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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C] 어느 대법관의 4년

입력
2019.03.21 19: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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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C’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2015년 5월 8일 취임사를 하고 있는 박상옥 대법관. 연합뉴스
2015년 5월 8일 취임사를 하고 있는 박상옥 대법관. 연합뉴스

해리 블랙먼(1908~1999)은 1970년부터 24년간 미국 연방대법관을 지내며, 3,874건의 판결에 관여했다. 보통 대법관이 된 이들은, 대법관이 되기까지의 삶이 극적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블랙먼의 진짜 인생은 대법관이 되고서야 시작됐다. 보수 대통령 닉슨의 지명을 받고, 보수 대법원장 워렌 버거(1969~1986년재임)의 절친한 벗이었지만, 블랙먼은 역사상 가장 진보적 대법관 중 한 명으로 기록된다.

공화당원이던 블랙먼은 지명 당시 ‘무난한 보수파’로 평가받았다. 초반 5년간 버거와 블랙먼의 의견이 일치된 비율이 87.5%였을 정도로, 그는 대법원장에 그저 동조하는 이미지로 알려져 있었다. 둘은‘미네소타(두 사람의 출신지) 쌍둥이’라 불렸다.

그러나 블랙먼은 조금씩 변하고 또 변했다. 보수의 막내였던 그는 퇴임 무렵 진보의 맏형이 돼 있었다. 세상은 블랙먼의 이름을 모를 수 있지만, 그가 남긴 낙태허용 판결 ‘로 대 웨이드(Roe vs. Wade)’는 사법 사상 세상을 가장 크게 바꾼 판결 중 하나로 평가된다. 린다 그린하우스의 ‘블랙먼, 판사가 되다’에 그 치열한 변신의 과정이 담겨 있다.

블랙먼을 떠올리게 한 이가 우리 대법원에 있다. 박상옥 대법관이다. 박 대법관이 취임하던 2015년 5월, 그의 ‘실력’을 논하는 평가는 없었다. 당시 논란은 박 대법관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때 수사팀 말석검사였다는 점에 집중됐다. 국회 인준 과정에서 그가 “진상을 은폐한 적 없다”고 해명했지만, 야당은 청문보고서 채택을 거부하며 표결에 불참했다. 그는 여당(새누리당) 찬성표만으로 인준됐다. 법원공무원노조나 일부 판사들은 대놓고 취임을 반대했다.

임명과정이나 이력을 봐선 보수적 판결이 예상됐다. 실제 판결은 어땠을까? 그가 주심이던 사건 판결문을 찾아 봤더니, 박 대법관은 세간의 예상과 기대(아예 기대가 없었는지 모른다)와 달리 노동분야에서 매우 전향적 판결을 남겼다.

박 대법관은 철도역 매점 운영자를 ‘근로자’로 보아 단체교섭권을 인정했고, 버스회사 통상임금 사건에서 “경영상 어려움을 근로자에게 전가해선 안 된다”며 신의성실원칙을 엄격히 적용했다. 경비원 야간 휴게를 근무시간으로 인정했으며, 육체노동자 정년을 65세로 상향했다. 이미 차벽이 설치된 도로를 점거한 것을 교통방해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 모든 사건은 하급심을 그대로 확정한 게 아니라 박 대법관이 결론을 바꿔 파기환송한 경우다.

특히 노동 쪽에서 그의 결론은 꽤나 일관적이었고, 아직 임기 2년이 남았지만 재평가 여지는 높아 보인다. 물론 그의 대법관 지명이 여전히 부당하다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런 재평가는 불편한 일일 수 있다. 좋은 판결이 과거 의혹을 말끔히 씻어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예순이 넘은 나이, 더 이상 높이 오를 곳 없는 자리에 선 이가, 안주함 없이 약자의 처지를 이해하는 쪽으로 조금씩 나아간 과정을 결코 과소평가하기 어렵다. 법조인 박상옥에게서 ‘박종철’이란 꼬리표를 떼어내기 어렵지만, 그 꼬리표만으로 대법관 직무 자체의 공과를 판단하는 것도 정당한 것만은 아니다.

그가 변신을 시도한 것인지, 혹은 진면목이 드러난 것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4년 전 취임사, “약자와 소수자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고 했던 다짐이, 빈말이 아님을 지금까지는 판결로써 증명했다.

우리가 사법농단에서 봤듯, 대법관의 권능은 공공선의 실현을 한참 미룰 수도, 아예 수포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대법관의 과거를 돌아보는 것만큼 6년의 임기를 곱씹는 일 역시 중요하다. 그가 2021년 5월 법복을 벗을 때 자신만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하나쯤 남기고 떠날 수 있길, 그래서 더 괜찮은 세상이 오는 때를 그의 힘으로 앞당길 수 있길 기대한다.

이영창 사회부 차장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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