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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는 ‘정준영 지라시’... 몹쓸 호기심이 2차 가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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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는 ‘정준영 지라시’... 몹쓸 호기심이 2차 가해로

입력
2019.03.13 17:25
수정
2019.03.14 00:1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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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여성 14명” 허위 리스트 공유… 전문가들 “피해자를 알려고 하지 말라”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을 통해 불법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수 정준영이 지난 12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영종도=홍인기 기자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을 통해 불법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수 정준영이 지난 12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영종도=홍인기 기자

‘정준영’ 밖의 ‘정준영들’이 넘쳐나고 있다. 가수 정준영(30)이 카카오톡 대화방을 통해 불법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을 공유했다면, 또 다른 정준영들은 이 동영상을 둘러싼 온갖 ‘설’과 ‘동영상’과 ‘품평’을 공유하고 있다. 명백한 2차 가해다. 여성의 성이나 신체를 상품화하고 즐기는 문화 자체는 변한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온라인 게시판, 메신저 등에선 노골적인 2차 가해가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난 12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가 불법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한 혐의로 정준영을 입건한 것이 계기다.

그 즉시 정준영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연예인 등 14명의 여성 실명이 고스란히 적혀 있는, 이른바 ‘정준영 리스트’가 지라시 형식으로 급속하게 번져나갔다. 허위 리스트에 오른 여성의 성관계 행위를 밑도 끝도 없이 제 마음대로 묘사하거나 노골적으로 품평하는 글도 쏟아졌다. ‘정준영 동영상’을 구해볼 수 없느냐는 은밀한 요구들이 오갔다. 그 덕에 ‘정준영 동영상’은 한동안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심지어 이번 사건 피해자들도 피해사실을 먼저 공개하라는 식으로 미투(Me Too) 운동까지 함께 싸잡아 조롱하는 글까지 나돌았다.

언론까지도 2차 가해를 슬쩍 거드는 모양새다. 한 종합편성채널(종편)은 정준영 피해자를 거론하면서 거의 해당 여성 연예인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신상정보를 공개하기도 했다. 일부 연예전문지 등도 비슷한 내용의 선정적 보도를 내보냈다.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사태 해결에 노력해야 할 언론이 오히려 피해자부터 먼저 찾는다는 건 민망한 일”이라고 말했다.

2차 가해가 확산되자 거론된 연예인들의 소속사는 강경대응 방침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JYP엔터테인먼트는 “악성 루머의 생산과 유포는 즉시 고소 및 고발과 형사처벌이 가능”하다며 “증거를 소집하고 있고 법무법인과 조치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경고했다. 스타캠프202도 “현재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신저 등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 특정 루머에 소속 배우가 언급되고 있으나 이는 모두 사실무근임을 분명히 말씀 드린다. 터무니없는 루머에 이름이 거론되는 것조차 매우 불쾌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성범죄 사건의 경우 “피해자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려고 하지 말라”고 입을 모은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투 운동 이후에도 성범죄 피해자의 책임론을 제기하고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여전하다”면서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방증”이라고 비판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남성들이 여성의 성을 착취하고 이를 과시해온 오랜 역사가 근절되지 못한 결과”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여기에 정보기술발전으로 허위 정보가 빠르고 광범위하게 유포된다는 점도 2차 피해를 확산시키는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다행히 자정 움직임도 생겨나고 있다. 일부 네티즌들은 온라인 게시판이나 단체대화방에서 불법 촬영물을 발견했을 때 경찰이 운영하는 홈페이지 ‘스마트 국민제보’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에 신고하라는 등의 내용을 공유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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