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너’는 현상부터 근원까지 이야깃거리를 몽땅 끄집어 내고 싶은 <한국일보>의 멀티 플랫폼 스토리텔링 콘텐츠입니다. 텍스트, 비디오, 데이터 등등. 가능한 모든 도구로 사람과 사회, 역사와 현상을 연결 지어 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2주에 한 번, 일요일 오전에 찾아 뵐게요.

2009년 2월 2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새하얀 미니드레스를 입고 동료 여배우들과 함께 나타난 장자연(당시 29세)씨는 그날 처음으로 레드카펫을 밟았습니다.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배우로서의 성공을 꿈꾸며 이를 악물고 버텨온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날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 화려한 무대였습니다.

다음날인 2월 28일, 장자연씨는 소속 기획사의 예전 총괄 매니저였던 유모씨를 만납니다. 그리고 ‘대표 김모씨가 자신에게 사회 유력인사들을 위한 술 접대와 성접대를 강요했다’는 내용이 담긴 ‘장자연 리스트’의 첫 부분을 작성합니다. 일주일 뒤인 2009년 3월 7일 오후 장씨의 친언니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자택 계단에서 싸늘하게 식은 동생의 시신을 발견합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곧 3월 말이 되면 법무부의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장자연 사건 재조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미궁 속에 남겨진 장자연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백일하에 드러날 수 있을까요. 오늘 ‘오리지너’는 5,000여 페이지가 넘는 장자연씨 사건의 수사와 재판 자료를 분석했던 한국일보 기획취재부의 정준호 기자, 김용민 변호사(법무법인 양재)의 안내를 받아 사건의 발자취를 되짚어 보려 합니다.

[저작권 한국일보]

오리지너 “일단 먼저 봐야 할 게 2009년 3월 7일을 전후한 시점이죠?”

정준호 기자(이하 정 기자) “장자연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3월 7일보다 일주일 전인 2월 28일에 유모라는 전 총괄 매니저를 만나게 됩니다. 그를 만나 ‘내가 너무 힘든 상황을 겪고 있으니 해결하고 싶다’며 울면서 호소를 했다고 합니다. 유씨가 ‘이야기가 약간 두서없이 들린다’고 하자, 장씨가 ‘그럼 이걸 문건으로 정리를 해 보겠다’라고 하면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문건을 작성하게 됩니다.”

김용민 변호사(이하 김 변호사) “우리가 장자연 문건이라 부르는 (총 7페이지 중) 앞 4장은 (소속사) 김모 대표와의 관계에서 내가 힘들었다는 부분이 집중적으로 기재가 돼 있고, 3장짜리라고 하는 그 리스트에는 성 접대나 술 접대를 받았다고 추정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정리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리지너 “그런데 이 문서는 왜 만들어진 걸까요. 초기 언론 보도에는 유서라는 표현이 등장하던데 최근에는 유서가 아니라는 주장에도 힘이 많이 실리고 있습니다.”

김 변호사 “사실 장자연씨가 사망한 직후에는 그냥 연예인의 자살 사건으로 평가가 됐었습니다. 그 후 KBS에서 문건 보도가 나가면서 ‘이게 단순한 우울증에 의한 자살이 아닌 것 같다. 뭔가 더 있는 것 같다’는 의혹이 커지기 시작하죠. 이 사건은 자살이고, 자살에 따른 유서가 나왔다는 식의 프레임이 처음에 만들어지면서 지금까지도 그렇게 인식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정 기자 “(과거) 수사 기록을 보면 (장씨가) 유모씨를 찾아가서 ‘김 대표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느냐’ 그런 것들을 상담을 합니다. 그 문서를 만들어 자신을 보호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내용을 보면 유서라고 말할 수는 없는데 결국에는 (죽기 직전 마지막 남긴) 유서가 돼 버린 것이죠.”

