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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세계 여성의 날(3.19)

입력
2019.03.19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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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2월23일(그레고리력 기준, 율리우스력 3월 8일) 페테르부르크 여성 노동자들의 시위. 러시아 2월 혁명의 기폭제이자 세계여성의 날이 3월 8일로 확정되는 게기가 됐다. greenleft.org
1917년 2월23일(그레고리력 기준, 율리우스력 3월 8일) 페테르부르크 여성 노동자들의 시위. 러시아 2월 혁명의 기폭제이자 세계여성의 날이 3월 8일로 확정되는 게기가 됐다. greenleft.org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의 날은 3월 8일이지만, 저 날의 연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널리 알려진 바, 1857년 뉴욕 여성 섬유 노동자 시위나 1907년의 50주년 기념행사가 뿌리란 주장은 아무런 사료적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저 날에 스민 사회주의 이념 혹은 정통성을 탈색하기 위해 냉전기 서구 사회가 만든 신화란 게 근년의 정설인 듯하다.

‘세계 여성의 날’은 1910년 8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사회주의 국제기구 제2인터내셔널의 국제사회주의여성회의가 제정했다. 독일 사회주의자 루이제 지츠(Luise Zietz, 1865~1922)가 처음 제안했고, 클라라 제트킨 등이 동조했다고 한다. 그들은 한 해 전인 1909년 2월 28일 미국 사회주의당(SP)이 뉴욕서 개최해 큰 호응을 얻은 ‘전미 여성의 날’ 행사에 착안했다. 여러 장소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연 그 행사의 주제는 노동ㆍ임금 성차별 철폐와 여성 참정권 요구였다. ‘여성회의’는 저 이슈를 유럽과 전 세계로 확산하고자 했지만, 날짜를 특정하진 않았다. 2월 28일은 여성 노동자들이 쉬는 일요일이었다.

1911년 첫 ‘공식’ 세계 여성의 날 행사는 3월 19일, 오스트리아와 덴마크, 독일, 스위스 등지서 열렸다.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서만 300여곳서 집회가 개최됐고, 수도 빈의 여성 행진 대열은 환상(環狀)도로 ‘링슈트라세’를 점거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날은 파리 코뮨 40주년 기념일이자, 일요일이었다.

여성의 날을 기념일로 지정한 첫 국가는 구소비에트였다. 1917년 2월 23일(그레고리력 기준, 율리우스력으로 3월 8일), 알렉산드라 콜론타이가 이끈 페트로그라드(현 페테르부르크) 여성 노동자들이 ‘빵과 평화’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전개해 ‘2월 혁명’의 기폭제가 된 것을 기려 1917년 10월 혁명의 레닌 정부가 소비에트 공식 공휴일로 선포한 거였다. 이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은 사실상 소비에트를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국가의 공식 행사였고, 명실공히 ‘세계’ 여성의 날이 된 것은 유엔 총회가 저 날을 공식 지정한 1975년 이후였다.

사연의 핵심은, 세계 여성의 날이 (여성) 노동자들이 쉬는 날이라는 거였다. 그 의미를 존중해 3월 8일을 공휴일로 지정한 국가는 20여개 국에 불과하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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