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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권 사각’ 특수고용 노동자 220만명… 공식 통계의 4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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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권 사각’ 특수고용 노동자 220만명… 공식 통계의 4배

입력
2019.03.25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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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용부ㆍ노동연구원 공동조사] 

 방과 후 강사ㆍ방판업자 등 통계에 잡히지 않던 ‘新특고’만 55만명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 위한 특고 노동권 보호 입법에 영향줄 듯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근로자처럼 일하지만 법적으로는 자영업자로 분류돼 근로자의 기본권을 보장 받지 못하는 특수형태 근로종사자(특고 노동자) 수가 전체 취업자의 8%가 넘는 220만명에 이른다는 정부와 국책연구기관의 공동 조사 결과가 나왔다. 기존 정부 통계의 4배를 넘는 규모다. 예상을 뛰어 넘는 특고 규모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특고 노동권 보장이 필요하다는 노동계 주장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ILO 핵심협약은 결사의 자유(87호)와 단결ㆍ단체교섭(98호)에 관한 협약으로, 고용관계의 존재 여부를 기준으로 결사의 자유를 보장받는 범위를 결정해서는 안된다는게 ILO의 입장이다.

이 통계는 형식상으로는 고용관계가 없는 자영업자이지만 인적ㆍ경제적으로 사용자에게 종속돼있어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특고노동자를 정부가 제도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근거 마련을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해석돼, 앞으로 관련 입법 과정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고노동자들은 법적으로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과 산재보상 보호법 등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노동3권도 제약을 받아 사용자의 일방적인 계약해지나 근로조건 악화에도 무방비였다. 2007년과 2014년 골프장 캐디, 레미콘 운전기사 등 9개 업종이 산재보험법 대상자가 된 이외에 특고노동자들에 대한 법적인 보호장치는 없는 상황이다.

24일 고용노동부와 한국노동연구원이 공동 조사한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규모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특고 노동자 수는 220만9,343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임금근로자와 자영업자를 포함한 전체 취업자 2,709만명(2018년 10월 기준)의 8.2%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특고 노동자 가운데 165만9,008명은 간병인, 택배기사,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와 같이 전통적인 특고 노동자이다. 계약 형태 등에 따라 세분화 하면 임금근로자에 좀 더 가까운 특고 노동자는 74만5,397명, 1인 자영업자에 더 가까운 특고 노동자는 91만3,611명으로 각각 추산됐다.

특고 노동자 규모_김경진기자
특고 노동자 규모_김경진기자

나머지 55만335명은 산업 변화와 고용형태 다변화로 새롭게 특고 노동자의 성격을 띄게 된 ‘신(新) 특고 노동자’이다. 신 특고 노동자는 점포의 소유여부, 보수 책정의 주체, 업무지시를 받는지 여부, 퇴근시간이 정해져 있는지 여부 등을 따지는 기존 연구나 통계에서는 특고로 포착되지 않았던 새로운 유형이다. 업종별로는 주로 방과 후 강사, 문화센터 강사, 가사도우미, 방문판매업자, 플랫폼 노동자 등으로 성격상 기존 특고보다는 상대적으로 자영업자의 특성이 강하지만 노동권의 보호를 받지 못했던 이들이다.

이번 조사를 담당한 정흥준 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법적 보호가 필요한 특고 노동자의 규모가 최소한 166만명에 이르며, 새로운 유형 55만명에 대한 보호 방안에 대한 논의도 필요함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말했다.

이번에 집계된 특고 규모는 통계청 통계의 4배가 넘는다. 통계청이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를 통해 매년 발표하는 특고 노동자 수는 지난해 8월 기준 50만6,000명에 그친다. 이런 차이에 대해 정흥준 부연구위원은 “통계청 조사는 취업자 중 임금 근로자만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실제 특고 노동자 상당수가 스스로를 1인 자영업자로 인지할 수 있기 때문에 통계청 조사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고 노동자가 간과하기 어려운 규모인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특고의 노동권과 근로조건 보호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특고 노동자 노동권 보장은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세운 ILO 핵심협약 비준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지난해 11월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공익위원 합의안’을 내고 특고 노동자의 노동권을 결사의 자유 원칙에 부합하게 보호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을 정부와 국회에 주문한 바 있다. 현재 국회에는 특고 노동자를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인정하는 내용의 법안(한정애 의원)과 특고 노동자 보호를 위해 별도의 특별법을 만들자는 법안(임이자 의원) 등이 발의되어 있다.

노동연구원은 이번 조사가 특고 규모를 파악하기 위한 국내 연구 가운데 처음으로 대규모 표본조사(응답자 3만632만명)를 지난해 10, 11월 두 달 간 직접 수행했고, 특고 노동자의 개념을 명확히 하기 위해 심층 면접과 예비 테스트 등을 거쳤다는 점에서 기존 조사보다 신뢰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세부적인 조사 결과를 살펴 보면 특고 노동자가 주로 종사하는 직업군은 임금근로자에 가까운 특고 노동자 중에서는 건설관련업(15.6%), 각종 강사업(14.0%), 가사도우미(7.7%) 등이었다. 1인 자영업자에 가까운 특고는 보험설계사(20.7%), 판매업(10.0%), 택배ㆍ덤프트럭ㆍ레미콘 운전기사(7.9%) 등 직업군에 많이 종사했다. 특고 노동자는 여성이 57.1%로 남성(42.9%)보다 다수였다. 연령별로는 40대(27.4%), 50대(26.4%), 60세 이상(18.3%) 순으로 특고 노동자가 많았다.

이성택 기자 hig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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