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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오염 정화” 명령에도 12년째 귀 막은 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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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오염 정화” 명령에도 12년째 귀 막은 부영

입력
2019.03.15 04:40
수정
2019.03.17 12:04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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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 매입 이후 10년 넘게 오염된 채 방치되고 있는 옛 진해화학 부지 울타리에 부영 로고가 보인다. 진해=전혜원 기자
부지 매입 이후 10년 넘게 오염된 채 방치되고 있는 옛 진해화학 부지 울타리에 부영 로고가 보인다. 진해=전혜원 기자

중견 건설업체 부영이 16년 전 아파트 건설용도로 매입한 옛 진해화학 부지의 토양 정화 명령을 외면, 오염된 부지가 흉물로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자체가 12년 전부터 오염 토양 정화명령을 내리고 명령 불이행에 대해 십여 차례 고발을 하는데도 부영은 주민 건강권 및 환경을 위한 지자체 감독을 외면으로 일관, 지역 사회에서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부영이 경남 창원시 장천동 옛 진해화학의 비료공장 부지를 사 들인 건 2003년 3월. 1965년 한미합작 국영기업으로 설립된 진해화학이 30년 이상 화학 비료를 생산한 공장 부지는 중금속에 심각하게 오염될 수밖에 없었다. 2006년 토양오염실태조사에서 납과 불소 등이 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됐으며, 2007년 경상대 농업생명과학연구원에서 수행한 토양정밀조사에서는 지표로부터 지하 3m 구간까지 불소와 니켈, 카드뮴, 납, 아연 및 석유계총탄화수소에 의해 오염된 것으로 밝혀졌다.

부영 진해화학 부지 위치. 그래픽=신동준 기자
부영 진해화학 부지 위치. 그래픽=신동준 기자

11일 찾은 진해화학 부지는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창원시 진해구 도심에서 약 10분을 달려 도착한 해안가에 부영 로고가 선명한 51만4,718㎡(약 15만평) 부지가 나타났다. 부지를 둘러싼 철제 울타리는 16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듯 녹슬거나 닳아 있었다. 울타리 사이로 흰색 폐석고들이 작은 언덕을 이루고 쌓여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는데 일부는 천막에 덮여있었으나 나머지는 맨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철조망 사이로 진해화학부지 내에 쌓인 토양과 폐석고의 모습이 보인다. 진해=전혜원 기자
철조망 사이로 진해화학부지 내에 쌓인 토양과 폐석고의 모습이 보인다. 진해=전혜원 기자

창원시 등에 따르면 부영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오염 정화를 외면한 채 건설부지를 장기간 흉물로 방치하고 있다. 2015년 토양정밀조사에서 드러난 오염 토지 면적은 17만1,077㎡에 이르지만 정화작업은 이제 절반을 갓 넘은 상황이다. 창원시가 2007년 10월 최초로 오염 토양 정화명령을 내리며 부영 측에 준 말미는 2년이었으나, 부영이 기한을 지키지 못해 현재 6차 정화명령이 내려진 상태다. 그간 부영이 정화명령 불이행으로 창원시에 고발당한 횟수만 5차례다.

부영이 오염 정화를 거부하면서 광활한 부지는 그야말로 황폐화하고 있다. 특히 인산비료 제작 공정의 부산물인 황산칼슘이 ‘폐석고’로 덩어리째 방치되고 있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부영이 인수받을 당시 부지 곳곳에 쌓이거나 묻혀 있던 폐석고는 모두 139만 톤. 지자체가 2011년 4월부터 1년 단위로 모두 8차례나 조치 명령을 내렸지만 여전히 34만톤 가량이 부지 내에 남아있다. 부영 측은 해외 수출이나 국내 매립 등의 방법으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현재로서는 역부족이다. 인근 통영시에 조성될 덕포산업단지에 폐석고를 매립하는 방안이 2016년 추진되기도 했으나 지역 사회 반발로 중단됐으며 필리핀 수출 방안도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부영이 아파트 건설부지를 방치하면서 악취와 침출수 등 환경오염은 심각한 지역사회 문제가 됐다. 창원시에 따르면 비가 오면 폐석고에서 침출수가 주변으로 흘러나온다는 불만부터 먼지나 냄새 등 각종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 주민 김모(78)씨는 “먼지가 계속 날아와서 창문도 마음대로 못 열고 불편한 게 이만저만 아니다”며 “비료공장이 철수하고도 수십년이 지났는데도 땅을 정화하지 않고 계속 묵혀놓아서 지역주민들에게는 불편만 안기고 있다”며 비판했다. 두 아이를 키운다는 최모(41)씨는 “폐기물들이 부지 안에 있다고 들었는데, 한 번은 플라스틱 타는 냄새가 부지 쪽에서 올라와 머리가 아픈 적이 있다”며 “미세먼지 문제까지 겹쳐서 불만이 크다”고 말했다.

10년 넘게 오염된 채 방치되고 있는 옛 진해화학 부지 전경. 진해=전혜원 기자
10년 넘게 오염된 채 방치되고 있는 옛 진해화학 부지 전경. 진해=전혜원 기자

그런데도 부영은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오염을 정화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부영 관계자는 “오염물질 처리를 계속하고 있으며 살수차와 방진망, 집수정 등을 동원해 방진과 침출수를 막고 있다”면서 “폐석고도 국내 시멘트 회사나 해외 수출 등의 경로를 통해 올해 10월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역 사회의 시선은 싸늘하기 그지없다. 김우겸 창원시의원은 “최근까지 진해화학 부지 내 정화작업이 멈췄다며 지속적인 감독을 요구하는 민원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며 “부영 측이 침체된 지역 부동산 경기를 이유로 시간을 끌고 있다는 뒷말도 들려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10여 년의 과정으로 미뤄 볼 때 부영을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부영이 2016년 해당 부지에 기업형 민간임대주택인 ‘뉴스테이’를 짓겠다며 경상남도에 제안서를 제출했다가 정화 작업 미완 등을 이유로 퇴짜를 맞았던 전례도 부영을 향한 불신의 요인이 되고 있다.

창원=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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