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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과감한 경제학에 대한 옹호

입력
2019.03.25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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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범상치 않은 공개서한을 보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해 초 취임했고, 경기 침체로 노동자의 4분의 1이 일자리를 잃었던 때였다. 취임 후 공공사업, 농업보조금, 금융규제, 노동개혁 등 야심 찬 뉴딜 정책을 폈고, 국내 통화정책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금본위제를 폐지했다.

케인스는 이 정책을 수긍하면서도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는 대통령이 정책의제를 필요 이상으로 확대해 경제회복을 어렵게 한다고 했다. 이 정책은 총수요를 크게 증가시키지 못한 채 지나치게 경제규칙만 바꾸는 결과를 가져왔다. 케인스는 특히 전국산업부흥법을 비판했는데, 이 법은 노동권을 크게 확대했고 독립된 노동조합을 형성케 했다. 그는 이 법이 산업부흥에 직접 기여하지 못할 것이며, 기업 신뢰도를 약화시키고 연방정부를 압박할 것이라 했다. 그는 대통령이 “이상한 조언을 받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케인스는 대통령에겐 우정 어린 비평가이자, 동정 어린 비평가였다. 뉴딜 정책의 상당 부분이 일반 경제학 통설에 역행하는 것으로, 당시 주요 경제학자 중 이 정책의 지지자는 거의 없었다. 일례로, 세바스찬 에드워즈는, 최근 출간한 ‘미국의 만행’에서, 경제학계의 지배적 견해는 금과 달러화의 연결고리를 무너뜨리는 것은 혼란과 불확실성을 불러온다는 것이라고 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고문단’ 중에서 진정한 경제학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특별한 경험조차 없는 41세의 콜롬비아대 렉스포드 터그웰 교수 뿐이었다.

대공황 때와 비슷한 어려움에 직면한 오늘날, 경제학자들이 도움이 될까? 현재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실업이 심각한 문제가 아닐지 모르나, 노동력 대부분이 경제발전에서 배제되고 있는 듯하다. 젊고 많이 못 배운 노동자에 대한 전례 없는 불평등과 저소득 전망은 자유민주주의의 토대를 잠식하고 있다. 세계화를 뒷받침하는 규칙은 개혁이 절실히 필요하며, 그 사이 기후변화는 지속적으로 실존적 위협이 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은 과감한 대응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도 주류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경제활동 규칙을 뒷받침하는 권력구조는 건드리지 않고 세법 수정, 탄소세, 임금보조금 등 소극적 해결책에 집착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보다 넓은 시야를 통해 난제에 대처할 수 있다. 지난달, 한 유명한 경제학자들의 단체에 참여해 ‘포용적 번영을 위한 경제’(EfIP)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노동시장과 금융에서 혁신정책과 선거규칙까지, 이 프로젝트는 불평등과 배제, 그리고 이를 생산하는 권력 불균형에 더 중점을 두는 야심 찬 정책 아이디어를 제시하려 한다.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지난 수십 년 간의 지배적 정책 아이디어들은 여러 면에서 주류 경제학의 격을 실추시켰다. 현대의 경제연구는 실제 더욱 공정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경제학은 포용적 번영을 도울 수 있지만,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설득하는 것은 경제학자들의 몫이다.

이 단체는 과학적 철저함과 함께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경제학자들로 구성돼 있다. 이 시대의 캐치프레이즈, ‘증거 기반 정책’에 따라 정책 보고는 주류 경제학의 도구를 사용한 실증분석을 기반으로 하지만, 우리에게 ‘증거 기반’ 접근법이란 현 제도적 장치를 유지하는 정책을 위한 보수적 편향성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실험을 장려하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해보지 않고는 새로운 증거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시장은 정해진 형식이 없는 다양한 제도에 의존해 생성되고, 규제되고, 안정화된다. 시장 운영에 있어 가장 기초적인 제도가 되는 재산과 계약은 여러 방법으로 구현될 수 있는 합법적 구조이다. 우리가 기술혁신과 기후변화가 낳은 새로운 현실을 고심할 때, 다양한 권리자 사이에서의 재산권 분배에 관한 문제가 중요해지는데, 경제학은 확실한 해법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그에 가까운 타협점을 찾는 데 필요한 도구가 된다.

초기 정책 제안에서 공통주제는 세계 경제 흐름의 이면에 작용하는 권력의 비대칭이다. 완전경쟁과 완전정보 체계에서는 비대칭의 작용을 고려하지 않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권력의 비대칭이 여러 곳에 존재한다.

임금 및 복리후생 협상에서의 갑을 관계, 시장 장악과 시장 종속적 위치, 국제 및 국내 사업능력, 세금 포탈 여부, 무역협상에서의 위치, 투표권 유무에 권력의 비대칭이 있고, 이에 대한 논의는 분배의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전반적 경제성과의 향상에도 관련이 있다. 경제학자들은 그런 문제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강력한 이론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증거에 매달리는 습관으로 인해 근본적 변화를 꺼린다. 그러나 경제학자라면, 새로운 문제에 대해 새로운 해결책을 구상해야 한다. 상상력이 모두 현실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루스벨트 대통령의 말처럼 ‘과감하고 지속적인 실험’의 가치를 재발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확실히 실패할 것이다.

대니 로드릭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공공정책대학원 교수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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