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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예술이 아니었으면 오래 전 자살했을 것” (3.22)

입력
2019.03.22 04:40
수정
2019.03.22 15:3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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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현대미술작가 구사마 야요이의 90번째 생일

생존한 현대미술 작가 가운데 가장 ‘아스트랄(astral)’하면서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어온 일본 작가 구사마 야요이(草間彌生, 1929.3.22~)가 오늘 만 90세 생일을 맞이했다. 그는 1977년 이래 42년째 일본 도쿄 세이와 정신병원의 ‘종신’ 환자로 지내며 병원 인근 신주쿠의 개인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예술이 아니었으면 오래전에 자살했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일본 나가노의 부유한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바람둥이 아버지는 집을 비우기 일쑤였고, 어머니는 행복하지 못한 결혼생활의 스트레스를 그의 5남매에게 풀곤 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강박증과 착란 증상을 겪던 넷째 구사마는 그 때문에 남매 중에서도 특히 심한 학대를 겪었고, 자주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고 훗날 자서전에 썼다. 2차대전 전시 군수공장에서 일했고, 패전 후 그림(일본화) 공부를 시작했지만 전통 화풍이 싫어 57년 미국 뉴욕으로 거처를 옮겼다. 화첩을 보고 알게 된 미국 작가 조지아 오키프(Georgea O’Keefee, 1887~1986)의 주소를 도쿄 미국대사관 인명사전에서 확인한 뒤 도와달라는 편지를 썼고, 오키프가 뉴욕살이를 조언하는 답장을 쓴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오키프는 내내 야요이의 비공식 후견인으로, 그의 작품을 사주는 등 멀찍이서 그를 지원했지만, 야요이는 이 편지 일화가 대변하듯 혼자서도 강하고 도전적이고 자신만만한 작가였다.

그는 60년대 뉴욕의 전위적 작가들과 교유하며 회화와 조각 외 팝아트와 행위예술 등 장르를 개척했고, 또 당시의 반전 평화와 페미니즘의 이상을 작품 속에 담곤 했다. 하지만 모티브는 거의 늘 유년시절부터 환각 같은 착란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던 물방울 무늬와 무한히 확장하는 거울상 또는 그물(net)이었다. 66년 베니스 비엔날레 참가작 ‘나르시스의 정원(Narcissus Garden)’은 스스로 움직이는 카펫(kinetic carpet)이라 부른 수백 개의 거울 공을 전시장 야외 잔디밭에 설치한 거였다. 황금색 기모노를 입은 그는 그 ‘카펫’ 위에서 관람객에게 거울 공을 개당 2달러에 판매해 주최 측으로부터 제지당했지만, 실은 그게 알레고리적 행위예술이었을 수 있다. 정신병원을 거처로 삼은 42년의 온 생애가 또 그러할지 모른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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