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선생님은 항상 ‘마음이 이끄는 음악을 하라’ 말하셨죠”

알림

“선생님은 항상 ‘마음이 이끄는 음악을 하라’ 말하셨죠”

입력
2019.03.20 15:50
수정
2019.03.20 19:09
22면
0 0

첼리스트 레서와 문태국 나란히 서울 공연

"20대는 모든 게 가능하기 때문에 가장 흥미로우면서, 또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 알 수 없어 두렵기도 한 시기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과정 속에 자연스러운 답이 있기 마련이에요. 시간이 흐른 뒤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기를, 태국도 그런 삶을 살길 바랍니다." 첼리스트 로런스 레서(왼쪽)가 자신의 제자 문태국에게 전한 인생의 조언이다. 양진하 기자
"20대는 모든 게 가능하기 때문에 가장 흥미로우면서, 또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 알 수 없어 두렵기도 한 시기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과정 속에 자연스러운 답이 있기 마련이에요. 시간이 흐른 뒤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기를, 태국도 그런 삶을 살길 바랍니다." 첼리스트 로런스 레서(왼쪽)가 자신의 제자 문태국에게 전한 인생의 조언이다. 양진하 기자

“얼마 전 제 첫 앨범이 나왔어요”라고 말하며 해맑게 음반을 건넬 줄 알았는데, 그는 망설였다. 자신의 연주가 혹여 스승의 마음에 차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스승은 20세기 첼로 역사의 산 증인이나 다름 없는 거목. 제자의 망설임을 읽은 스승은 미소로 화답했다. “너의 음악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난 정말 기쁠 거야. 네 자신의 목소리로 너의 음악을 표현한 것일 테니까. 나와는 다른 것을 음악에서 느낀 네가 자랑스러울 거다.”

마음 넓은 스승은 미국 첼리스트 로런스 레서(81)다. 대학에서 제자들을 길러낸 지 약 60년째다. 스승을 존경 어린 눈으로 바라 보는 제자는 한국 첼리스트 문태국(25). 문태국은 2012~2016년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레서를 사사했다. 21, 22일 나란히 한국에서 연주회를 여는 두 사람을 최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레서가 얼마나 오랜 시간 첼로를 연주해 왔는지는 그의 백발뿐 아니라 그가 들려 준 일화에서도 가늠해볼 수 있다. 1966년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 우승자인 그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음반을 녹음했다. 하지만 이후 수년 간 자신의 앨범을 들어 보지 못했다. 냉전 때문이었다. 레서는 클래식 음악 역사상 손에 꼽히는 거장 첼리스트들과 교류했다. 10대 때는 그레고리 피아티고르스키에게 배웠고, 1961년 하버드대 수학과를 졸업한 뒤에는 독일에서 가르파르 카사도를 사사했다. 현대 첼로 연주의 아버지라 불리는 파블로 카잘스는 레서에게 “당신에게 이런 재능을 준 하늘에 감사한다”는 극찬을 건넸다.

연주자로서 활발히 활동하는 동시에 레서는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주립대, 피바디 음대 등을 거쳐 1974년부터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파블로 카잘스 국제첼로콩쿠르에서 우승한 문태국은 물론, 프리스턴대 생물학 박사 출신 연주자인 고봉인도 그의 제자다. 자신도 좋은 스승들을 만났기 때문일까. 레서는 훌륭한 연주자를 길러내는 특별한 지도법을 지닌 듯했다. “항상 제 마음이 이끄는 음악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받았어요. 학생에게 원하는 게 확실하지만 그것을 강요하기보다는 그저 앞에서 이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분이에요.”(문태국)

첼리스트 로런스 레서(왼쪽)와 문태국이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문태국은 미국을 방문할 일이 있을 땐 보스턴에 있는 스승을 찾아뵌다. 양진하 기자
첼리스트 로런스 레서(왼쪽)와 문태국이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문태국은 미국을 방문할 일이 있을 땐 보스턴에 있는 스승을 찾아뵌다. 양진하 기자

모든 음악가는 연주에 앞서 듣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이 레서의 지론이다. 다른 사람의 연주만이 아니라 자신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제자들에게 연주하는 음악을 목소리로 노래해 볼 것을 주문한다. “베토벤을 연주하기 위해선 그 시대의 음악 사조도 알아야 하지만, 자신이 받아들인 음악을 어떻게 표현할지를 알아야 하죠. 선생으로서 저는 몸을 어떻게 움직여 첼로를 연주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요. 자신이 왜 그렇게 연주하는지에 대한 답은 학생 스스로 얻어야 한다고 생각해요.”(로런스 레서)

두 사람은 연주를 통해 희망을 노래한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문태국이 워너클래식을 통해 지난달 전세계에 발매한 데뷔 앨범 ‘첼로의 노래’ 마지막 곡은 카탈루냐 민요인 ‘새의 노래’다. 카잘스가 내전으로 폐허가 된 스페인을 생각하며 평화와 반전의 메시지를 담아 앙코르로 연주하던 곡이다. 문태국은 “카잘스가 보여 준 자유와 인류에 대한 사랑을 따른다는 의미를 담아 연주했다”고 했다. 레서는 “긴 인생을 살고 보니, 어떤 일에도 ‘괜찮다’ 하고 받아들이게 된다”며 “아침에 눈을 떠 ‘좋은 하루’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삶을 감사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공연도 보러 갈 예정이다. 레서는 21일 서울 종로구 금호아트홀에서 바르톡, 바흐, 베토벤, 라흐마니노프로 이어지는 ‘책 한 권 같은’ 공연을 선사한다. 문태국은 22일 서초동 예술의전당 IBK홀에서 데뷔 음반에 담긴 곡들을 들려 준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