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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만 찾는 세상 뒤엎어야” 86세 백기완이 10년 만에 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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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만 찾는 세상 뒤엎어야” 86세 백기완이 10년 만에 쓴 소설

입력
2019.03.14 16:27
수정
2019.03.14 22:0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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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86)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지난해 4월 10시간이 넘는 큰 수술을 받았다. 부쩍 수척해진 모습이었지만, 민중의 중요성을 역설할 때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오마이북 제공
백기완(86)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지난해 4월 10시간이 넘는 큰 수술을 받았다. 부쩍 수척해진 모습이었지만, 민중의 중요성을 역설할 때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오마이북 제공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큰 죄가 ‘내 거’다. 내 거는 끊임 없이 내 거를 찾아 다른 사람의 피눈물까지 내 거로 만든다. 그런 내 거는 거짓이다. 그래서 참된 내 거를 깨우쳐야 해. 이 썩어 문드러진 구조를 뒤집어 엎자는 거야. 그 ‘한바탕’을 바로 오늘 우리가 하는 거지. 이 말 하려고 내가 목숨 걸고 마음 쏟아 책을 내놓는다.”

‘거리의 백발 투사’ 백기완(86) 통일문제연구소장이 토해내듯 한 말이다. 13일 서울 대학로 학림커피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다. 그는 일생의 화두인 민중들의 삶과 철학을 풀어낸 소설 ‘버선발 이야기’를 냈다.

‘버선발 이야기’에 백 소장은 문자 그대로 생을 쏟아부었다. 책 집필 중이던 지난해 4월 그는 심장 관상동맥이 막혀 10시간이 넘는 큰 수술을 받았다.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찾은 것은 원고지. “내가 죽으면 이런 거 쓰고 핏대 세울 사람이 없겠다 싶더라고.” 혼신을 쏟아 부은 책은 그가 10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책은 머슴의 아들로 태어난 주인공 버선발이 돈과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에 맞서 저항하는 성장소설이다. 백 소장이 어린 시절 들은 이야기들을 엮었다. 버선발은 ‘벗은 발’, 즉 맨발이라는 뜻.

버선발 이야기

백기완 지음

오마이북 발행•296쪽•1만 5,000원

버선발은 어머니와 함께 바위 위에 집을 짓고 산다. 매일 고된 노동의 연속이지만, 머슴 집안에는 “호박 한 포기 심어 먹을 땅 한 줌”도 돌아오지 않는다. 밤마다 울분에 차 “갈아 엎어야 한다”고 잠꼬대를 하는 어머니를 보며 버선발은 세상의 불평등을 깨우친다. 어머니는 머슴의 의미에 대해 “사람의 뿌리를 못 내리게 하고, 한낱 목숨 없는 쓸 거(물건)”라고 말해 준다. 주인집에 잡혀가지 않기 위해 먼 길을 떠난 버선발은 뜬쇠(예술가), 나간이(장애인), 이름 없는 니나(민중) 등과 함께 어울리며 참된 희망을 찾는다.

백 소장 철학의 핵심인 ‘노나메기의 이상’이 압축된 소설이다. 노나메기란 “돈이 있든 없든 사람이라고 하면 머슴만 일을 시킬 게 아니라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래서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살고, 그게 올바르게 잘 사는 것”이란다.

13일 서울 대학로 학림커피에서 진행된 ‘버선발 이야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도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오마이북 제공
13일 서울 대학로 학림커피에서 진행된 ‘버선발 이야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도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오마이북 제공

책은 한자, 외국어 없이 순 우리말로만 쓰였다. “가진 것이라고는 땀 눈물 한숨 밖에 없는 민중의 말”을 온전히 표현하기 위해서다. 책 뒤에 ‘낱말 풀이’를 실을 정도로 술술 읽히진 않지만, 읽을수록 입에 푸근하게 감긴다.

백 소장은 소설을 쓰며 어머니를 떠올렸다고 한다. “어머니가 생전에 예술적 문학적 소양이 뛰어나셨다. 맑은 개천을 보면 ‘배알(속마음)이라도 꺼내 씻고 싶다’고 말하더라. 고기를 먹고 싶어 멘데이울음(거짓울음)을 쏟아내면, ‘너는 멘데이울음을 울지만 난 간장이 끊어진다’고 하셨던 것도 기억 난다. 어제 밤에 책을 읽고 울었다. 기회가 되면 말림(온몸으로 하는 연극)으로도 보여주고 싶다.”

이날 간담회엔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과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참석했다. 책을 널리 알리기 위해, 두 사람은 ‘버선발 이야기’ 독후감 대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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