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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피해 보상 아닌 생활안정 지원”… 월미도폭격 피해주민 지원조례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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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피해 보상 아닌 생활안정 지원”… 월미도폭격 피해주민 지원조례 논란

입력
2019.03.22 13:50
수정
2019.03.2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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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의회, 과도한 보상 지적에 “잘못된 프레임 씌우기”

미 해병대의 월미도 공격.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제공
미 해병대의 월미도 공격.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제공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당시 미군 폭격으로 가족과 고향을 잃은 월미도 원주민들에게 생활 안정 지원금을 지급하는 조례가 최근 지방의회를 통과한 것과 관련해 과거사에 대한 과도한 피해 보상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러나 해당 조례 안을 발의한 지방의회 측은 “재산 피해 보상이 아닌 생활 안정 지원을 과도한 보상이라는 프레임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반박했다.

22일 인천시의회에 따르면 인천상륙작전 당시 미군 폭격으로 집단 희생되고 강제 이주 피해를 입은 월미도 원주민들에게 생활안정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을 뼈대로 한 ‘인천시 과거사 피해주민의 생활안정 지원 조례안’이 최근 시의회를 통과했다. 조례안을 발의한 시의원들은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진상 규명 결정에 따른 권고사항을 이행하고 과거사 피해주민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이에 따라 과거사위 진상 규명으로 피해가 드러난 사안에 대해서만 조례안은 적영된다.

조례안은 인천시가 ‘과거사 피해주민 생활안정지원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피해주민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가리고 생활안정 지원금 지급 대상 및 범위, 지급액과 지급방법 등을 결정하도록 했다.

과거사위는 2008년 2월 미군이 상륙작전 수행을 위해 북한군이 주둔 중인 월미도를 폭격하면서 민간인 거주지까지 공격했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당시 과거사위는 2년간에 걸친 조사를 거쳐 내놓은 결정서를 통해 우리 정부와 미국 정부가 협의해 희생자에 대해 조치를 하도록 권고했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월미도 폭력 피해주민 보상과 지원 문제는 2006년 7월 당시 열린우리당 한광원 의원 등이 ‘월미도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주민 보상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후 과거사위가 조사에 착수하는 등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졌으나 법안은 2008년 5월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012년 9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문병호 의원이 월미도 폭격 사건 특별법을 재차 발의했으나 같은 이유로 2016년 5월 폐기됐다. 월미도 폭격 사건 피해자와 유족들이 참여하는 월미도원주민귀향대책위원회는 당시 문 의원에게 사망보상금 등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지원 규모를 줄인 낮춘 특별법 수정안을 마련해 전달까지 했으나 입법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법안이 아닌 지방자치단체 조례를 만들기 위한 시도도 2011년과 2014년 두 차례 있었으나 법제처가 ‘인천상륙작전 피해 원주민에 대한 피해 보상 및 지원은 자치단체 업무가 아닌 국가 업무’라는 견해를 내놓으면서 무산됐다. 그러나 법제처가 최근 ‘월미도 폭격 사건 피해자 중 현재 인천시 주민에 대한 생활안정 지원은 자치 사무로 할 수 있다”고 해석을 내리면서 조례 제정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조례 제정과 관련해 과거사에 대한 과도한 피해 보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월미도원주민귀향대책위원회는 2011년 2월 인천지법에 정부와 미국 정부 등은 월미도 원주민 가구당 300만원씩 모두 1억3,500만원을 배상하라고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으나 패소하기도 했다. 원주민들이 월미도에 살았다는 근거가 될 토지대장 등이 없다는 이유였다.

이에 대해 지원 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안병배 시의원은 “가족과 고향을 잃은 월미도 원주민에게 집이나 땅을 사주자는 게 아니라 월남전 참전용사들에게 지원하는 수당처럼 생활안정 지원금을 주자는 것”이라며 “과거사위 권고도 나온 상황에서, 이를 과도한 보상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월미도원주민귀향대책위에 따르면 한국전쟁 기간인 1950년 9월 10일 미군 항공기가 북한군이 주둔하던 월미도에 네이팜탄 95발을 투하했다. 5일 뒤 상륙작전을 위한 포석이었다. 당시 월미도에는 80여가구 600여명이 살고 있었는데 폭격으로 10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상륙작전 이후 월미도가 군사 기지화하면서 피해자들은 고향도 잃었다. 미군이 주둔하던 월미도 땅은 1971년 우리 해군 소유가 됐고 인천시는 2001년 이 땅을 430억원에 사들여 월미공원을 조성했다. 이 과정에서 토지대장이 없는 피해자들은 소유권을 인정받지 못했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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