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전역을 강타한 정전 6일째인 12일, 상수 펌프 역시 작동하지 않아 물 부족에 시달리던 카라카스주 시민들이 하수관에서 물을 담아가고 있다. EPA 연합뉴스
베네수엘라 전역을 강타한 정전 6일째인 12일, 상수 펌프 역시 작동하지 않아 물 부족에 시달리던 카라카스주 시민들이 직접 상수관을 열고 물을 담아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도로변을 따라 길게 늘어진 사람들의 손에는 저마다 플라스틱 통이 들려있다. 사람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하수관에서 흘러나온 물을 담아 나른다. 거리의 상점들은 약탈당해 난장판이 됐다. 국토의 80%에 달하는 지역이 정전 돼 마실 물이 끊기고 식료품이 썩어가는 베네수엘라의 모습이다.

12일(현지시간)부로 카라카스 주를 제외한 지역의 전력이 복구됐지만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 역대 최악의 정전사태를 불러온 근본적인 원인이 그대로인 까닭이다. 베네수엘라의 전력 80%는 단 하나의 발전소, 볼리바르주 카로니강에 지어진 구리 수력발전소에서 생산된다. 이번 7일 이 수력발전소의 변전소가 고장 나며 한순간에 국가 전력생산량의 80%가 사라진 것이다.

지속되는 정전과 경제난으로 인해 베네수엘라의 시민들은 극심한 물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10일 카라카스주 시민들이 식수ㆍ식량난을 견디지 못하고 인근 상가를 약탈해 경찰 병력에게 붙잡혔다. 로이터 연합뉴스
정전과 경제난으로 인해 식량난이 극심해진 카라카스주 시민들에게 약탈 당한 식료품 가게의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지속되는 정전과 경제난으로 인해 베네수엘라의 시민들은 극심한 물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10일 카라카스주 시민들이 식수ㆍ식량난을 견디지 못하고 인근 상가를 약탈해 경찰 병력에게 붙잡혔다. 로이터 연합뉴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이번 사태가 “미군의 사이버 공격”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미구엘 라라 전 베네수엘라 전력공사 사장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의 원인은 “정비 부족과 무관심”이라고 지목했다. 라라 전 사장은 “1990년대 이후로 (발전소의) 제어·통제 시스템이 업데이트 된 적이 없다”고 언급하며 “송전선과 변전소 역시 관리가 안 돼 수목이 장비를 덮어버려 오작동이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더군다나 발전소의 통제 시스템은 애초에 인터넷에 연결 돼 있지 않아 “미군의 사이버 공격”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역대 최악의 정전사태가 베네수엘라를 덮친 7일 카라카스주 소재 병원의 영아 집중관리실 밖에서 보호자와 친척들이 기다리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역대 최악의 정전사태가 베네수엘라를 덮친 7일 카라카스주 시민들이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 칠흑 같은 어둠 속을 걷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국가 전력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공급원조차 제대로 관리가 안 되는 현 세태가 계속되는 이상 베네수엘라 시민들은 정전의 위협에서 안전하지 못하다. 지난 2010년과 2016년 가뭄으로 인해 구리 댐의 수위가 낮아지자 베네수엘라 정부는 하루 2~4시간씩 전국의 전력공급을 중단한 적도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대체전략이 없는 것은 전력뿐만이 아니다. 전체 수출금액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석유 산업 역시 기반시설과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여 원유가가 상승세로 돌아섰음에도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진작 해외 자본을 철수시킨 베네수엘라의 자체 기술력으로는 수익성을 더 높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플랜 B’ 없이 ‘올인’했던 경제와 사회기반이 주저앉으며 베네수엘라의 시민들은 먹는 물을 하수관에서 떠 마시는 ‘어둠’ 속으로 내몰렸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베네수엘라 전역을 강타한 정전 6일째인 12일, 상수 펌프 역시 작동하지 않아 물 부족에 시달리던 카라카스주 시민들이 인근 하천에서 빨래와 목욕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베네수엘라 전역을 강타한 정전 4일째인 10일, 물 부족에 시달리는 카라카스주 시민이 국립공원 내 암벽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고 있다. AP 연합뉴스
베네수엘라 전역을 강타한 정전 6일째인 12일, 상수 펌프 역시 작동하지 않아 물 부족에 시달리던 카라카스주 시민들이 하수관에서 물을 담아가고 있다. EPA 연합뉴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주 시민들이 정전 중에도 자체 발전기를 돌려 운영중인 주유소를 향해 자동차를 밀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유매장량을 자랑하지만 지속되는 정전에 주유소 역시 전기가 끊겨 주유하기가 어려워졌다. AP 연합뉴스
정전이 계속되던 9일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주에 보이는 불빛이라고는 차량의 전조등뿐이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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