무드로 접어든 한반도 정세를 남북이 주도하면서 비핵화 이슈에서 소외되는 것으로 비치던 때다.

일본도 중국이 절실했다. 아베 정권의 명운이 걸린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결집하기 위해 내세울 외교적 치적이 딱히 없는 탓이다. 러시아와의 북방 영토 반환협상이 지지부진한데다, 미국과 비핵화 담판에 나선 북한마저 과거와 달리 일본을 냉대하면서 자칫 ‘외교 무능아’로 전락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쉴 새 없이 한국을 때리며 반감을 조장한 건 그나마 체면치레를 위한 마지막 꼼수였다.

반면 6월 오사카(大阪)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맞춰 일본을 찾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아베 정권의 구세주인 셈이다. 외교 소식통은 26일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동북아의 경쟁자인 중국 리스크를 무난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인식을 유권자에게 심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중국에 너무 굽실거리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을 감수해 온 속사정이기도 하다.

이처럼 중일 모두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양국은 위기를 기회로 활용했고 끝내 상황을 반전시켰다. 2015년 한일 수교 50주년 당시 정상간 상호방문은커녕 위안부 졸속 합의에 급급해 더 이상 발을 떼지 못하던 한국 정부와는 대조적이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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