정준호 한국일보 기자[저작권 한국일보]

오리지너 “총 7쪽인 문서 중 내용이 알려진 첫 4장은 장자연씨가 김모 대표를 법적 처벌, 혹은 어떤 책임을 묻기 위한 근거로 삼고자 했다는 거죠? 그래서 내가 어떤 상황, 어떤 처지에 놓여 있었다는 얘기를 했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드러난 내용이 있나요?”

정 기자 “처음 4장짜리 문건만 보면 아주 구체적이라 말할 수는 없고 굉장히 급하게 쓴 것으로 보이는 내용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문건의 제목 자체가 '장자연의 종합적인 피해 사례'라고 명시돼 있어요. ‘강요로 인해 술자리 등을 셀 수 없이 많이 했다, 룸살롱에서 조선일보 사장을 접대하게 됐다’ 이런 얘기가 나오고 뒤에는 ‘(김 대표로부터) 페트병으로 폭행을 당했다, 본인의 (연예활동) 진행비를 직접 부담했다’ 이런 내용들이 나옵니다. 구체적인 시점과 장소, 이런 점까지 일목요연하게 쓰여진 건 아닙니다. 정말 종합적인 내용들이고, 이걸 통해 다른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오리지너 “많은 분들이 궁금할 텐데요. 밝혀진 문건의 내용만 놓고 볼 때, 문건은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씨가 의도했던 바를 이를 수 있는 요건을 충족하고 있나요?”

김 변호사 “그게 사실은 (가능성이) 크지는 않습니다. 의혹 제기가 된 부분이 다 사실로 밝혀졌다고 한다면 김 대표는 강요죄로 처벌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긴 합니다.”

오리지너 “강요죄라면 접대 관련 행위에 대한 부분을 말하나요?”

김 변호사 “그렇습니다. 강요는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장자연 리스트 파문 이후) 경찰도 강요죄 혐의로 수사를 해서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를 했습니다. 접대를 받은 사람들은 강요 방조죄로 처벌할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사실상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강요 행위를 하는 걸 알면서 도와줬어야 강요 방조가 성립합니다. 단순히 그냥 접대만 받았다고 한다면 강요 방조 (혐의 입증)까지 가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문건의 내용이) 모든 게 다 사실이라고 밝혀지더라도, 처벌할 수 있는 수위에는 일종의 한계가 있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단순히 강요 행위로 그친 게 아니라 폭행이 있었거나, 경우에 따라 강제 추행으로 나간 경우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강요 행위를 통해 장씨가 어떤 술 접대를 하는 과정에서 추가적인 범행이 있었을 가능성은 높은데, 문제는 그것과 관련된 증거가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장씨가 구체적인 진술을 남겨줬다면 충분히 처벌을 할 수 있을 텐데, 가장 큰 한계가 거기에 있는 것이죠.”

김용민 변호사[저작권 한국일보]

오리지너 “사건 당시부터 부실수사 논란이 크게 일었습니다. 수사 과정을 짚고 넘어 가야 할 거 같습니다.”

정 기자 “2009년 7월 10일, (사건 발생) 약 4개월 뒤에 경찰 수사 결과가 발표되는데 김 대표와 유 전 매니저, 그 외에 5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합니다. (경찰의 조사 선상에 오른 인물은 언론인과 연예계, 금융인 등 총 20명이었다. 장자연씨 유족들이 강요 및 사자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소한 7명과 문건에 언급된 5명, 그리고 장자연씨로부터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8명 등이었다. 이 중 총 7명을 법정에 세워 죄를 물어야 한다고 결론 지은 것이다.)

그리고 나서 사건을 넘겨 받은 검찰이 8월 19일 수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그러나 기소가 된 부분은 결국 △김 대표가 장씨를 폭행하고 협박을 했다 △유씨는 장자연 문건 등을 이용해 (허위 사실을 퍼트려) 김 대표의 명예를 훼손 했다, 이 둘뿐이었습니다. 장자연씨가 문건에서 호소한 접대 관련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이후 재판을 거쳐 김 대표는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유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최종 선고 받습니다. 나머지는 다 불기소가 됐습니다. 사유는 증거불충분이었죠. 장자연 문건에 구체적인 일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진술도 엇갈리는 부분이 있다는 이유 등이었습니다.

