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업소가 줄지어 있는 서울 청량리 일대에 한 남성이 성매매 여성과 흥정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수진이 15세 때 성매매업소에 발을 들인 것은 새엄마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친척 소개로 봉제 공장에 취직했지만 공장이 망해 갈 곳이 없던 터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된다”는 말에 속아 술집에 가게 됐다. 도망쳤지만 새엄마의 폭력이 무서워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버스 안내원으로 취직했다 버스 기사에게 성폭행 당했다. 월급은 새엄마에게 봉투째 빼앗겼다. 돌아갈 곳이라곤 성매매 업소뿐이었다. 업주 소개로 만난 남편은 폭력을 휘둘렀다. 아이들을 버리고 수진은 도망쳤다. 하지만 갈 곳이 없었다. 두 번째 남편도 수진을 때렸다.

수진은 끝내 탈출해 ‘탈성매매 여성’이 됐다. 이혼한 뒤 아들을 혼자 키우며 여성인권단체에서 다른 여성들을 돕고 있다. “남들은 한 번도 안 갔을 경우를 나는 여러 번 너무 많이 갔다. 두 번은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다. 그런 아픔이 지금 이 시점에서는 또 다른 세상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 같아 좋기도 하다.”

# 대학 졸업을 앞둔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엄마는 아들의 ‘남자친구’에게 들었다. “어, 이게 뭐지?” 생각도, 심장도 하얗게 멈췄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이야기 할 사람이 없는 게, 이 세상에 혼자 갇혀 있는 기분이었다.” ‘평범했던 엄마’는 ‘성소수자의 엄마’가 됐다. 엄마는 게이인권단체에 참석한 젊은이들을 보고 깨달았다. “아, 이렇게 타고나는 거구나, 이거는 의심할 것이 아니구나.” 엄마는 받아들였다. 아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기만 바라기로 했다. 그리고 죄책감을 덜어냈다. “우리 아이들이 그들을 혐오하는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슬퍼요. 늙은 할머니가 되어도 아들이 외롭지 않게 곁에 있어 주고 싶어요.”

지난해 7월 서울 광화문 시청광장에서 개막한 성소수자들의 최대 축제인 서울퀴어문화축제 행사장에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수자들의 삶과 기록’은 탈가정 10대, 탈성매매 여성, 넝마주이, 병역거부자, 군 영창 근무자와 수용자, 탈시설 장애인 부부, 청각장애인, 자폐장애인, 후천성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 성소수자 등 ‘소수자’라는 꼬리표가 붙은 채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이 마음속 깊이 담아 뒀던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주인공이 직접 쓴 글도 있고, 부모나 연구자 등 ‘표현 도우미’가 써 준 글도 있다.

주인공들은 차별과 조롱, 부조리에 분노하는 대신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담하게, 때로는 씩씩하게 진술한다. 책은 다큐멘터리 원고를 닮았다. 소수자 인권 문제를 과장하거나 파편적으로 다루는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보다 울림이 크다.

 소수자들의 삶과 기록 
 윤수종 엮음 
 문학들 발행ㆍ376쪽ㆍ1만4,800원 

책은 소수자의 삶이 ‘그들만의 삶’ 혹은 ‘먼 나라의 삶’이 아니라고 일러 준다. 비소수자 혹은 주류가 공감할 수 있는 대목도 많다. ‘소수자들의 삶과 문학’(2014년)에 이어 두 번째로 소수자의 이야기를 엮은 윤수종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소수자의 삶은 종종 다수자에 의해 재단되고 묘사돼왔다”며 “소수자가 직접 말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수가 이들의 삶을 좀더 폭넓게 이해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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