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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북한의 ‘새로운 길’, 세 가지 가능성

입력
2019.03.18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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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북미 ‘협상중단’ 가능성을 내비쳤다. 연일 ‘빅딜’과 ‘포괄적 비핵화’로 압박해 온 미국에 대한 반격의 성격이 강해 보인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여곡절에도 협상 의지만은 강해 보였던 북한이 공식적으로 ‘중단’을 언급한 건 예사롭지 않다. 김정은 위원장의 성명 발표를 예고한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곧’ 있을지 모를 김 위원장의 입장 발표 전까지 미국의 변화를 요구하는 ‘최후통첩’ 성격이 짙다.

여기에 미국이 곧 바로 태도 변화를 보일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그럼에도 강수를 둔 것은 대미 압박 발언 이상으로 향후 북한이 갈 길에 대한 ‘결단’이 준비되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수순일 수 있다. 침묵했던 보름 여 동안 북한은 미국의 ‘기이한’(eccentric) 협상 태도를 분석하고 향후 대응전략, 그리고 협상 실패에 대비해 ‘새로운 길’을 가다듬었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 해 12월 20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처음으로 ‘새길’을 언급한 이래 김 위원장은 신년사 육성을 통해 플랜B의 가능성을 내비친바 있다.

세 가지의 ‘새로운 길’이 있을 수 있다. 첫 번째 길은 핵개발의 길이다. 과거 병진노선으로의 회귀다. 핵·미사일 실험이 재개될 수 있다. 사실상 ‘과거의 길’이다. 그러나 고립과 제재의 고통, ‘담대한’ 비핵화의 결단 및 협상 실패의 책임을 고스란히 김 위원장은 감당해야만 한다. ‘비핵화’ 약속에 대한 국제사회의 실망과 불신 역시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줄어가는 국가재정 수입 압박, 빠르게 위축돼 가는 경제, 동요하는 민심을 끌어안고 불안스레 가기엔 젊은 지도자의 수명이 길어 보인다. 이 길을 택할 가능성은 낮다.

두 번째의 길은 그럭저럭 버티는 길이다. 과거로 회귀하지도 못하고 경제발전으로 나아가지도 못하는 ‘정체’와 ‘기다림’의 길이다. 자극적인 핵ㆍ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고 핵 개발의 길을 공식 천명하지도 않으며 남북관계의 끈 역시 유지하는 상태. 대북제재의 수위를 높이지 않으며 버티는, 중장기적으로 북미 협상 공간을 열어두는 ‘기다림’의 길이다. 이 길은 무리한 미국의 요구를 당장 수용하느니 협상을 중단하고 장기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한 길이다. 그러나 미국의 다음 정권이 이 기다림을 반길지 미지수다. 제재를 버티며 다음 상대에게 건재함을 과시한다 해도 더 강한 ‘고사’ 정책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세 번째 길은 비핵화의 길을 가되 미국이 아닌 중국 및 러시아와 기술적 협력을 통해 가는 길이다. 북한이 원하는 페이스와 방법으로 비핵화를 실천하며 국제검증을 받는 것이다. 이 길을 통해 비핵화의 구체적 결과가 증명된다면,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명분도 어느 순간에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중국과 러시아의 레버리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비핵화 과정에서 중국과 러시아와의 경제협력 공간도 일정 수준 열릴 수 있다. 미국의 과도한 비핵화 요구, 굴욕적 비핵화가 아닌 대안적 비핵화의 길이다. 미국을 압박하는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다. 실제로 가지 않더라도 미국을 압박할 수는 있다.

예고된 김 위원장 성명은 3월 말, 4월 초 예상되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개최, 최고인민회의와 연동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지난해 4월 20일 당 전원회의를 통해 경제ㆍ핵 병진노선에서 경제발전 총력집중으로 전략노선을 수정했다. 1년을 맞아 결산(총화)과 향후 방향 제시가 불가피하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 결단을 내리며 내부적으로 약속했던 것이 있다면, 비핵화는 절대 안 된다는 군부 및 엘리트들의 충정어린 고언들을 물리치며 걸어 온 길이라면, 김 위원장은 이제 이 길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만 하는 상황이다. ‘협상중단’의 배수진을 친 것은 이런 절박함 때문이다. 이제 남은 것은 북미 지도자의 ‘신비한 궁합’에 맡길 수밖에 없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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