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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G, 한국서 요금 탓 퇴짜…미국선 더 비싸도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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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G, 한국서 요금 탓 퇴짜…미국선 더 비싸도 ‘OK’

입력
2019.03.18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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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첫 상용화’ 美에 넘겨줄 가능성] 

 美 버라이즌, 월 10만원 넘는 요금으로 내달 11일부터 서비스 제공 

 정부, 전세계 유일한 요금인가제… SKT는 7만원대 요금도 반려 당해 

지난 14일 서울 중구 SK텔레콤 본사 앞에서 소비자시민모임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고가 중심의 5G 요금제 철회 및 통신요금 인하를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4일 서울 중구 SK텔레콤 본사 앞에서 소비자시민모임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고가 중심의 5G 요금제 철회 및 통신요금 인하를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SK텔레콤이 신청한 ‘5세대(G) 통신 요금제 인가 신청’을 반려하면서 우리나라의 ‘세계 최초 5G 상용화’가 물 건너갈 가능성이 커지자, 전 세계적으로 사례를 찾기 힘든 한국의 통신비 사전 요금 인가제도가 통신산업 성장을 가로 막는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5G 산업을 육성해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계획을 일관되게 밝혀온 정부가 정작 5G 상용화를 앞두고는 1G 통신 때 생긴 28년 전 규제를 근거로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모순된 행동을 보여,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한 5G 산업 진흥을 위한 ‘골든 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미국보다 더 싼 요금제도 퇴짜 

17일 이동통신 업계에 따르면 미국 최대 통신사 버라이즌은 다음달 11일부터 시카고와 미니애폴리스 지역에서 5G 서비스를 제공한다. 버라이즌의 5G 요금제는 속도와 용량에 따라 총 3가지로 구성돼 있는데, 기본적으로 4G인 LTE요금제보다 10달러를 더 내야 5G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5G 요금제 중 가장 싼 ‘고 언리미티트’도 한 달에 85달러를 내야 가입이 가능하다. 시카고 지역의 부가세 10%까지 감안하면 우리 돈으로 한 달에 10만원이 넘는 돈을 부담해야 5G 휴대폰을 쓸 수 있는 셈이다. 더구나 이 요금제는 데이터 제공 조건으로 5G 서비스라고 부르기 어려운 수준의 속도 제한을 내세우고 있다고 통신업계는 설명한다.

이에 반해 SK텔레콤이 정부에 인가 신청을 낸 요금제는 월 7만원대에 5G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한달 기본 제공 데이터 용량 150기가바이트(GB)를 다 소진하면 이후에는 무제한으로 데이터 사용이 가능하다. 기본 데이터 소진 이후엔 속도가 다소 떨어지지만, 인터넷 사용에는 전혀 무리 없다는 게 SK텔레콤 측의 설명이다. 특히 기존 LTE요금제인 ‘T플랜 라지’가 월 6만9,000원에 100GB을 제공(GB당 690원)하는 것을 감안하면 GB당 요율은 5G가 약 500원으로 4G보다 30% 정도 더 저렴하다.

하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SK텔레콤의 5G 요금제에 대해 "대용량 데이터의 고가(高價) 구간만으로 구성돼 있어 대다수 중ㆍ소량 데이터 이용자의 선택권을 제한할 우려가 크다”며 이를 반려했다. 사실상 요금이 너무 비싸게 책정돼 있으니 더 싼 요금제도 함께 내놓으라고 압박한 것이다.

정부의 요금제 인가 반려 이후 통신업계에서는 "정부가 5G 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5G는 기본적으로 대용량 콘텐츠를 초고속ㆍ초저지연으로 전송하는 프리미엄 서비스인데, 여기에 중소량 데이터 이용자 선택권을 고려하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라는 설명이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5G 대중화 속도에 따라 향후 요금제를 다양하게 출시할 수 있는데, 아직 시작도 안 한 5G 서비스에 무조건 더 싼 요금을 내놓으라는 것은 5G 산업을 부흥시키겠다는 기존 정부 입장과도 배치된다”며 “요금제 관련 논란으로 우리가 주춤하는 사이 미국 등 다른 나라 통신사들은 한국보다 질 낮은 5G 서비스를 더 비싼 가격에 상용화하는 일정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대로 가다간 버라이즌 등 타국 통신사보다 5G 상용화가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주요 선진국 통신요금 규제 현황/ 강준구 기자/2019-03-17(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주요 선진국 통신요금 규제 현황/ 강준구 기자/2019-03-17(한국일보)

