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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서의 명화를 보다, 경제를 읽다] 쇠라의 점묘화에서 발견한 ‘보이지 않는 손’

입력
2019.03.16 10: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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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점묘파 화법과 완전경쟁시장

※경제학자는 그림을 보면서 주로 그림값이나 화가의 수입을 따질 거라 짐작하는 분들이 많겠죠. 하지만 어떤 경제학자는 그림이 그려진 시대의 사회경제상을 떠올려보곤 한답니다. 때로는 그림에서 경제학의 원리를 발견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죠. 미술과 경제학이 교감하는 흥분과 감동을 함께 나누고픈 경제학자가 격주 토요일마다 ‘명화를 보다, 경제를 읽다’를 연재합니다.

조르주 쇠라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1884), 미국 시카고미술관, 207.5×308.1cm
조르주 쇠라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1884), 미국 시카고미술관, 207.5×308.1cm

최근에 가장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된 이슈는 대기업의 고용관계에서 발생하는 ‘갑질’ 현상일 것이다. 이런 현상은 갑을 관계에서 쌍방 당사자 중에 한 쪽이 권력이나 경제력을 일방적으로 소유하거나 행사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이때 피해를 당하는 쪽이 불평등한 관계를 청산하고 다른 고용주를 찾을 수 있으면 이 문제는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을의 입장에서 선택의 대안이 없을 때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는 것이다.

◇경쟁이 있다면 갑질은 없다

시장의 경우도 독점적 시장에서는 독점기업의 횡포를 소비자들이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생긴다. 독점기업이 생산하는 재화는 시장에서 다른 재화로 대체될 수 없고, 독점자는 가격이나 공급량을 결정할 수 있는 ‘시장지배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경쟁적 시장에서는 개별 기업이 이런 독점력을 가질 수 없다. 소비자들은 자유롭게 다른 기업의 제품을 대체재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경쟁적인 시장에서는 기업이 소비자들에게 갑질의 횡포를 부릴 여지가 없다.

경쟁적 시장 안에는 동질적인 재화를 생산하는 수많은 기업들이 소비자들의 수요를 얻기 위하여 경쟁한다. 만약 한 기업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가격을 올린다고 하자. 더 높은 가격을 매기는 기업은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기업들도 동일한 제품을 공급한다는 가정 하에서, 소비자들이 타사 제품 가격에 대한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당연히 다른 기업의 상품을 구매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그 기업은 시장에서 도태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장에서는 개별기업의 시장에 대한 영향력이 ‘제로’라고 할 수 있다. 즉 시장지배력은 영(0)이다. 이처럼 경쟁적 시장에서는 한 개별기업은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을 변경시킬 수 없다.

이런 시장을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완전경쟁적 시장(perfectly competitive market)이라고 부른다. 이 이상적인 시장은 사실 많은 가정의 기초 위에서 단순화된 시장의 모델이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추상화된 시장이다. 또한 수많은 기업이 존재하는 완전경쟁적 시장에서 각 기업은 다른 기업의 의사결정을 고려할 필요도 없어진다. 그런 점에서 각 기업은 서로 독립적이다.

◇수많은 점이 이룬 조화와 균형

학창 시절 그림책에서만 보아왔던 점묘파(pointillism)의 그림을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Musee d’Orsay)에서 발견하고는 꼼꼼히 들여다본 적이 있다. 그것은 아주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그림에서 조화로운 완전경쟁시장의 균형상태를 발견했으니 말이다.

점묘파의 기법은 회화사에 있어서도 아주 독특한 기법의 출현이자 신인상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새로운 시도였다. 점묘파의 대표적인 작품은 단연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ㆍ19세기 프랑스 화가)의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Sunday Afternoon on the Island of La grande Jatte)’를 꼽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랑 자트는 센강에 있는 섬으로 파리 시민들의 휴식처이다. 일요일 오후 햇빛 쏟아지는 강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그려있다. 그림을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보면 색채가 완전히 조화를 이루어 평화로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형체의 윤곽이 명확하지 않고 색채가 어른거려서 어지러울 정도다. 이 그림은 윤곽을 그리거나 면을 칠하지 않고 원색의 무수한 점을 찍어서 그림 점묘파 기법에 의한 그림이다.

점묘파의 그림은 독립적인 색감을 가진 무수히 많은 점들로 구성된다. 이 점들은 하나의 원자(atom)와 같은 존재들인데 캔버스에 조화롭게 모여서 하나의 완성된 그림을 이룬다. 마찬가지로 경쟁적 시장에서는 많은 독립적인 기업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하나의 효율적인 시장경제를 이루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점묘파 화가들의 그림 속에 그린 한 점 한 점의 존재가 바로 경쟁적 시장 안에서의 기업의 존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완전경쟁시장 안에서 기업이란 존재는 시장가격에 영향을 전혀 주지 못하는 것처럼 쇠라의 그림에서 하나의 독립된 점 자체가 그림 전체의 전반적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다시 말하자면 점묘파 화가에 있어서 하나의 색으로 표현된 점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하나의 기업에 비유될 수 있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폴 시냐크(Paul Signac)와 쇠라의 그림을 보면서 이 같은 완전경쟁 시장의 속성을 발견하게 된 것은 경제학자로서는 뜻밖의 수확이었다.

