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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규 “‘우상’ 시나리오 ‘초록물고기’만큼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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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규 “‘우상’ 시나리오 ‘초록물고기’만큼 강렬했다”

입력
2019.03.13 04:4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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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한석규는 신인 감독과의 작업을 즐긴다. ‘은행나무 침대’의 강제규, ‘초록물고기’의 이창동, ‘8월의 크리스마스’의 허진호, ‘넘버3’의 송능한, ‘접속’의 장윤현, ‘프리즌’의 나현 등이 모두 신인 감독이었다. 한석규는 “모든 것을 다 쏟아 붓는 신인 감독의 열정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CGV아트하우스 제공
배우 한석규는 신인 감독과의 작업을 즐긴다. ‘은행나무 침대’의 강제규, ‘초록물고기’의 이창동, ‘8월의 크리스마스’의 허진호, ‘넘버3’의 송능한, ‘접속’의 장윤현, ‘프리즌’의 나현 등이 모두 신인 감독이었다. 한석규는 “모든 것을 다 쏟아 붓는 신인 감독의 열정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CGV아트하우스 제공

“영화가 좀 어렵지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각 인물의 입장에서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특유의 그윽하고 느릿한 목소리에 강한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영화 ‘우상’ 개봉(20일)을 앞두고 마주한 자리. 배우 한석규(55)는 첫 질문이 나오기도 전에 ‘우상’이 얼마나 치밀하게 짜인 영화인지 20분가량 열띤 이야기를 쏟아냈다.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는 게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연기도 마찬가지고요. ‘우상’ 시나리오를 보고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되겠구나 예상했습니다. 이야기가 거대하면서도 아주 촘촘해요. 스쳐 가는 줄 알았던 인물조차 허투루 쓰이지 않고 진실을 완성하는 퍼즐 역할을 합니다. 각 시퀀스들이 얼마나 유기적이냐 하면요….” 달변이 아닌데도 그의 풍부한 표정 변화로 2시간 23분짜리 이야기가 단숨에 파노라마로 그려졌다.

‘우상’에서 한석규는 청렴하고 신망받는 도의원 구명회를 연기한다. 차기 도지사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구명회는 교통사고를 내고 이를 은폐한 아들로 인해 정치 인생의 위기를 맞는다. 그는 시신유기를 단순 뺑소니로 위장하고 아들을 자수시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지만, 피해자 아버지 유중식(설경구)이 끈질기게 진실을 추적해 오고 사건 현장에서 사라진 피해자 아내 최련화(천우희)까지 나타나자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 영화 ‘한공주’(2014)로 국내외에서 주목받은 이수진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한석규는 “영화를 보고 이수진 감독에게 전화해 빨리 세 번째 영화를 만들라고 격려했다”며 “이 감독은 영화관이 뚜렷하게 정립된 인재”라고 말했다.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믿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아들의 교통사고 은폐로 정치 인생 위기를 맞은 구명회는 명예 회복을 위해 발버둥친다. CGV아트하우스 제공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믿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아들의 교통사고 은폐로 정치 인생 위기를 맞은 구명회는 명예 회복을 위해 발버둥친다. CGV아트하우스 제공

시나리오를 깐깐하게 고르기로 유명한 그가 이렇게 칭찬을 아끼지 않은 이유도 시나리오에 있었다. 한석규는 “관객에게 시나리오를 먼저 읽어 보게 한 뒤에 영화를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며 “이런 감흥은 ‘초록물고기’(1997) 이후 처음인 것 같다”고 했다. “시나리오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을 내 몸뚱아리를 다 태워서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열망을 느꼈어요. 구명회가 아주 비열한 인물이라는 것도 매력적이었고요. 구명회는 살아남기 위해 끝까지 비겁한 선택을 하고 폭주를 멈추지 않아요. 그냥 놔두면 도지사가 아니라 메시아가 되려 했을지도 모르죠. 어쩌면 저에게도,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구명회와 유중식, 최련화는 권력, 부성, 생존이라는 자신만의 ‘우상’을 향해 돌진하다 격렬하게 충돌하고 파국을 맞는다. 우상시되는 모든 가치가 결국은 ‘허상’일 뿐이라는 주제의식이 선명하다. 한석규는 “어떤 장르이든 영화는 시대와 인간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에게 이 영화는 충무로에 건네는 일종의 ‘제언’이기도 하다. “영화는 모든 예술 분야 중에 역사가 가장 짧아요. 한국 영화도 고작 100년밖에 되지 않았죠. 젊은 매체이니 담아낼 수 있는 이야기도 무궁무진합니다. 영화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할 건지, 연극이나 TV드라마가 아닌 영화로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더 고민해야겠죠. 한국에 더욱더 새로운 영화가 많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석규는 2011년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 이어 하반기 개봉하는 영화 ‘천문’에서 또 한 번 세종대왕을 연기한다. CGV아트하우스 제공
한석규는 2011년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 이어 하반기 개봉하는 영화 ‘천문’에서 또 한 번 세종대왕을 연기한다. CGV아트하우스 제공

한석규는 1990년대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중심에 있었다. ‘접속’과 ‘넘버3’(1997), ‘8월의 크리스마스’(1998) ‘쉬리’(1999) 등 한국 영화사에 빠질 수 없는 작품들이 그의 명연기로 빚어졌다. 최근에는 SBS ‘뿌리깊은 나무’(2011)와 ‘낭만닥터 김사부’(1996) 같은 드라마로 대중과 더 친숙해졌다. 하반기에는 ‘쉬리’ 이후 20년 만에 최민식과 호흡을 맞춘 영화 ‘천문’을 내놓는다. 1991년 MBC 공채 탤런트로 시작한 배우 인생은 어느새 30년에 가까워졌다. “연기는 액션이 아닌 리액션”이라며 자신의 연기관을 들려주는 한석규의 모습이 꼭 도인, 철학자 같았다.

“젊은 시절엔 마음먹은 대로 다 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게 있더군요. 그제야 알게 됐죠. 연기도, 인생도, 결국 액션이 아닌 리액션이라는 것을요. 평생 무언가에 ‘반응’하면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어요. 하다못해 연기자가 되기를 꿈꾼 것도 열여섯 살 때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보고 느낀 감흥에 ‘반응’한 것이었더군요.”

한석규가 말하는 ‘반응’을 다른 단어로 표현하면 “진심, 정성, 태도”다. ‘우상’에서 진심과 정성과 태도를 느낀 그는 이런 ‘반응’으로 화답했다. “제가 시나리오를 무척 열심히 보는 사람이란 건 이미 알고들 계실 겁니다. 시나리오 보지 않고 출연을 약속한 적이 지금껏 한 번도 없어요. 하지만 이수진 감독에겐 얘기했습니다. 당신의 세 번째 영화에도 출연하겠다고, 그땐 시나리오도 안 볼 거라고 말입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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