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가 자꾸 곡을 하며 상여꾼 흉내 내는 걸 본 엄마는 집을 공동묘지 근처에서 저잣거리 인근으로 옮겼다. 그랬더니 아이가 장사꾼 흉내를 냈다. 엄마는 다시 서당 근처로 이사했다. 이번엔 자식이 예법을 흉내 내는 것을 보고 정착했다. 중국 고사에 등장하는 유명한 ‘맹모삼천지교’ 이야기다. 자식의 교육 환경을 위해 이사를 마다하지 않은 맹자의 엄마는 교육열 높은 요즘 엄마들의 ‘롤 모델’로 종종 꼽힌다.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주변의 적잖은 현대판 ‘맹모’들을 보게 된다.

우리 집 근처엔 중학교가 두 곳 있다. 한 해에 특수목적고등학교에 수십명씩 보내는 A중학교는 경기도에 있지만 서울의 이른바 좋은 학군에 속한 중학교들 못지 않은 명문으로 알려져 있다. B중학교는 고등학교 입시 결과나 학력 수준이 A중학교에는 다소 못 미치지만, 그래도 웬만한 서울 지역 중학교에 견줘도 우수하다고 평가 받는다. A와 B중학교는 찻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그 찻길 기준으로 아파트 값은 억 단위로 차이가 난다. A중학교에 배정 받는 아파트 단지가 훨씬 비싸다.

최근 우리 집이 있는 아파트 단지에 살던 아이 친구들이 하나 둘씩 찻길 건너로 이사 하기 시작했다. 단지 큰 집이 필요하거나 경제 사정이 넉넉해서가 아니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학생들은 졸업 후 A와 B중학교로 나뉘어 진학한다. 우리 단지 아이들은 대개 B중학교로 배정받는다. 이사 가는 주된 이유는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이 워낙 많아 ‘면학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조성된다는 A중학교에 배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부모의 마음은 맹모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 아파트에서 정을 나누고 지냈던 이웃들이 맹모삼천지교를 실천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도 하나뿐인 자식을 위해 기꺼이 맹모가 돼야 하나 고민이 커졌다. 현대과학 역시 맹모삼천지교의 효과를 부인하지 않는다. 인지능력이나 학업성적은 타고난 지능뿐 아니라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공부 잘 하는 친구들에 둘러싸여 적절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정신적인 긴장 상태가 형성돼 학습 능률이 올라갈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설명한다. 시험이나 평가 같은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도 향상될 수 있다.

친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선의의 경쟁 역시 학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뇌과학에 따르면 적절한 선의의 경쟁은 뇌에서 도파민이 활발히 분비되도록 촉진하는 자극제로 작용한다. 도파민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필요한 호르몬이다. 친구보다 더 나은 성적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도파민 덕분에 공부에 집중하는 행동으로 연결될 수 있다. 생리학적으로 학습 동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이런 게 바로 맹모들이 기대하는 면학 분위기 효과일 것이다.

다만 문제는 이른바 명문학교의 환경이 아이에게 이렇게 긍정적인 영향만 미칠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스트레스나 경쟁이 적절한 수준을 넘어 지속적으로 생기거나 강도가 심해지면 몸에선 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코티솔이 분비된다. 이는 인지능력과 학습능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동네나 학교에 아무리 좋은 면학 분위기가 형성돼 있더라도 그 안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경쟁이 지나치다면 아이의 학습에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는 의미다.

코티솔의 영향력을 줄이는 방법은 있다. 바로 운동과 사회활동이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할 때는 뇌 유래 신경성장인자(BDNF)가 분비된다. 이는 신경세포를 활성화하고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등 스트레스 호르몬과 정반대 작용을 한다. 학습 경쟁이 심해질수록 아이들이 운동이나 사회활동을 꾸준히 이어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많은 과학자들은 그래서 학업성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환경 요인으로, 사는 동네나 다니는 학교보다 가정을 먼저 꼽는다. 코티솔의 영향력을 줄이고 도파민과 BDNF가 활성화하도록 만들어주는 데는 가정, 곧 부모의 역할이 최우선이라는 것이다.

옆집 윗집 아랫집 아이들 성적이 대부분 상위권인데 내 아이가 그에 미치지 못해도 아이를 닦달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학교 경쟁이 극에 달해도 아이에게 충분한 운동과 사회활동을 할 여유를 약속할 수 있나. 이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하는 한 맹모삼천지교는 섣부르다고 과학은 조언한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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