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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정비업체에 대한 손해보험사의 ‘갑질’ 여부를 확인하려는 정부의 실태조사를 보험업계가 집단 거부하면서 양측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보험사들은 정부가 과태료 부과 등 제재에 나설 경우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태세다. 갈등의 밑바닥엔 보험사와 정비업체의 관계를 ‘위탁관계’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정부와 보험업계의 접점 없는 입장 차가 자리잡고 있다.

◇정부 “보험사는 정비업체의 갑”

1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달 초부터 주요 손해보험사를 상대로 실태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에 근거해 보험사들이 자동차보험을 매개로 정비업체와 거래하는 과정에서 수리비를 부당하게 삭감하거나 늦게 지급하는 위법행위를 했는지를 살펴보기 위한 조사다.

그러나 전날 조사 대상이었던 삼성화재는 중기부의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했다. 앞서 조사 대상으로 선정된 KB손해보험, DB손해보험, 현대해상 역시 현장조사를 거부한 바 있다. 보험사와 정비업체의 거래는 상생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양측의 팽팽한 입장차는 보험사와 차량 정비업체 간 거래의 성격에 대한 법적 해석에서 비롯한다. 원칙상 자동차 사고에 따른 물적 피해 보장은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차주가 정비업체에게 수리비를 먼저 지급하고 보험사에 손해보험금을 청구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보험사가 정비업체에 보험금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를 두고 보험사는 단순히 고객을 대신해 정비업체에 비용을 지급할 뿐이란 입장이지만, 정부는 현실적으로 보험사가 특정 정비업체와 위탁관계와 다름없는 협력계약을 맺고 거래한다고 보고 있다.

중기부 관계자는 “보험사 또는 그 산하 손해사정법인이 수리 비용과 시간 등 조건을 미리 정해 놓고 정비업체와 계약을 맺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사실상의 위탁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인식 아래 중기부는 지난해 11월 상생법 시행규칙에 예규를 신설하고 ‘자동차 정비사업자가 고객의 차량을 수리한 후 보험사로부터 직접 수리비를 지급받고, 보험사가 차량 수리의 범위를 정하거나 영향을 주는 등 사실상 위탁한 경우’라면 위탁거래에 해당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위탁거래는 상생법 적용 대상인 만큼 거래 중 발생하는 갑질 행위에 대해 당국이 조사하고 제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보험업계 입장차 그래픽=박구원 기자
◇손보사 “고객 대신해 거래할 뿐”

손보사들은 정부 조치에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2월 말 중기부에 “보험사가 차주 대신 정비업체에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고객 편의를 위한 것일 뿐 위탁관계로 해석하는 것은 법률 분쟁의 소지가 있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정비업체에 보험금을 지불하기 때문에 위탁관계가 형성된다는 논리라면 보험사들이 차주에게 직접 보험금을 지불하는 방법을 택해 논란을 피할 수 있지만 이는 소비자 불편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보험사들이 협력 정비업체를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는 정부 논리에 대해서도 “차주가 협력업체 아닌 다른 정비업체에 선택해 수리를 맡기는 것이 가능하다”고 반박한다. 손보사들은 조사 거부를 이유로 과태료(최대 1,000만원)가 부과될 경우 행정소송을 통해서라도 적법성을 따지겠다는 입장이다.

차량 수리비 지급을 둘러싼 보험사의 부당행위 논란을 두고도 시각차가 적지 않다. 정비업계 일각에서는 보험사가 사실상 협력업체에 자동차 수리를 위탁하는 대신 수리비를 깎는 횡포를 부린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고 정부 또한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황인환 서울자동차검사조합 이사장은 “보험사가 정비사에 수리비 지급을 연기하거나 삭감하면서 운영을 어렵게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손보사들은 정비업체가 청구한 비용이 적절한지 고객을 대신해 평가하는 것은 보험사 의무라는 입장이다.

한편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6월 정비업체의 적정 보험정비요금을 공표한 상황에서 중기부의 개입이 ‘중복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전원식 전국자동차검사정비사업조합연합회장은 “새 적정요금에 따라 정비업체와 손보사들이 어느 정도 합의를 이뤘다”며 “이번 조사로 인해 보험료가 추가 인상될 수 있는데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국민의 입장도 고려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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