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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압이 만든 작은 지진 → 몰랐던 단층 자극 → 대규모 지진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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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압이 만든 작은 지진 → 몰랐던 단층 자극 → 대규모 지진 폭발

입력
2019.03.21 04:4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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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지진 어떻게 발생했나]

2개의 지열정에 5차례 물 주입… 진원지 근처 공극압 상승

작은 지진들 한 단층에 몰리자 누적된 힘이 지진단층 깨워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대한지질학회 주최로 열린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의 연관성에 관한 정부조사연구단 결과발표 기자회견'에서 지열발전이 포항지진의 원인임을 발표하자 정부의 피해보상을 요구해 온 포항 시민이 결과에 만족한 듯 엄지손가락을 추켜 세우고 있다. 홍인기 기자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대한지질학회 주최로 열린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의 연관성에 관한 정부조사연구단 결과발표 기자회견'에서 지열발전이 포항지진의 원인임을 발표하자 정부의 피해보상을 요구해 온 포항 시민이 결과에 만족한 듯 엄지손가락을 추켜 세우고 있다. 홍인기 기자

20일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의 발표에 따르면 포항지진은 지열발전을 위해 땅 속에 주입한 물의 압력으로 발생한 작은 지진(미소지진)이 이어지면서 대규모 지진으로 확대됐다.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지진 단층의 존재까지 확인돼 학계에서도 파장이 커지고 있다.

포항지진 진앙(진원의 지표면 위치)에서 불과 600m 떨어진 포항지열발전소는 2015년 4월~2015년 12월 땅을 굴착해 약 4,300m 깊이의 대형 파이프 2개(지열정-1, 2)를 설치했다. 지열발전은 파이프를 통해 물을 넣어 땅 속 열로 데운 다음 끌어올려 여기서 나오는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지열발전소는 본격 가동 전 실증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2016년 1월~2017년 9월 지열정 2개에 총 5차례에 걸쳐 물을 주입했다.

비어 있는 좁은 공간에 다량의 물을 주입하면 압력(공극압)이 높아진다. 이때 땅 속에 가해진 공극압이 0.02~0.06메가파스칼(MPa)이면 지진 발생 빈도가 증가한다고 알려져 있다. 연구단이 포항지진 이전 지열정으로 주입된 물의 양과 압력 등의 자료를 수집해 컴퓨터 모델링으로 분석한 결과 포항 본진 이전 가장 큰 규모(3.1)의 지진이 발생한 2017년 4월 15일 두 지열정 주변의 공극압이 0.1MPa 이상으로 증가했다. 지진 발생이 가능한 압력을 훨씬 초과한 수치다.

연구단은 또 2009년 1월부터 포항지진 발생일까지 진앙에서 5㎞ 이내 지역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98개 지진 자료를 이용해 주요 진원(지진이 발생한 지하 지점) 위치의 시간별 공극압 변화를 계산했다. 그 결과 진원들 근처에서 공극압이 분명하게 상승한 것을 확인했다. 계산 결과를 근거로 연구단은 공극압으로 발생한 힘이 남서 방향으로 확산되며 커져 작은 지진들을 차례로 ‘유발(induced)’했다고 판단했다. 유발지진은 물 주입의 영향으로 발생한 공극압과 이를 견디는 응력이 영향을 미치는 공간 범위에서 일어나는 지진을 말한다.

◇작은 유발지진에서 대규모 촉발지진으로

공극압의 영향으로 발생한 작은 지진들의 위치는 공교롭게도 한 평면 위에 모여 있었다. 이는 포항 지진 본진을 일으킨 것으로 과거 분석됐던 단층면과 일치했다. 이 단층면을 따라 미소지진의 영향이 누적되면서 단층이 본진 직전엔 거의 임계응력 상태에 이르렀을 것으로 연구단은 추측했다. 임계응력은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과 단층이 이를 버티는 힘이 같게 유지되는 상태를 말한다. 이때 힘의 균형이 조금이라도 깨지면 단층이 움직이게 된다. 연구단은 작은지진이 단층면을 따라 일어나면서 그 영향이 본진의 진원 위치까지 도달했고, 결국 임계응력 상태에 있던 단층을 움직여 포항지진이 ‘촉발(triggered)됐다’고 설명했다. 촉발지진은 인위적 자극이 최초 원인이지만, 자극을 받은 공간 범위를 크게 벗어나는 지진을 뜻한다.

지금까지 학계에선 지열발전의 영향으로 발생할 수 있는 지진 규모가 3 안팎일 것으로 추측해왔다. 때문에 규모 5.4의 포항 지진에 지열발전소가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조사는 물 주입으로 일어난 작은 지진(유발지진)이 결국 대규모 본진(촉발지진)의 원인이 됐다고 결론을 내렸다. 지열발전으로 발생 가능한 지진 규모가 학계의 예상보다 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 결과발표 기자회견에서 연구단 전문가들이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임소형 기자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 결과발표 기자회견에서 연구단 전문가들이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임소형 기자

◇단층면 확신하는 이유 3가지

연구단이 확인한 단층은 학계에도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단층이다. 연구단은 지열발전소 인근에 존재하는 북동 방향의 곡강단층에 인접한 단층들 중 하나가 작은 지진들의 영향으로 활성화했다고 보고 있다.

연구단은 3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먼저 이수 누출이다. 지열정을 설치하기 위해 땅을 시추할 땐 마찰력을 줄이기 위해 진흙을 섞은 물을 주입하고 빼는 과정을 반복하는데, 이 물을 이수라고 부른다. 연구단에 따르면 작은 지진이 발생하기 시작한 시점과 지하 약 3,800m 깊이에서 지열정의 이수가 누출된 시기가 일치한다. 이 깊이는 지열정-2와 단층면이 만나는 지점이다. 누출 당시 이수의 밀도는 물의 1.6배였다. 누출된 이수가 단층면을 자극하는 압력으로 작용했을 거란 분석이 가능하다.

또 시추 과정에서 나온 암석 조각들을 현미경으로 분석한 결과 단층 성분으로 확인됐다. 지열정 내부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내려 보낸 센서가 지하 3,783m 아래로 내려가지 못한 점도 단층면 존재의 근거가 됐다. 그 지점부터 영상이 사라졌는데 연구단은 이 지점을 지나는 단층면이 움직이면서 지열정이 손상됐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런 결과를 토대로 이강근 연구단장은 “지열발전소에서 땅 속으로 주입한 물의 압력 때문에 단층면에서 유발지진(작은 지진)이 발생했고, 2017년 11월의 본진은 유발지진의 영향 범위 안에서 일어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연구단은 2018년 3월부터 약 1년간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의 연관성을 정밀 조사해왔다. 수리지질학, 지질역학, 구조지질학, 지구물리탐사 등 4개 분야 전문가 12명으로 구성된 국내조사단, 외국인 전문가 5명으로 구성된 해외조사위원회가 독립적인 조사를 진행한 뒤 결과를 종합 분석했다. 해외조사위에는 미국 콜로라도대와 스탠포드대,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뉴질랜드 빅토리아대, 중국 지진국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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