점묘파 화법의 그림을 보면 그림을 구성하는 원자와 같은 존재인 점들은 어떤 구체적인 의미를 부여받지는 못한다. 점 하나 하나는 그저 그 자체가 독립적이고 추상적인 미시적 구성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점들이 모여서 조화를 이룰 때 그림은 전체적으로 균형감이 생기고 화가가 의도한 예술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수많은 기업들이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서 시장 전체에 효율적인 균형(equilibrium)을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균형 상태는 사회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공공의 선(public good)을 이룬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사회 전체적인 균형상태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가능하게 된다고 보았다. 이것은 마치 점묘파 그림에서 수많은 점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쇠라가 왜 큰 캔버스에 그렸을까

왜 점묘파의 화가들은 무수한 점을 찍어서 그림을 그린 것일까? 그 이유를 색채의 원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림물감은 빨간색과 파란색을 섞으면 보라색이 된다. 그런데 여러 개의 물감을 섞으면 섞을수록 점차 어두운 색으로 변하게 된다. 그래서 인상파 화가들은 태양 아래 밝은 자연의 풍경을 그릴 때 색이 어둡게 되지 않게 하려고 그림물감을 되도록 섞지 않았다. 점묘파의 화법은 인상파 화가들의 이런 우려를 명쾌하게 해결해 주는 수법이 되었다. 이 방법을 쓰면 조금 떨어져서 보면 한 가지 색으로 보이는데 물감을 섞은 경우와는 달리 색의 밝기가 그대로 화면에 살아나는 것이다.

쇠라는 점묘화법의 효과는 화폭이 클수록 극대화된다는 점을 깨닫고 이 ‘일요일 오후’ 그림을 엄청난 크기의 캔버스에 담았다. 그는 여기에 그랑 자트의 공원을 다양한 색채와 빛, 그리고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을 점묘화법을 통해 꼼꼼하게 그렸고 이 풍경은 관객을 압도한다. 그는 이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2년이나 걸렸다.

이 그림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오른쪽에 보이는 검은 양산의 여인을 보면 손에는 가죽 끈에 묶여 있는 원숭이가 있는데 당시 원숭이는 매춘이나 성적 욕망을 의미했기 때문에 매춘하는 여성을 암시하는 듯하다. 또한 붉은 양산을 쓴 여인과 함께 걸어오는 하얀 드레스의 소녀는 그림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혼자 반짝거리는 듯 보이는데 그 이유는 이 꼬마 아가씨의 하얀 옷만 점묘화법으로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랑 자트’가 오르세에 없는 이유

이 그림은 쇠라가 1891년 32세의 이른 나이에 죽을 때까지 그의 수중에 남겨져 있었다. 동료 화가 폴 시냐크는 쇠라가 죽고 난 후 그의 큰 그림들이 어떻게 처분될지 우려했다. 그러나 그의 걱정은 기우였다. 이 작품은 미국의 사업가가 2만 달러에 구입해서 바로 시카고 미술관(Art Institute of Chicago)에 기증하였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프랑스는 구매가의 20배가 넘는 40만 달러라는 거금을 제시하고 재구매를 요청했지만 시카고 미술관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이 그림은 그 후 유명세를 타고 여러 매체나 잡지 등에서 패러디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심슨 가족(The Simpsons)’의 패러디 그림일 것이다. 또한 이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뮤지컬도 만들어졌는데 뮤지컬의 거장 스티븐 손하임(Steven Sondheim)이 곡을 쓴 ‘조지와 함께 한 일요일 공원(Sunday in the Park with George)’이다. 일요일 오후 한강변에 나가서 이 뮤지컬을 들어보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보면 어떨까? 하지만 버나뎃 피터스(Bernadette Peters)의 멋진 목소리로 한 곡 듣기도 전에 미세먼지 때문에 강변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병서 동덕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미국 유명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의 등장 인물로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패러디한 그림(왼쪽 사진). 1984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명작 뮤지컬 ‘조지와 함께 한 일요일 공원’(오른쪽 사진ㆍ포스터) 역시 ‘그랑 자트…’를 모티프로 했다.
미국 유명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의 등장 인물로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패러디한 그림(왼쪽 사진). 1984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명작 뮤지컬 ‘조지와 함께 한 일요일 공원’(오른쪽 사진ㆍ포스터) 역시 ‘그랑 자트…’를 모티프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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