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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꽃이 활짝 피기 전에

입력
2019.03.21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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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습니다. 벌써 꽃을 피운 나무들도 있지만 아직은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는 나무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기운을 느끼는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서 꽃이 본격적으로 피고 봄이 완연하면 어울리지 않을 얘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꽃이 피고 봄이 완연하면 꽃타령을 하고 봄노래를 해야지 다른 얘기를 하면 안 되겠지요?

요즘 우리 사회에 뻔뻔함과 억지와 궤변이 넘칩니다. 꽃이 만발해야 하는데 궤변이 만발하는 것입니다. 누가 봐도 뻔히 알 수 있는 거짓말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합니다. 예를 들어 수천억 원의 재산이 있는 것이 뻔한데도 이십구만 원밖에 없다고 하는 것은 뻔뻔함의 극치입니다. 그러니까 그 속이 뻔히 다 보이는데도 없다고 하는 것이 뻔뻔함이고, 그래서 잡아떼는 것은 뻔뻔함의 한 특징입니다. 그리고 뻔뻔한 사람은 부끄러움이 없고 그래서 늘 당당한데 이것도 뻔뻔함의 또 다른 특징입니다. 그런데 부끄러움을 모른다면 맹자의 가르침을 놓고 볼 때 사람이 아니지요. 모두 잘 아시듯 맹자는 인간이라면 네 가지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했지요. 다른 사람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 남에게 선을 양보하는 사양지심,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시비지심과 자신의 의롭지 못함과 선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이 그것인데 뻔뻔함이란 이 중에서 수오지심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데 맹자가 얘기하는 수오지심은 어떻게 보면 꽤 수준 높은 부끄러움입니다. 곧 내가 의롭지 못함과 선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것인데 앞의 그분은 불의한데도 자기 불의한 줄도 모르거나 불의한 줄 알지만 그럼에도 전혀 부끄럽지 않거나 부끄러움을 묵살하는 것입니다.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기로 작정을 했기 때문일까요?

아무리 내 불의를 지적해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기로 했는데, 그런데도 피할 수 없는 궁지에 몰리면 이제 억지를 부립니다.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는 둥, 엄연한 사실인데도 아니라는 둥. 그야말로 막무가내(莫無可奈), 무가내하(無可奈何), 곧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고 그래서 이렇게 억지를 부리면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지요.

말이 통하지 않는 또 하나가 궤변입니다. 억지가 무식하게 똥고집을 부리는 것이라면, 궤변은 제법 유식하게 말의 뜻을 바꾸든 사실의 의미를 바꿔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것이고, 진실을 오도하거나 호도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야당의 원내대표라는 분이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는 말은 막말까지는 아니지만 자기들 입장을 표명하는 말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아주 교묘한 망언을 하였습니다. “반민특위 활동은 잘됐어야 했지만 결국 국론 분열을 가져왔다.”는 말입니다. 이분의 말이 반민특위 활동이 정말 잘됐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정말 그런 바람을 가진 사람, 친일세력이 정리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반민특위 활동을 좌절시킨 친일세력을 지금이라도 비판하고, 제1 야당의 원내대표로서 친일인명 규명 작업을 국회 차원에서 추진하자고 나서야 할 겁니다. 그런데 그분은 과거 자위대 창설행사에 참석한 사람이고, 보훈처가 가짜 독립유공자를 가려내기 위해 독립유공자 전수조사를 한다고 할 때 과거 회귀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는 등 그의 말의 진정성을 믿기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3ㆍ1 독립만세 운동을 한 지 100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고, 지금까지 못한 친일청산을 반드시 해야 하는 해인데 여기에 적극 협력지 못하겠으면 궤변이라도 늘어놓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입에 담기 씁쓸한 말은 오늘까지만 하고 봄이 오면 꽃을 노래하면 좋겠습니다.

김찬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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