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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전현희 정치, 나경원 정치

입력
2019.03.14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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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ㆍ카풀 상생대타협 난제 맡아 결실

“정치 본질은 책임ㆍ해결”아닌 ‘문제’로

경로 비슷한 두 의원 ‘政者正也’ 시험대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의원(왼쪽)이 지난 주 택시ㆍ플랫폼 사회적대타협을 이끌어낸 뒤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협상과정과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인 나경원 의원이 12일 국회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는 모습. 법조인 출신인 두 의원 모두 부조리한 세상을 바꿔보겠다며 비례대표로 정계에 입문해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누가 ‘정자정야(政者正也)’의 뜻을 올바로 구현할까.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의원(왼쪽)이 지난 주 택시ㆍ플랫폼 사회적대타협을 이끌어낸 뒤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협상과정과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인 나경원 의원이 12일 국회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는 모습. 법조인 출신인 두 의원 모두 부조리한 세상을 바꿔보겠다며 비례대표로 정계에 입문해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누가 ‘정자정야(政者正也)’의 뜻을 올바로 구현할까.

필자가 그를 눈여겨본 계기는 지난해 12월 20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3차 택시 생존권사수 결의대회’다. 30만 택시 종사자와 100만 택시 가족 이름으로 열린 이날 대회에 그는 더불어민주당 택시ㆍ카풀TF 위원장 자격으로 홀로 참석, “택시를 죽이려 한다”는 온갖 야유와 욕설을 다 받아냈다. 자유한국당에서 나경원 원내대표와 정용기 정책위의장 등 6명의 의원이 참석한 것과 대비됐다. 그가 마이크를 잡자 당장 “물러나라”는 야유가 터져나오고 물병이 날아들었다. 이런 와중에도 그는 꿋꿋이 택시 4개 단체가 전날 사회적 대타협기구 참여를 결정한 결단에 감사하며 “업계의 생존권 걱정과 고민을 해결하는 지혜를 찾겠다”고 약속했다.

이 장면을 보며 답이 나올 거라곤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당 지도부는 핏발 선 업계와의 만남조차 불편해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더구나 그 자리의 한국당 의원들은 “문재인 정권이 서민을 위한다면서도 여러분 얘기도 듣지 않고 일방적이고 잘못된 정책을 내놨다”며 “우리 당이 앞장서 막겠으니 함께 투쟁하자”고 잔뜩 불을 질렀다. 그는 치과의사를 하다 변호사로 변신해 화제가 되고 보수 텃밭인 서울 강남에서 당선된 첫 민주당 의원이라는 진기록과 훈장으로 유명세를 치렀다. 하지만 18대 비례대표로 정치에 입문해 고작 재선인 그가 업계 생존권과 공유경제 시금석이라는 이해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문제를 푸는 것은 역부족인 듯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7일 오후 택시ㆍ플랫폼 사회적대타협기구가 카풀 운행 시간을 오전 7~9시, 오후 6~8시로 제한하는 내용 등 7개 항의 합의안을 마련했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이어 “그가 난제를 해결해 우리 당을 구했다. 공유경제로 가는 첫 사회적 대타협 모델을 만들었다”는 칭찬이 민주당 의원 단체카톡방에 쏟아졌고 이해찬 대표도 자기 일처럼 반겼다. 전현희 의원(55ㆍ강남을) 이야기다.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결과만 보면 빈약할 수 있고 “고작 이런 작품 내놓으려고 긴 시간 개고생했냐”는 불만도 나올 수 있다. “카카오와 회사택시 업계만의 합의” “차량 공유 산업의 싹을 자른 졸속 결론”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더 잃을 게 없다”며 험악한 말을 주고받은 사람들을 대화테이블에 앉히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신뢰를 쌓는 게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생각한 전 의원은 4개월 동안 당사자들을 200차례 이상 만났다고 했다. 130번째쯤 되니 비로소 진심이 닿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특히 어려웠던 고비는 세 차례 분신 사건이 일어나고 두 사람이 숨진 때였다. 그때마다 대타협기구 회의는 휘청거렸고 전 의원은 냉대를 무릅쓰며 수시로 분향소를 찾았다.

합의가 끝은 아니다. 심야 승차 거부 등 고질병을 해소하고 업계 파이를 늘려 공생하려면 ‘규제혁신형 플랫폼 택시’을 위한 실무협의를 계속해야 하고 관련 입법도 서둘러야 한다. 하나 하나가 쉬운 일이 아니고 자칫 합의 자체가 틀어질 위험도 상존한다. 전 의원의 합의가 최선이 아닌 차선이라는 것을 안다. 거꾸로 생각해 보자. 대타협이 결렬돼 택시업계는 극한 투쟁으로 치닫고 국회는 강도 높은 카풀 규제로 답하는, 그래서 ‘모두 다 죽는’ 상황 말이다.

나 원내대표가 깨끗이 환영한데서 보듯, 야당도 전 의원이 얼마나 어려운 일을 해냈는지 안다. 그런데 그 합의마저 그가 불지른 국회 파행에 막혀 길을 잃을 위험에 처했다. 나 원내대표는 “장애를 가진 아이 등 소수자를 홀대하는 세상을 바꾸겠다”며 비례대표로 17대 국회에 입성, 서울 시장 후보와 4선 등 화려한 경력을 쌓으며 보수 야당 원내사령탑에 올랐다.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쌍벽을 이뤘던 그인 만큼, 박근혜 정부에서 줄을 잘못 선 것은 지금 보면 천운에 가깝다.

나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 실정을 맹폭하며 “정치의 본질은 책임과 해결”이라고 했다. 그런 본인이 문제가 되고 장애물이 됐다. 정자정야(政者正也)라고 했다. 63년생 나경원과 64년생 전현희, 누가 이 말을 가슴에 담아야 할까.

이유식 논설고문 jtino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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