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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친일’과 ‘종북’이라는 편리한 괴물

입력
2019.03.26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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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3ㆍ1절 백주년 기념사를 읽고 놀랐다. 문 대통령은 친일 잔재 청산이 “너무나 오래 미뤄둔 숙제”라고 했다. “빨갱이”라는 말이 좌우를 막론하고 “모든 독립운동가”를 낙인찍는 말이라고 했다. 게다가 반대파를 빨갱이로 낙인찍는 “색깔론”이 “우리가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친일 잔재”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분열을 일으키거나” “갈등 요인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지향”한다고 말은 했지만, 왠지 불길했다. 종북 대 반공의 전선을 친일 대 반일의 전선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다. 지난 정권이 상대방을 협력 대상이 아니라 “종북”으로 규정하고 타도하려 했듯이 현 정부는 이제 상대방을 “친일”로 규정하고 청산 대상으로 낙인 찍으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야당은 반발했다. 야당 원내대표가 국회 연설에서 반년 전 외신을 인용하여 문 대통령을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종북’이라는 것이다. 여권은 발끈했다. “토착 왜구” “매국” 등의 수사로 격렬하게 야당을 공격했다. 모두 ‘친일’에서 변형된 표현들이다.

일본 군국주의가 패전한 지 어언 74년이다. 한일 국교 회복 54년이다. 6ㆍ25 한국 전쟁 휴전도 벌써 66년. 반공 군부 독재가 무너지고 민주화된 것도 벌써 한 세대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3ㆍ1운동 백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민족이 다음 백년의 비전을 열어 가야 할 시점에 우리는 아직도 ‘너는 친일’ ‘너는 종북’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친일과 종북 담론은 우리가 직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 실질적 해법을 제공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해법의 발견을 가로막는다. 친일과 종북 담론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증오와 공포를 자극한다. 당면한 정치 투쟁에 승리하기 위한 전술로서 민족주의 내지 집단주의에 편승하면 정치적 화해도 정책적 해법도 제시하기 어렵다.

반일의 렌즈만으로 일본을 보면 협력은 불가능하다. 과거를 부정하는 세력과 어떻게 상종할 수 있나? 반공의 프리즘으로만 북한을 보면 북한과의 어떠한 교류, 협력도 어불성설이다. ‘적과의 동침’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친일과 종북의 담론이 위험한 이유는 현실의 일면만 보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직면한 모든 문제가 일본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은 그 모든 문제의 배후에 공산주의가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만큼이나 허구적이다. 갈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본, 북한과 교류하고 대화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교과서를 수단으로 하여 역사에 대한 일원적 시각을 강요하고 정치적 반대파를 제압하려 했다. 문재인 정부는 역사를 정치 투쟁의 씨름판으로 만들어 버린 박근혜 정부의 우를 반복하려고 하는 것인가?

촛불의 의미는 ‘반공’을 ‘반일’로 대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촛불은 민주국가라면 어디에서나 존중받아 마땅한 자유와 인권의 보편적 가치들이 짓밟힌 데 대한 공분의 분출이었고, 그 보편적 가치를 매개로 한 국민적 통합의 모멘트였다. 촛불을 계승한다는 정부가 왜 보편과 통합을 분열과 갈등의 역사로 대체하려 하는가?

과거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독립을 위해 몸 바친 순국선열, 민주화 영령들의 뜻을 기려 나가야 한다. 그러나 과거에 집착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는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다양한 유연성을 발휘하며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주동적으로 선택해 나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친일’과 ‘종북’이라는 편리한 괴물에 의존하여 토론을 중단시키고 상대의 입을 막아온 우리 정치의 나쁜 전통의 악순환을 끊고 촛불이 상징하는 보편과 통합의 동력을 키워 나가길 기대한다. 이제 우리에겐 친일과 종북을 넘어 밝은 미래를 보여줄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안들이 필요하다.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ㆍ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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