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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유치원 탄생… 法도 바꾼 엄마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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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유치원 탄생… 法도 바꾼 엄마의 힘

입력
2019.03.19 04:4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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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계동 꿈동산아이유치원 개원

세종시 교육부까지 찾아가 설득

임대유치원 가능하게 관련규정 바꿔

국내 1호 부모협동조합형 유치원 구성원들은 이 유치원의 장점으로 공공성과 투명성, 아이들을 함께 키우고 있다는 유대감을 꼽았다. 윗줄 왼쪽부터 서울 노원구 꿈동산유치원의 정수진 감사, 이지영 이사장, 이인숙 원장, 임정은 이사, 남지영 감사. 배우한 기자
국내 1호 부모협동조합형 유치원 구성원들은 이 유치원의 장점으로 공공성과 투명성, 아이들을 함께 키우고 있다는 유대감을 꼽았다. 윗줄 왼쪽부터 서울 노원구 꿈동산유치원의 정수진 감사, 이지영 이사장, 이인숙 원장, 임정은 이사, 남지영 감사. 배우한 기자

“우리는 ‘다닐 수 있는’ 유치원보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유치원이 필요합니다.” (진달래반 조하율양 엄마)

2017년 여름,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사는 10여명의 학부모들이 폐원 위기에 몰린 유치원을 살려보겠다며 서울북부교육지원청을 찾았다. 이들의 손에는 ‘꿈동산 유치원이 좋은 이유 262가지’를 적은 문서가 쥐어져 있었다. 하지만 담당 공무원들은 ‘폐원 밖에 답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나마 내놓은 해법이라곤 ‘분산 수용’, ‘공립 전환’. 학부모들은 직접 해답을 찾기로 했다. 폐원 직전의 유치원에서 2년 반 만에 ‘국내 1호 협동조합형 유치원’이 된 꿈동산아이유치원(구 꿈동산유치원) 얘기다.

18일 서울 노원구 꿈동산아이유치원에서 만난 학부모이자 조합원들은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했다. 30년 된 건물부터 원장과 교직원 30여명 등 모든 게 그대로였다. 이지영 조합 이사장은 “분산 수용되면 아이들이 차량을 이용해야 하는데다 친구들과 뿔뿔이 흩어져야 했고, 또 공립으로 전환되면 선생님들이 다 바뀌어야 하는데 그것도 바라지 않았다”며 협동조합형유치원 설립을 추진한 계기를 설명했다.

국내 1호 부모협동조합형 유치원인 서울 노원구 꿈동산아이유치원의 개원식이 지난 12일 원내에서 열렸다. 9학급 267명 원아로 다시 문을 열게 됐다. 연합뉴스
국내 1호 부모협동조합형 유치원인 서울 노원구 꿈동산아이유치원의 개원식이 지난 12일 원내에서 열렸다. 9학급 267명 원아로 다시 문을 열게 됐다. 연합뉴스

원래 이 유치원은 1980년대 상계동의 한 아파트 단지 내 국민연금공단 건물을 빌려 설립된 임대형 사립유치원이었다. 과거 한시적으로 임대형 유치원이 허용돼 운영이 가능했지만 1990년대 설립자 소유의 단독 건물에만 유치원을 운영하도록 법이 바뀌었다. 기존의 임대형 유치원에는 법이 적용 안됐으나 2017년 설립자가 사망하면서 폐원 위기에 처하게 됐다.

폐원을 막을 방법을 고민하던 학부모들은 당시 노원구청장(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협동조합형 유치원을 제안하자 실마리를 찾았다. 잘만 운영된다면 투명성이 낮은 사립과 돌봄에 다소 소홀한 공립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 하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출자금을 내 협동조합을 만들어야 했고, 협동조합이 운영할 때는 공공기관 건물에도 임대유치원이 가능하도록 법(고등학교 이하 각급학교 설립ㆍ운영 규정)을 바꿔야 했다. 전업 주부들을 중심으로 북부교육지원청, 서울시교육청, 멀리 세종시의 교육부까지 찾아가 법을 바꿔달라고 요구했고, 직장 탓에 함께 하지 못하는 학부모들은 담당 공무원들에게 문자 폭탄을 날려 힘을 보탰다. 마침내 지난해 11월 협동조합형 유치원에 한해 임대유치원이 가능하도록 관련 규정이 바뀌었다.

꿈동산아이유치원 학부모들이 2017년 7월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유치원 폐원을 막아달라’는 집회를 열고 있다. 꿈동산아이유치원 제공
꿈동산아이유치원 학부모들이 2017년 7월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유치원 폐원을 막아달라’는 집회를 열고 있다. 꿈동산아이유치원 제공

공무원 대다수는 공립으로의 전환을 마다하는 학부모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정수진 조합 감사는 “다른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이 유치원에 보내고 싶어서라는 점을 납득시키는데 1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협동조합형 유치원으로 바뀌면서 학부모들의 참여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 학부모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입학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남지영 조합 감사는 “학부모들이 직접 유치원에 대해 설명하니까 참석자들도 ‘밥이 잘 나오는지’, ‘선생님들은 어떤지’와 같이 선생님들에게 물어보기 어려운 질문들을 편하게 하더라”고 웃었다. 유치원 공공성 강화에 관심이 많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12일 개원식에 참석해 이 유치원을 공영형으로 지정하겠다는 깜짝 발표를 하기도 했다. 이 유치원에서 20년간 아이들을 가르친 교사이자 조합원 중 한 명인 이인숙 원장은 “학부모와 교사간 소통과 협력이 빈번해졌다”며 “지역사회의 새로운 공동체 모델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협동조합형 유치원이 2호, 3호로 확대되려면 여전히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고 학부모들은 지적한다. 이지영 이사장은 “출자금으로 급한 불은 껐지만 유치원 운영이 지속가능 하려면 개원과 동시에 공영형 유치원으로 지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남지영 감사는 “일반인들이 유치원을 임대할 만한 공공기관 소유 건물을 찾기 어려운 만큼 교육당국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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