[저작권 한국일보]

김 변호사 “수사 결과만 놓고 보면 불기소가 타당해 보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문제제기를 해야 할 부분은 ‘과연 수사를 제대로 했냐’인 것이죠. 특히 사망 전 장자연씨의 1년치 통화기록 자료가 사라졌다는 내용의 보도도 나오고 있습니다. 장씨가 당시 가지고 있던 수첩이나 다이어리, 명함 등을 경찰이 압수수색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장자연 문건, 즉 리스트를 보강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입증 증거를 (수사기관이) 수사 초기에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는데, 제대로 확보가 안된 게 아니냐는 의혹은 여전히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 기자 “예를 들면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을 조사하는 과정을 보면, 문건에 명시된 시점은 2008년 9월입니다. 경찰이 방 사장의 핸드폰 번호를 조선일보 기자를 통해 확보하고, 휴대폰 내역을 확인을 하게 되는데 2008년 9월, 이 1개월 부분만 확인을 합니다.”

오리지너 “장자연씨가 조선일보 사장 접대가 있었다고 표기한 그 기간에 대해서만 한정 지어 조회를 했다는 의미인가요?”

정 기자 “네, 딱 그 한 달만 확인을 하는데,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경찰에 제출된 휴대폰이 방 사장 것이 맞긴 한데 수신 내역은 한 달에 4건뿐이었습니다. 발신 내역까지 포함하면 35건인데, 일반인이라도 그 정도 수준의 (적은) 통화를 한다고 생각이 되지 않죠. 언론사 최고위 간부가 그 정도 이상은 했을 것이라고 본다면 당연히 법인 명의 핸드폰이라든가 (다른 핸드폰 존재 가능성 같은) 걸 빠트린 정황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검찰과 경찰의 주장이 엇갈리는 부분입니다. 경찰의 이야기는 ‘통상적으로 우리는 1년치 통화 기록을 본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검찰의 지시로 한 달 정도만 보게 됐다’고 하고 있습니다.”

2018년 7월 6일자 한국일보 4면

오리지너 “검찰이 특정 시기의 통화 기록만 살펴보라고 수사 지휘를 했다는 의미인가요?”

정 기자 “그게 경찰의 주장입니다. 그런데 당시 검찰의 주장을 또 들어보면, ‘우리는 경찰이 올린 대로 (수사를) 진행했다’라고 하는 거죠.”

장자연 리스트 의혹 중 가장 이목을 집중시켰던 부분 가운데 하나는 조선일보 사주 일가 3인 수사였습니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그리고 아들인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 방상훈 사장의 동생인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이 그 3인입니다. 방상훈 사장은 장자연 리스트에 ‘조선일보 사장’이라고 명시된 부분 때문에, 방정오 전 대표와 방용훈 사장의 경우 장자연씨와 술자리 및 식사 자리 등에 동석했다는 사실이 주변인들로부터 확인이 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찰은 방상훈 사장의 경우 조선일보 회의실에서, 방정오 전 대표는 코리아나호텔에서 각각 1시간 미만의 방문 조사만 진행하고 종결합니다. 경찰서로 불러 조사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었던 점에 비춰보면 매우 이례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심야 조사도 빈번했던 다른 참고인들에 비해 그 시간도 매우 짧았습니다. 방용훈 사장은 당시 아예 수사 선상에서 배제돼 조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저작권 한국일보]

오리지너 “당시 정황을 밝히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장자연씨의 통화기록 자료가 통째로 없어졌다고 하는데 맞나요?”

