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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 주선 미팅, 출산장려” “그 예산 육아시설 투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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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 주선 미팅, 출산장려” “그 예산 육아시설 투자를”

입력
2019.03.25 04:4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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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선 결혼장려팀까지 꾸려 

 지원자 부족하면 직원 강제 동원 

 “젊은 세대와 동떨어진 전시행정” 

 “지역특성에 맞추면 기회될 수도” 

[저작권 한국일보] 박구원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박구원 기자


“일단 만나야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질 테니 분위기라도 조성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vs “사람 못 만나 결혼 안 하는 게 아닌데, 구청까지 미팅을 주선하는 건 지나치지 않나요.”

2000년대 초 한동안 유행했던 선남선녀 단체미팅이 서울 구청들의 저출산 정책의 하나로 부활하고 있다. 구청들은 좋은 만남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선의를 내세우지만 선뜻 나서는 젊은이가 별로 없는데다, 예산이 투입되는 정책이다 보니 효용성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24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마포ㆍ서대문ㆍ은평구 등 서북지역 3개 구는 ‘구청 미혼 직원 만남 행사’를 올해 주요 협력사업 중 하나로 검토하고 있다. 노원구와 강남구 등 다른 구들도 비슷한 행사를 기획 중이다. 서초구의 경우 2011년부터 미혼 직원 만남 행사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강당이나 웨딩홀 같은 공간을 빌린 뒤 미혼남녀 지원자들을 모아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저출산 정책의 일환으로 결혼 기피 문화를 바꾸겠다는 게 이런 행사들의 공통된 취지다. 구청들은 만남의 장을 마련하는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2016년부터 두 차례 단체 미팅 행사를 진행한 성북구 관계자는 “참여자들도 많았고, 행사 뒤 설문조사에서는 ‘만남의 기회가 없어 그간 결혼 생각을 못했다’는 답변이 많이 나왔다”고 전했다.

지방인 대구 달서구는 2016년 ‘결혼장려팀’까지 만들어 단체 미팅 등을 주선하고 있다. 대구 달서구 결혼장려팀 관계자는 “나이가 들수록 만남의 기회가 적어지는 게 사실“이라며 “기왕에 만날 거라면 사설 업체보다는 공공기관의 행사가 신뢰도 측면에서 더 낫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반면 구청들의 단체미팅을 바라보는 젊은이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직장인 김예진(26)씨는 “여성은 출산하면 경력단절, 이른바 독박육아 등의 문제와 직면하는데 단순히 많이 만나게 해서 결혼을 장려하면 된다는 식의 접근 자체가 요즘 시대에 안 맞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최근 거주지 구청에 아내를 임산부로 등록한 안상민(33)씨는 “양육비 걱정으로 결혼 뒤 3년간 아이를 가질 엄두도 내지 못했다”며 “단체미팅을 주선할 게 아니라 산후조리원이나 보육시설 같은 육아 인프라 지원에 더 많은 예산을 썼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결혼에 대한 미혼남녀 견해. 박구원 기자
결혼에 대한 미혼남녀 견해. 박구원 기자

공무원들이 추진하는 행사라 ‘성과’를 위해 무리수를 둘 여지가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 지난해 단체미팅 행사를 기획한 인천 부평구는 여성 지원자가 부족할 수 있어 미혼 구청 여직원들을 예비인원으로 배정했는데, 이중 두세 명이 실제로 미팅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석률이 저조하다 보니 미혼인 구청 직원, 관할 지역 공공기관 직원들이 강제로 끌려나가는 경우까지 생기는 것이다. 서울의 한 구청 직원은 “아무리 좋은 취지라지만 이성과의 만남은 사적인 부분인데, 업무를 하듯 해야 하나 싶어 반감이 들기도 한다”고 밝혔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미혼남녀 단체미팅은 기성세대 가치관으로 요즘 젊은이들을 보는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라며 “적은 예산이라 해도 구청에 공공 키즈 카페를 만드는 등 인프라에 투자하는 편이 낫다”고 지적했다.

저출산 해소를 위한 대책이라면 실질적인 행사운영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김두섭 한양대 특임교수는 “만남의 기회가 없는 이들에겐 도움이 되는 행사일 수도 있다”면서 “남들이 하니까 그냥 하는 게 아니라, 해당 지역의 특성과 효과에 대한 검증까지 염두에 두고 추진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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