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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명의 이슬람 문명기행] 아테네 학당 속 이방인 철학자, 중세 유럽을 깨우다

입력
2019.03.23 04:4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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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과 무슬림 철학자 이븐 루시드 

 

 ※ 이슬람 국가 모로코에서 이슬람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정명 명지대 교수가 우리가 잘못 알고 있거나 모르고 있는 이슬람 문명에 대한 이야기를 <한국일보>에 매주 들려드립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은 사람도 학창시절 미술 교과서나 교양서적을 통해 한번쯤 보았을 법한 작품 중 하나가 아마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이 아닌가 싶다. 16세기 초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에는 서양을 대표하는 지성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토론하는 장면이 담겨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는 용모나 의복이 달라 유달리 눈에 띄는 이방인 한 명이 있다. 유럽에서는 아베로에스라는 라틴어식 이름으로 알려진 중세 무슬림 철학자 이븐 루시드가 그 주인공이다.

 ‘아테네 학당’에 등장한 무슬림 철학자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더불어 유럽의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손꼽힌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아테네 학당’은 교황 율리오 2세의 의뢰로 바티칸 궁에 있는 교황의 개인 도서관에 그린 프레스코 벽화로 1509년에 작업을 시작해 1511년에 완성됐다.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아를 상상하여 그린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에는 역사적으로 유럽의 지성을 찬란하게 빛낸 58명의 위대한 석학들이 그려져 있는데, 현재까지 신원이 밝혀진 인물은 20여명에 불과하다.

이 작품에서 라파엘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에 위치시키고 나머지 학자들은 두 인물을 중심으로 좌우로 나눠 계단 위아래 곳곳에 배치시키는 구도를 취했다. 그림에서 플라톤은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는 그가 가르쳤던 이데아 사상을 상징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오른손 바닥을 땅을 향해 뻗고 있는데, 이는 과학적 관찰과 실험을 중시했던 그의 현실주의적 철학을 상징한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플라톤(왼쪽)과 오른손 바닥이 땅을 향하도록 뻗은 아리스토텔레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플라톤(왼쪽)과 오른손 바닥이 땅을 향하도록 뻗은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계단 좌측 아래에 터번을 쓰고 콧수염이 달려 있어 한 눈에도 용모가 이방인임을 금세 알아챌 수 있는 이가 바로 12세기 무렵 스페인 남부 지역에 위치한 안달루스 지역에서 활동했던 무슬림 철학자 이븐 루시드(1126~1198)다. 그는 서양에서 라틴어식 이름인 아베로에스(Averroes)로 불렸다. 라파엘로가 서양 지성의 역사를 한 폭의 그림에 담은 아테네 학당에 굳이 이 무슬림 철학자를 등장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이슬람 세계에서 부활하다 

중세 유럽의 역사는 흔히 ‘암흑시대’로 묘사된다. 이 기간 동안 유럽에서는 이성(理性)의 활동이 교회 권위에 눌려 억제됐고, 그 결과 고대 그리스의 과학과 철학의 전통은 자취를 감추게 됐다. 유럽에서 사라진 고대 그리스 철학이 부활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슬람 세계였다.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대제국을 건설한 후 번성을 누렸던 압바스조(750~1258)는 8세기 이후부터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 등으로부터 수입한 의학, 수학, 천문학, 철학 등의 서적을 아랍어로 번역한 후 연구하기 시작했다. 당시 아랍어로 번역된 철학 서적 가운데는 플라톤의 저서 다수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형이상학’ ‘범주론’ ‘해석론’ ‘영혼론’ ‘분석론’ ‘니코마코스 윤리학’ 등도 포함돼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접한 무슬림 지식인들은 곧바로 그의 높은 학문적 경지에 매료돼 그에게 ‘제일스승’이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해 신으로부터 받은 계시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의 이성만으로도 얼마든지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슬람 세계에서 최초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연구로 명성을 떨친 자는 알파라비(872~950)였다. 9세기 무렵 바그다드에서 활동했던 알파라비는 논리학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업적을 남겼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에 대해 여러 권의 주해서를 집필했다. 10세기 말 천재 의학자로 유명했던 이븐 시나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심취해 ‘형이상학’을 무려 40여 차례나 읽었으나 내용이 난해해 어려움을 겪었고, 알파라비의 주해서를 읽고서야 비로소 그 내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중세 이슬람 세계 최고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권위자 

이슬람 세계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연구는 12세기 무렵 이븐 루시드에 의해 절정에 달했다. 그는 1126년 안달루시아의 문화 중심지 코르도바의 명망 높은 이슬람 율법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아리스토텔레스야말로 학문과 진리의 체계를 완성한 자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의 철학 연구에 매진했다. 40대 초반 소장파 학자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던 이븐 루시드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안달루시아를 통치하고 있었던 무와히둔조(1180~1212)의 군주 아부 야쿱 유수프가 그에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서를 주해해달라고 의뢰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그는 평생에 걸쳐 26권이 넘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주해서를 저술했고, 그 결과 당대 최고의 아리스토텔레스 연구 권위자로서 명성을 떨치게 됐다.