정 기자 “수사 당국은 당시 장자연씨의 휴대폰을 입수합니다. 장씨는 총 3대를 쓰고 있었는데, 1년치 통화 기록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후에 담당 검사에 따르면 그 통화 기록을 엑셀로 정리를 해 둔 것을 다시 CD로 구워서 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퇴근 후) 집에서도 보고 해야 해서 그걸 복사해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든 수사가 종결이 되고 나서 최근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에서 수사 검사를 다시 호출을 합니다. ‘1년치 통화기록이 없는데 혹시 당신이 가지고 있냐’고 묻기 위해서였죠.

이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통화 기록은 그 때 증거물로 압수했으니 보존 절차가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다른 포인트는 제출한 복사본이 원본의 내용 그대로가 아닐 여지도 있다는 점입니다. 검사가 다시 제출한 파일에는 일부 중요한 자료는 또 빠졌을 수도 있습니다. 많은 의구심을 남긴 거죠.”

김 변호사 “통화 기록을 포함한 디지털화된 증거들을 제출할 때에는 다시 쓰거나 편집하지 못하도록 기술적 조치를 한 다음에 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담당 검사가 갖고 있던 자료는 언제든지, 누구나 편집할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자료는 있지만, 진정한 자료이냐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게 가장 중요한 문제점이죠.”

오리지너 “그렇다면 뒤늦게나마 이 자료를 토대로 수사를 하고, 의심스러운 인사를 불러서 죄를 묻겠다고 한다면, 그 지목 당한 당사자는 ‘이 자료가 조작된 것’이라면서 부인할 수도 있다는 의미인가요?”

김 변호사 “맞습니다. 유죄의 증거로 쓰기 어려운 증거가 될 수 있는 거죠.”

오리지너 “그나마 어렵게 찾은 증거물인데 분석을 해 봐야 피의자가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나 많다는 건가요?

김 변호사 “네, 그렇습니다.”

2018년 8월 14일자 한국일보 1면.

오리지너 “과거 수사 후 추가로 드러난 점은 어떤 게 있고 곧 예정된 진상 조사 발표는 어떤 의미를 갖게 되나요?”

정 기자 “지난해 7월 장자연 수사 기록 5,000여페이지를 분석해 사건의 전말과 당시 수사 과정을 보도했는데 (보도 이후인) 지난해 하반기부터 현재까지 새롭게 언급되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의 경우 장자연씨와의 만남이 확인되면서 지난해 12월 대검 진상조사단의 비공개 소환조사가 있었습니다. 또 (언급이 되는) 다른 사람은 방용훈 사장과 같이 만났다는 진술이 나온 권재진 전 법무부 장관입니다. (방 사장과 함께 만났다는 의혹이 제기된) 당시 대검찰청 차장으로, 검찰의 ‘넘버 투’ 격의 위치였죠. 그리고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이 있습니다. 장자연씨와 박문덕 회장이 과거 같은 날 비행기를 타고 필리핀으로 간 것이 확인이 됐고, 박 회장이 장씨에게 수표로 1,000만원 가량을 줬다는 내용까지는 (MBC PD수첩 등에서) 확인이 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본인은 부인하고 있지만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이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 명의의 핸드폰으로 장씨와 통화를 했다는 기록이 나왔습니다. 최근 (장자연의 동료배우였던) 윤지오씨는 ‘본인이 당시에 직접 문건을 봤을 때 특이한 이름을 가진 국회의원이 있었다, 다른 어떤 언론계 재계 인사들의 이름을 봤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지금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상황입니다.”

그 밖에도 2008년 8월 소속사 김 대표의 생일파티가 있었던 서울의 한 가라오케에서 장씨를 강제추행 한 혐의로 전직 조선일보 기자 조모씨가 지난 해 뒤늦게나마 기소되면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고 장자연 문건' 목격자로 알려진 배우 윤지오씨가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고 장자연씨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리지너 “우리가 장자연 사건을 다시 주목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3월 말에 법무부와 검찰이 장자연 사건을 비롯한 일련의 과거 사건 진상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검 진상조사단의 권한이 한정돼 있을 텐데, 이번 발표로 또다시 수사가 이어질 수도 있나요?”