 ◇요금 인가제, 한국이 전 세계 ‘유일’ 

이동통신 시장의 대표적인 사전규제인 ‘요금 인가제’는 1991년 국내 통신시장을 경쟁 체제로 전환하면서 선∙후발 사업자 간 유효경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현재 이동통신 시장은 가입자가 포화 상태에 달한 상황에서 3개 이통사와 40개 알뜰폰 사업자가 경쟁하는 유효경쟁 체계가 이미 성립됐다. 선두권 통신 사업자가 시장 지배적 지위를 무기로 더 비싼 요금제를 내놓는다고 해서 후발 사업자가 이를 무조건 추종하는 시장 환경은 아니라는 것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과거 시장 점유율이 50%가 넘었을 때는 SK텔레콤의 요금 결정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컸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며 “우리가 비싼 요금을 내놓으면 경쟁사가 싼 요금으로 소비자를 유인할 수 있어 우리 마음대로 고가 요금제를 내놓을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요금 인가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사실상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통신시장에서 유효경쟁 환경이 조성된 해외 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인가제와 같은 요금 규제를 폐지해 자율경쟁을 활성화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95년 AT&T를 자국 시장에서 비지배적 사업자로 간주하고 국내 전화 서비스에 대한 모든 규제를 철폐했다. 현재 미국 내 모든 유∙무선 사업자가 요금표를 공시해야 하는 의무는 있으나, 이동전화에 대한 별도의 요금 규제는 없다.

일본도 1985년 1위 이동통신사업자 NTT도코모를 견제하기 위해 인가제를 도입했으나, 13년 만인 1998년 유선을 포함한 모든 통신요금을 신고제로 전환했다. 일본에선 요금 인가제 폐지 이후 후발주자인 소프트뱅크가 다양한 요금 상품을 공격적으로 선보이며 시장을 주도했고, NTT도코모가 맞대응에 나서며 통신요금이 크게 떨어져 소비자 권익이 높아졌다. 영국도 관련 규제를 전면 폐지한 2006년 이후 통신사들이 자유롭게 요금을 결정하고 있다.

최경대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지금은 요금 인가제 없이도 국내 사업자 간 경쟁이 이뤄지고 있고, 소비자들도 불리한 요금제를 외면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됐다”며 “요금 인가제는 이용자 선택권을 강화하고 사업자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방향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 5G 상용화 앞두고 오락가락 행보 

5G 상용화 시점을 눈앞에 두고 요금 규제 카드를 꺼내 든 정부의 행보가 이율배반적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그 동안 “5G 세계 최초 상용화를 통해 전∙후방 산업을 육성하고 신규서비스를 발굴해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혀왔다. ‘5G 상용화 세계 첫 타이틀’에 집착해 휴대폰 제조사와 구체적 협의 없이 3월 말 상용화를 기정사실화했다가 이를 다음달로 슬그머니 미뤄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3월 상용화 일정에 맞춰 5G 서비스를 내놓으려는 통신사의 요금제를 정부가 이례적으로 공개 반려하자 정부의 ‘진짜 의중’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도 증폭되고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요금제 인가 반려를 정부가 보도자료를 내면서까지 공개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정치권과 통신업계에서 요금제 인가제도 폐지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에 대한 반대 의견을 표명하기 위한 의도된 행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소비자 선택권 확대를 위해 요금제 보완을 권고한 것일 뿐, 다른 의도가 있다는 주장은 어불설성”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요금제는 민간인 전문가가 참가하는 이용약관심의자문위원회에서 정하는 것으로, 자문위는 대다수 중소량 데이터 이용자의 선택권 침해를 우려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다만 정부는 세계 최초 5G 상용화 서비스 개시에 지장이 없도록 해당 업체가 약관 내용을 수정해 다시 신청할 경우 관련 절차를 최대한 빠르게 진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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