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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공공근로, 고용일까?

입력
2019.03.15 18:00
수정
2019.03.17 17:47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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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피라미드가 강제노동이 아닌 ‘공공근로’로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다. 전에는 노예들이 동원됐다는 게 통설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근래 고고학적 발견과 분석에 따르면 피라미드 건설 노동자들은 급여를 받고 상시 의료서비스를 받았으며, 휴가까지 갔다고 한다. 나아가 나일강이 범람하는 약 4개월 동안 농사일을 할 수 없었던 농민들을 위해 나라에서 피라미드 건설이라는 유급 공공근로 기회를 제공했고, 대부분 피라미드 노동자들은 자유 의사에 따라 일했다는 설까지 나온 상태다.

□ 고대 이집트가 신성한 파라오에 의해 통치된 강력한 전제국가였다는 점과 피라미드 공사의 엄청난 규모를 감안하면, 건설엔 어떤 식으로든 의무적 국가동원 체제, 곧 부역 같은 제도가 운영됐을 가능성이 짙다. 그렇더라도 홍수기 농민들에게 빵과 임금을 주는 일터의 역할도 했다면 구휼정책 차원의 공공근로로 볼 여지도 있는 셈이다. 구휼 차원의 공공근로가 복지정책으로 시스템화 한 건 근대 국민국가 형성 이후로 봐야겠지만, 실제론 고대 이래 세계의 대부분 왕조국가에서도 제도의 원형은 드물지 않다.

□ 고대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수많은 거대 운하들은 백성의 고혈을 짜낸 고통스러운 부역의 결과물로만 인식된다. 하지만 달리 보면 하루 세끼 끼니조차 잇기 어려웠던 당대의 빈민들에겐 그나마 배를 채울 구휼적 공공근로의 기회였을 수도 있다. 조선시대 말기 경복궁 중건 사업 역시 기본적으론 부역 시스템에 의해 노동력을 충당했다지만, 건설사업에 당백전이 너무 많이 주조돼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었다는 기록 등을 보면 공공근로로서 최소한의 임금이 지급됐을 여지가 많다.

□ 현대 공공근로의 대표 사례는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미국 뉴딜정책을 꼽는다. 그때 사회간접자본(SOC) 건설과 맞물린 대규모 공공근로로 수많은 실업자를 구제했다는 평가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 취로사업부터 최근의 공공근로에 이르기까지 유사 시책이 이어졌다. 하지만 본질적으론 생산적 필수 근로라기보다는 그야말로 구휼적 성격의 일회성 일자리라고 볼 수밖에 없다. 노인 일자리 사업 결과 2월 신규 취업자 수가 늘자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다행’이라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구휼 차원의 인위적 일자리 증가를 고용 호전으로 볼 수 있을지, 나아가 공공근로를 고용으로 치는 게 맞는 건지, 의구심이 든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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