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출판하다 보면 가끔 사인할 일이 생기곤 한다. 그런데 이름에 ‘제(재)’자가 들어가면 ‘ㅓㅣ’인가요? ‘ㅏㅣ’인가요? 라고 되묻게 된다. 제와 재는 재차 물어야 할 만큼 현재 우리 발음에서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발음의 유사문제가 유교의 ‘제(祭)’와 불교의 ‘재(齋)’에도 존재한다.

유교의 제가 제사를 나타내는 글자라면, 불교의 재는 목욕재계와 같은 재계의 의미인 인도말 upoṣadha(포살)의 번역어 중 하나이다. 즉 두 글자는 한글 발음만 같을 뿐, 기원이나 내용적으로는 많은 차이가 존재하는 셈이다.

먼저 제라는 글자를 쪼개 보면, 위쪽에는 ‘고기 육(肉)’자가 부수로 쓰일 때 사용되는 ‘육달 월(月)’과 ‘또 우(又)’가 결합해 있고 아래쪽에 ‘보일 시(示)’가 위치한다(祭=月+又+示). 즉 고기를 진설하고 또 진설한 푸짐한 제상을 돌아가신 조상신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의미의 글자이다.

동아시아는 전통적으로 농경문화가 주류이다 보니, 식문화에서 고기에 대한 선호가 크게 존재한다. 해서 잔치나 제상에는 고기가 빠지면 안 되고, 고기를 대접해야 존중받은 것으로 인식되곤 한다. 또 우리 표현에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된다’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의미다. 그런데 여기에서 ‘회자’는 사람의 입맛에 가장 좋은 음식이 ‘육회(膾)’와 ‘구운 산적(炙)’이라는 뜻에서 차용된 것이다.

유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다른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이 세계 속에 존재하다가 흩어진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제사가 고조대까지만 유지되는 4대 봉사로 끝나는 것은 이를 반영한 것인데, 이를 천위(遷位)라고 한다. 또 영혼은 이러한 유지 기간에는 우리 곁에 있으면서 주기적으로 음식을 공급받는 구조를 취한다. 예전 집 안의 사당에 신위(위패)가 모셔지고, 주기적으로 제사가 이루어지는 것은 모두 이러한 관점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불교는 윤회론을 믿기 때문에 죽은 영혼은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로 이동한다. 즉 원칙적으로는 제사의 필연성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에는 제사는 없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재’만 존재한다. 즉 천도재나 49재 또는 조상의 천도를 발원하는 우란분재 역시 제가 아닌 재인 것이다. 또 국사책에 나오는 불교의례인 팔관재나 붓다의 출가와 깨달음을 기념하는 출가재일과 성도재일 역시 모두 재일 뿐이다.

흔히 천도재나 49재 및 우란분재를 돌아가신 영혼의 극락왕생처럼 천도를 기원하는 의식이라는 점에서, 제사와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불교의 재는 돌아가신 분에 대한 음식 공급이 주가 아니라, 붓다의 가르침을 통해 영혼을 맑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영혼이 맑아지면 천도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방식인 셈이다. 즉 절대자에 의한 구원이 아니라, 인과율에 따라 스스로가 구원되는 방식으로 이는 불교의 가장 큰 특징이다.

물론 불교에 제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찰에서도 기제사 등을 지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불교적인 것이 아니라, 유교적인 기제사를 사찰에 의탁해서 발생하는 대행의례일 뿐이다. 즉 사찰의 기제사는 불교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또 요즘은 제와 재의 발음이 완전히 동일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는 된소리가 가미된 ‘좨’로 발음됐다. 그래서 제사의 주관자를 제주가 아닌 좨주로 부르곤 했다. 글자가 다른데 같은 발음을 사용한다는 것은 문자의 발생에서는 있을 수 없다. 즉 이는 후대의 변화에 따른 결과이며, 이로 인해 오늘날과 같은 혼란이 초래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교와 불교의 문화 배경과 종교 기원이 다른 것처럼, 제와 재 역시 완전히 다른 가치를 내포하는 측면일 뿐이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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