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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욕망, 미술계 카르텔… 웹 아트로 풍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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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욕망, 미술계 카르텔… 웹 아트로 풍자하다

입력
2019.03.19 04:40
수정
2019.03.19 13:56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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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 탄생 30주년 기념

북서울미술관서 웹 레트로展

북서울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양아치 작가의 '전자정부' 작품 속 첫 장면. 북서울미술관 제공
북서울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양아치 작가의 '전자정부' 작품 속 첫 장면. 북서울미술관 제공

“이름이 뭔가요? 성별은, 연봉은, 취미는, 직업은, 주민등록번호는요? 그렇다면 당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은? (…)”

컴퓨터 모니터 화면이 묻는 대로 무심코 답을 적어 넣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직업까지 수십 개의 정보를 입력하는 데 걸린 시간은 3분 남짓. 호기심 때문에, 신용카드 정보를 입력하라는 마지막 질문에도 기어코 대답해버렸다. 마침내 이 같은 문구가 떴다. “정보를 제출하고 10달러만 내면 다른 이들의 정보를 얻을 수 있죠. 당신의 정보를 지우시겠습니까?” ‘예(Yes)’ 버튼을 누르면 입력한 정보가 삭제되고 초기 화면으로 돌아간다. ‘타인의 정보를 손에 넣을 기회를 이대로 포기할 것이냐…’ ‘예(YES)’ 버튼에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전자정부(eGovernmentㆍwww.eGovernment.or.kr)’라는 제목의 이 프로그램은 웹아티스트 양아치의 작품이다. 작가는 국가와 기업뿐 아니라 개인도 타인의 정보를 구입할 수 있도록 작품을 설계했다. 관람객들은 작품을 직접 구동해 보면서 정보에 대한 욕망과 감시, 통제 같은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느낀다.

서울 노원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는 이처럼 웹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을 구현해 볼 수 있는 ‘웹 레트로(Web-Retro)’ 전시가 열리고 있다. ‘월드와이드웹(WWW)’ 탄생 30주년을 기념한 기획전으로, WWW의 생애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 온 인터넷 아트의 역할과 가능성, 한계 등을 조망한다. 양아치와 김범, 노재운 작가 등 13개 팀 작품이 전시된다.

미술계 네트워크를 나타낸 뮌의 '아트솔라리스'. 북서울미술관 제공
미술계 네트워크를 나타낸 뮌의 '아트솔라리스'. 북서울미술관 제공

우선 인터넷이라는 플랫폼을 적극 활용한 비판적, 저항적 작품들이 눈에 띈다. 국내 미술계 인맥 구조를 점과 선으로 표현한 뮌의 ‘아트솔라리스 1980-2019’가 대표적이다. 이는 2016년 공개되며 미술계에 파장을 준 웹사이트 ‘아트솔라리스’의 변화를 표현한 것으로, 공적 자본이 투입된 전시를 2번 이상 함께한 예술가와 기획자가 선으로 이어지는 형태다. 시간이 흘러가며 바뀌는, 혹은 바뀌지 않는 미술계 권력과 유통 구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미술계 관계자라면 대충은 알고 있지만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는 카르텔이, 그 공고함을 상징하는 듯한 단단한 공 모양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인터넷 화면과 언어의 모양새 자체를 소재로 한 작가들도 있다. 네덜란드에서 1994년 결성된 예술팀 ‘조디’는 작품 ‘jodi.org’를 통해 인터넷의 기술적 추상을 시도했다. 코드나 오류를 활용해 화면에 표출되는 현상 자체를 작품으로 제시한 것이다. 작품(wwwwwwwww.jodi.org)에 접속하면 디지털 파편들이 나타나고, 일부 소스 코드를 클릭하면 특정 이미지가 튀어나온다. 이 밖에 과거 연인이 쓴 편지 속 단어들의 사전적 의미를 기계적으로 나열한 정성윤 작가의 ‘러브레터(ooo.pe.kr/loveletter/)’ 등도 인터넷 아트의 묘미를 보여 준다.

노원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웹 레트로' 전시 전경. 미술관 제공
노원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웹 레트로' 전시 전경. 미술관 제공

미술관은 그간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던 인터넷 아트의 미술사적 가치 평가에도 공을 들였다. 빠른 기술 환경 변화로 현재의 인터넷 환경에서 구동되지 않는 작품을 복원하는가 하면, 작가 167명의 인터넷 아트 200점을 시기별로 분류해 온라인 아카이브 사이트(web-retro.kr)를 통해 소개한다. 개인 컴퓨터로도 작품을 볼 수 있지만, 작가의 의도에 따라 꾸려진 전시 공간의 묘미가 있으니 직접 찾아 보길 권한다. 전시는 6월 9일까지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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