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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이 만든 ‘AI 보이스피싱 예방앱’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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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이 만든 ‘AI 보이스피싱 예방앱’ 나왔다

입력
2019.03.18 04:40
수정
2019.03.19 23:5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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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기 기업은행 과장, AI 기술로 실시간 통화 분석해 경고

“일주일 전쯤 ‘서울지방검찰청’에서 전화가 왔어요. 제 이름을 대며 ‘명의가 도용된 사건이 발생해 연락했다’고 해서 바로 끊었죠. 전형적인 보이스피싱 패턴이었거든요. 이런 걸 알면서도 당하는 이유는 수사기관을 사칭한 발신자가 수신자의 이름 연락처 주소 등 개인정보를 대며 믿게끔 하고 ‘불법 금융사기 사건에 연루돼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등 그럴싸한 이야기로 불안감을 줘 순간적으로 판단을 흐려 놓기 때문이에요. 이런 통화를 할 때 실시간으로 통화내용을 분석해 음성이나 알람으로 경고만 해줘도 수신자가 정신을 차려 피해를 예방할 수 있어요. 이 앱이 그 역할을 해줍니다.”

17일 서울 중구 기업은행 본점에서 만난 이봉기 IT정보부 과장은 이렇게 말하며 2년간 공들여 만든 인공지능(AI) 활용 보이스피싱 방지 앱 ‘IBK 피싱스톱‘을 내보였다. 이 앱은 통화 내용의 주요 단어, 패턴, 문맥 등을 기존 피해 사례와 실시간 비교 분석한다. 보이스피싱일 확률이 80%를 넘어서면 앱이 설치된 휴대폰의 화면이 빨간색으로 바뀌고 진동과 함께 음성으로 “현재 통화는 보이스피싱이 의심된다”고 알려준다. 이 과정이 1~2분 사이에 이뤄진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스마트폰 사용자는 18일부터 이 앱을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다만 당분간은 기업은행 고객만 이용할 수 있다. 기업은행 비회원이라면 앱 설치 후 연결되는 기업은행 모바일웹사이트(IBK큐브)에서 비대면 계좌 개설 절차를 마친 다음 이용할 수 있다. 기업은행은 향후 전 국민으로 서비스 대상을 확대할 예정이다. 이 과장은 “공부한 기술을 활용해 내놓은 서비스가 실제로 고객들의 피해 예방에 많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이 과장은 2013년 기업은행에 입행해 줄곧 IT정보부에서 일하다 2017년 3월 보이스피싱 방지 앱 개발에 나섰다. 보이스피싱 피해 뉴스를 보고 안타까워하다 관심 있는 직원 5명과 함께 사내 자발적 학습조직(COP, community of practice)을 만들어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으로 4만8,743명이 4,440억원의 피해를 입었다. 연간 피해액으로 역대 최대로, 하루 평균 134명이 12억2,000만원을 뜯긴 꼴이다.

아내도 보이스피싱을 당할 뻔한 일도 그를 분발하게 했다. “2016년 말 회사에서 일하던 아내가 ‘검찰 수사관’에게서 전화를 받았어요. 아내 명의로 된 계좌를 다른 사람이 쓰고 있으니 피해를 막기 위해 계좌 잔고를 알려달라고 하니까 아내는 실제로 알려주기 시작했대요. 그때 옆 자리에서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동료가 ‘혹시 보이스피싱 아니냐’고 하자 그때서야 아내가 전화를 끊어 간신히 넘어갔죠.”

그러나 앱 개발은 쉽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전화가 오면 보이스피싱으로 추정되는 발신번호임을 알려주는 앱이 대부분으로, 통화 내용을 분석하는 단계로 나아가려면 최신 기술인 AI를 직접 공부해야 했다. 그는 일과 후나 출퇴근하면서 관련 기술 및 사례를 공부해 6개월 만에 시제품을 만들었고, 재작년 11월 사내 COP 발표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앱 개발도 지난해 1월 IT그룹 정식 업무로 채택됐다.

지난해에는 앱을 고도화하는 작업에 매진했다. 동영상 강의를 듣거나 연구 논문을 읽고, 주말에도 IT업계 직장인들의 스터디 모임에 참여하면서 AI의 음성인식이나 데이터마이닝(Data Miningㆍ정보 더미에서 유용한 상관관계를 발굴) 등 AI 관련 기술을 공부했다. 특히 지난해 6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이 주관하는 ‘2018 빅데이터 플래그십 선도사업’에 100장이 넘는 제안서를 직접 작성ㆍ제출해 선정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지원금(4억8,000만원)과 함께 NIA의 중개로 금융감독원의 보이스피싱 피해사례 8,200여건을 제공받은 것이다. 그는 “피해 사례가 많아야 AI 기계학습이나 보이스피싱 분석 시 정확도가 높아지는데 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지난 3개월간의 사내 직원 대상 시범 사용에서도 정확도가 꽤 높았다.

2년 만에 숙제를 끝낸 이 과장은 또 다른 고민이 있다. 갈수록 진화하는 보이스피싱을 정확히 탐지하려면 앱을 계속 개선ㆍ보완해야 하는데, 앱을 이용한 사람들로부터 실제 효과는 있었는지 개선해야 할 점은 없는지 등 피드백을 받기 어려워서다. 그는 “가까운 영업점이나 고객센터 등에 알려주거나 은행 홈페이지 또는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댓글을 남기면 반영하겠다”며 이용자들의 협조를 부탁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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