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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게리맨더(3.26)

입력
2019.03.26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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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맨더링의 어원이 된, 1812년 3월 26일자 보스턴가제트의 매사추세츠 주 선거구 그림.
게리맨더링의 어원이 된, 1812년 3월 26일자 보스턴가제트의 매사추세츠 주 선거구 그림.

‘게리맨더(Gerrymander)’는 미국 건국기의 유력 정치인 엘브리지 게리(Elbridge Gerry, 1744~1814)와 전설의 괴물 ‘샐러맨더(Salamander)’의 합성어다. 특정 후보ㆍ정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교묘하게 조정하는 행위란 뜻의 게리맨더링이란 말로 널리 쓰인다.

매사추세츠 주의회 선거를 앞둔 1812년 2월 11일, 현역 주지사 게리는 자신이 속한 공화주의당(주권주의자당)이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개편한 법안에 서명했다. 새로 획정된 선거구 가운데 에섹스카운티의 선거구 형상이 괴물처럼 기괴했다. 야당이던 연방주의당이 반발했고, 유권자들도 그 행태를 비난하고 조롱했다고 한다.

그 무렵 보스턴의 한 상인이 주최한 만찬의 화두도 새 선거구였다. 한 미니어처 화가(Elkanah Tisdale)가 장난 삼아 신문에 실린 에섹스 선거구 지도에 날개와 발톱과 이빨을 그려 넣었는데, 그게 영락없는 샐러맨더였다고 한다.

그 그림이 1812년 3월 26일 자 지역 신문 ‘보스턴 가제트’에 게리맨더란 이름으로 실렸다. 선거구 조정으로 이익을 꾀하는 행태는 그 전에도 있었지만, 이름을 얻은 건 그때부터였다. 어쨌건 주의회 선거에서 공화주의당은 지지율 면에서 박빙이던 연방주의당(11석)에 압승(29석)하며, 게리맨더의 위력을 입증했다. 샐러맨더는 전설이지만 게리맨더는 지금도 멸종하지 않고 건재하다. 2018년 6월 미 연방대법원은 위스콘신주와 메릴랜드주 선거구 재획정 법안을 둘러싼 소송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엘브리지 게리는 소신과 원칙의 정치인으로 꽤 두터운 신망을 누린 상인 출신 정치인이다. 공화-주권주의당 제헌의원이던 그는 미국 헌법(본체)이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권리장전(수정헌법 1~10조)를 배제한 채 발의된 데 반발해 끝내 동의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1812년 선거구 조정법안도 그는 반대했으나 소속 의원들의 거센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서명했다는 설이 있다. 그는 그해 주지사 선거에 패배했지만, 제임스 매디슨의 러닝메이트로 그해 대선에 출마, 부통령으로서 1년 반가량을 재직한 뒤 별세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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