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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원법’ 제동 걸렸는데… 환자ㆍ가족단체가 환영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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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원법’ 제동 걸렸는데… 환자ㆍ가족단체가 환영한 까닭은

입력
2019.03.25 04:4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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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의 없어도 지역기관에 퇴원정보 통보 

 정신건강법 개정안에 인권위 “차별 행위” 

 환자ㆍ가족단체도 “센터 열악해 도움 안돼” 

“퇴원한 환자 정보를 동의 없이 관련기관에 넘겨주는 ‘임세원법’은 반대합니다.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찾았다가 형편없는 수준에 실망하고 다시 찾지 않는 환자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불쑥 연락하면 강제입원 트라우마가 있는 환자는 더 숨게됩니다.” (조순득 정신장애인가족협회 대표)

진료 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 같은 피해를 막기 위한 정치권의 ‘임세원법(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 입법에 제동이 걸렸다. 정신의료기관에서 퇴원한 사실을 환자나 보호자의 동의 없이 관련 기관에 통보하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두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정신질환을 이유로 한 차별행위 △실효성마저 떨어진다며 부정적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지난달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임세원법 입법 공청회’에 참석한 정신질환 환자단체·환자가족단체 회원들이 비자의입원(강제입원)을 요건을 완화하고 사법입원제를 도입하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에 반대하는 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후 사법입원제는 변호인력 등 예산문제로 도입이 어려워졌고,3월 현재는 환자 퇴원 정보의 관계기관 공유,외래치료명령제 강화 등이 임세원법논의대상으로 떠오른 상황이다.김민호 기자
지난달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임세원법 입법 공청회’에 참석한 정신질환 환자단체·환자가족단체 회원들이 비자의입원(강제입원)을 요건을 완화하고 사법입원제를 도입하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에 반대하는 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후 사법입원제는 변호인력 등 예산문제로 도입이 어려워졌고,3월 현재는 환자 퇴원 정보의 관계기관 공유,외래치료명령제 강화 등이 임세원법논의대상으로 떠오른 상황이다.김민호 기자

 ◇환자ㆍ가족단체 “센터 부실한데 정보 넘기라니” 

정부ㆍ의료계는 정신질환은 꾸준히 치료를 받을 경우 자·타해 위험이 적다고 설명한다. 치료를 중단할 경우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니 지속적 사례관리가 가능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게 정부 입장이다.

그러나 인권위는 지속적 사례관리를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한 곽상도ㆍ강석호ㆍ정춘숙 의원이 각각 발의한 정신건강복지법 3건의 개정안을 문제삼았다. 이 법안은 자신이나 타인을 해치는 행동으로 입원했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환자, 강력범죄를 저지른 환자가 정신의료기관에서 퇴원할 경우, 환자나 보호의무자의 동의 없이 지역별 정신건강복지센터에 그 사실을 통보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환자ㆍ가족단체들도 인권위와 같은 입장이다. 이 법안들이 인권침해는 명확한 반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센터에 퇴원 사실을 알려도 사례관리요원 1명이 평균 70~100명의 환자를 돌보는 현실에서 적절한 도움을 받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한 조현병 환자의 어머니는 “정신질환 환자들은 의식 수준이 천차만별인데 센터의 재활프로그램은 단 한 가지였다”면서 “20대 아들이 고령의 환자들과 어울릴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센터는 정신질환 이외에 자살ㆍ중독 예방 문제까지 떠맡고 있어 근무자들 역시 힘겨운 기색이 역력했다”라고 덧붙였다.

센터가 직접 방문 등 사례관리를 하다가 병력이 유출될 것이란 우려도 크다. 도움은커녕 동네에서 손가락질을 당하기 십상이라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서울의 한 30대 조울증 환자는 “대중목욕탕 입구에 ‘정신질환자 출입거부’ 같은 문구가 붙어있는게 현실”이라며“개인정보만 강제로 가져가겠다니 누가 동의하겠느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환자 당사자 단체인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의 박환갑 사무총장은 “센터에서 가정방문 등이 이뤄질 텐데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주변 시선이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권오용 한국정신장애인연대 사무총장은“정말 치료를 도울 의지가 있다면 이미 연락처를 갖고 있는 병원 측이 사례관리에 나서면 된다”말했다.

인권위 역시 환자에게 서비스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고 그 효과를 설득하는 것이 먼저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해 인권위 조사에선 퇴원 환자90%가 지역사회에서 도움을 받기를 원했지만, 46%가 퇴원 시 이용 가능한 서비스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인권위와 환자단체들은 퇴원 시 정보제공에 동의하는 환자 비율이 10%에 그치는 이유는 치료 자체를 피하기보다는 적절한 치료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장애인개발원 앞에서 정신질환 한국정신장애인연대 관계자들이 비자의입원(강제입원)을 요건을 완화하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에 반대하는 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민호 기자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장애인개발원 앞에서 정신질환 한국정신장애인연대 관계자들이 비자의입원(강제입원)을 요건을 완화하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에 반대하는 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민호 기자

 ◇의료계 “현실 열악하지만 제도 필요” 

의료계도 환자가 지역사회에서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열악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병원이 퇴원한 외부 환자까지 돕기엔 인력의 한계가 있다며 임세원법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센터가 지역사회에서 치료를 지원해야하되 이를 위해선 △퇴원 정보 공유 △외래치료명령제에서의 보호자 동의 규정 삭제가 필수란 주장이다. 최준호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이사는 “환자들 사이에 센터를 이용해보니 정말 좋았다는 입소문이 나야 하는데 현실은 실망스러운 수준”이라면서도 법안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법안을 도입하면서 환자들에 대한 금전적 지원 등 실질적 도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세원법은 이번 주 국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복지부는 개인정보 침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입법을 추진해야한다는 입장이다. 구체적으론 정보 제공 여부를 결정할 때 의사 판단을 거치도록 한 정춘숙 의원안에 무게를 두고 있다. 환자ㆍ가족단체들 역시 공동행동에 나선다. 16개 사회단체가 참여한 ‘정신건강서비스 정상화 촉구 공동대책위원회’는 응급상황 대응 강화를 포함한 독자적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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