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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첫 재심... 71년 만에 희생자 명예회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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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첫 재심... 71년 만에 희생자 명예회복될까

입력
2019.03.21 16:06
수정
2019.03.21 18:5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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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피해 가족들이 희생자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여순사건 피해 가족들이 희생자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48년 여순사건 당시 억울하게 처형된 민간인 희생자들이 71년 만에 재심을 받게 됐다. 해방정국에서 국군이 반란군에 점령됐던 여수와 순천을 탈환한 뒤 민간인을 무차별 처형한 사건과 관련해 재심 재판이 열리는 것은 처음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여순사건 당시 내란 등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사망한 장모씨 등 3명의 재심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재항고를 기각하고 재심 개시를 결정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장을 포함한 13명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재판에서 주심 김재형 대법관이 쓴 다수의견에 9명의 대법관이 동참했다.

대법원은 “피고인들이 여순사건 당시 군법회의에 회부돼 유죄판결을 받았고, 군경이 이들을 구속영장 발부 없이 불법 체포ㆍ감금했다는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또 “판결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판결집행명령서와 당시 언론보도 내용이 있다”면서 재심 대상 판결이 존재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기록에 따르면 당시 군경의 민간인 체포ㆍ감금이 일정한 심사나 조사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졌고, 피고인들의 연행 과정을 목격한 사람들의 진술도 이에 부합한다”며 재심사유도 인정했다.

반면, 박상옥 이기택 대법관은 “재판이 실제로 있었는지 의문”이라면서 재심 대상 판결의 존재부터 부정하면서 “설령 재판이 있었다고 보더라도 절차적 하자가 매우 중대해 규범적 의미에서는 재판이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재심대상판결의 존재를 인정하더라도 공소사실을 알 수 없는 이상 형사재판, 재심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조희대 이동원 대법관은 “재심사유가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여순사건은 1948년 제주 4ㆍ3사건 진압을 위해 출동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군인들이 여수, 순천 일대에서 반란을 일으킨 사건이다. 토벌군의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 1만여명이 ‘빨갱이’로 몰려 목숨을 잃었다. 당시 군사재판은 구체적 사실 확인 절차도 없었고, 혐의도 자의적으로 적용됐다. 처형된 이들 중에는 아예 무슨 내용인 지도 모른 채 죽은 이들도 있었다. 이후 여순사건을 다룬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년 “당시 군경이 장씨 등 439명의 민간인을 불법 연행해 사살했다”고 결론냈다.

장씨 등도 1948년 10월 반란군을 도왔다는 혐의로 순천을 탈환한 국군에 체포된 뒤 군사법원에서 22일 만에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당한 당시 희생자들이다. 장씨 유족 등은 과거사위원회 결과를 바탕으로 2013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재판에서는 당시 군과 경찰이 장씨 등을 불법으로 체포해 감금했다고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이에 1ㆍ2심은 “당시 판결문에 구체적인 범죄사실과 증거요지가 기재되지 않았고, 22일 만에 사형이 선고돼 집행된 점에 비춰보면 장씨 등은 영장 없이 체포ㆍ구속됐다고 봐야 한다”며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다.

대법원이 재심 개시를 최종 확정함에 따라 장씨 등에 대한 재심 재판은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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