김 변호사 “가능성은 있지만, 관련된 사안의 대부분이 공소시효가 지났습니다. 실제 처벌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죠. (장자연 문건 연루자가) 강제추행 이상의 성범죄로 나아갔다면 공소시효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는데 그것보다 법정형이 낮은 범죄는 거의 다 (공소시효가) 끝났다고 봐야 합니다.”

오리지너 “사건의 실체를 더 알아낸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정의구현과는 거리가 멀어지겠네요.”

김 변호사 “검찰 과거사위의 주요 조사 부분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사건의 실체가 무엇이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당시 수사를 어떻게 잘못했느냐’, 이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건의 실체와 관련된 부분은 장씨가 실제로 남겨둔 게 많지 않았고, 그 부분이 초동수사 때 상당 부분 수사하지 않거나 유실돼 실체를 들여다보는 데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또 하나 수사가 뭐가 잘못됐느냐 이 부분은 좀 더 많은 자료를 확보해 조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도 검찰 과거사위에는 강제 조사권이 없습니다. 한계가 분명하죠. 그렇더라도 여태껏 의심과 의혹만 가지고 있던 부분에 대해, 가진 자료를 다 모아보고 참고인과 협조자들을 모두 불러서 이야기를 들어보게 되면 의혹으로만 제기된 부분 가운데 사실로 확인되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 좋을 거 같습니다.”

[저작권 한국일보]

정 기자 “어떻게 보면 당시에 남겨진 약자인 신인 배우의 목소리는 매우 뚜렷하고 분명했습니다. 반면 그걸 둘러싼 권력기관과 수사기관의 움직임은 굉장히 핵심을 빗겨나가는 모양새였습니다. 10년이 지나도 사람들이 기억을 하고, 해결을 촉구하는 이유는 이런 상황에 대해 우리가 정말 해결할 의지가 있는가를 다시 묻는, 사회적 신뢰를 회복해 나가는 수순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김 변호사 “한 젊은 여자 배우가 꿈이 무너지면서 생을 마감한 것은 기득권 세력의 부당하고 강압적인 행위가 작동했기 때문인데 지금도 우리가 공분하는 것은 아직 이 구조가 깨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비단 연예계뿐만 아니라 사회 각 영역, 특히 지금 젊은 세대가 느끼는 모순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그 공분이 이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2018년 7월 6일자 한국일보 1면.

10년 전 3월, 그 때도 그랬지만 ‘여배우의 유력인사 성 접대’라는 선정적 키워드는 사람들의 뇌리 속에 사건의 본질과 비본질적 의구심을 동시에 소환합니다. 풀리지 않은 의혹이 아직도 똬리를 틀고 있는 탓에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위의 사실에 저 배우 장자연은 거짓 하나 없으며 (소속사) 김 대표로 인해 고통 받은 피해 사례입니다. 2월 28일 장자연.”

장자연씨가 10년 전 남긴 ‘장자연 리스트’ 문서 중 한 페이지의 마지막 내용입니다. 사망 당시 세상은 이 문서를 유서로 보고 넘어갔지만, 어느 누가 봐도 이런 문구는 유서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 어색하고 절박한 문구를 곱씹어볼 때 우리는 여전히 그가 왜 그런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별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 ‘유력인사가 연루된 추문, 폭력과 강압, 우울증, 금전적 압박...’ 장자연 사건에 꼬리를 물고 있는 이 의문의 키워드가 가리키는 실체의 끝은 어디일까요. 사건의 종착점에선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는 이들에 대한 단죄가 있어야겠고, 그 사람 장자연의 마지막을 공유하고 그 고통의 무게를 나눌 기회도 꼭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상, ‘오리지너’였습니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김창선 PD changsun91@hankookilbo.com

자료조사 박서영 solucky@hankookilbo.com

최한솔 인턴PD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