이븐 루시드는 중세 이슬람 세계 최고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권위자로 여겨진다.
이븐 루시드는 중세 이슬람 세계 최고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권위자로 여겨진다.

이븐 루시드는 이슬람 세계에서 첨예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이성과 계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몇 권의 책을 저술했다. 당시 보수적인 신학자들은 이성을 중시했던 철학자들에게 반감을 품고 있었다. 보수 신학자들은 모든 진리의 원천이 종교적 계시 안에 있으며, 따라서 이성을 진리의 근본으로 삼는 것은 이슬람 교리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이븐 루시드는 “진리는 진리와 모순되지 않는다”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이성과 계시는 동일한 진리를 추구하되 그것을 표현하는 양상만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계시의 내용을 담은 종교 경전은 대중을 위해 그들이 이해하기 쉬운 표현법으로 진리를 전달하는 데 반해, 이성적 성찰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 철학서는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방식의 표현법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성과 계시는 겉보기에 간혹 표현 방식에서 모순돼 보일 수 있지만, 실제 이 두 가지는 같은 진리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라틴 아베로에스주의자 등장 

13세기 무렵 이븐 루시드의 작품 상당 수가 아랍어에서 라틴어로 번역된 후, 그의 라틴어식 이름인 아베로에스는 유럽 전역에 알려지게 됐다. 유럽의 지식인들은 그를 가장 정통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해석의 권위자로 인정해 ‘주석가’란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주석가란 별명이 암시하듯, 유럽인들 사이에서 아베로에스의 주해서를 읽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 과정 중 하나로 여겨졌다.

'아테네 학당'에서 자신의 앞에 앉은 피타고라스의 공책을 훔쳐보고 있는 듯한 표정의 이븐 루시드(왼쪽사진). 고향 코르도바에 세워진 이븐 루시드의 조각상.
'아테네 학당'에서 자신의 앞에 앉은 피타고라스의 공책을 훔쳐보고 있는 듯한 표정의 이븐 루시드(왼쪽사진). 고향 코르도바에 세워진 이븐 루시드의 조각상.

13~14세기 무렵에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그의 이름을 딴 라틴 아베로에스주의자(Latin Averroists)라는 학파가 출현했다. 이들은 유럽이 암흑의 시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는 이성이 종교적 제약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13세기 파리에서 활동했던 라틴 아베로에스주의자 시제루스는 “이성과 계시는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는 이븐 루시드의 주장을 변형 발전시켜 ‘이중진리론’을 설파했다. 그는 이성의 영역과 종교의 영역은 서로 다른 것이고, 따라서 철학에 따라 진리인 것이 신학에 따라 그 반대의 것도 진리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14세기 초 이탈리아의 파두아에서 활동했던 라틴 아베로에스주의자 마르실리우스는 “종교는 실천적 기능을 그리고 철학은 이론적 기능을 담당 한다”고 주장하며, 철학을 종교의 간섭으로부터 독립시키고자 했다. 그리고 이 같은 라틴 아베로에스주의자들의 발언은 유럽에서 르네상스가 개화하는데 중요한 촉매제 역할을 했다.

이쯤에서 글의 서두에서 제시한 “왜 라파엘로가 굳이 아테네 학당에 무슬림 철학자를 등장시켰나”란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라파엘로는 유럽에서 단절된 철학 연구의 전통을 부활시킨 사람들이 다름 아닌 무슬림 철학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대표자로서 이븐 루시드를 선택한 것이다. 여기에서 개인적 사견을 조금 덧붙이자면, 아마도 라파엘로는 이븐 루시드의 모습을 그리긴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썩 내키지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림에 표현된 이븐 루시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는 앞에 앉아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피타고라스의 공책을 마치 커닝이라도 하듯 몰래 훔쳐보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라파엘로가 이븐 루시드를 이처럼 묘사 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의도된 것일까? 만약 의도된 것이었다면, 라파엘로는 비록 이븐 루시드가 큰 명성을 얻었다 해도 철학의 원류는 여전히 그리스이고 그의 철학은 고작해야 그리스의 업적을 베낀 것에 불과하다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김정명 명지대 아랍지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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