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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공간 사람] 문턱 대신 단, 방문 대신 켜… 언제라도 아이와 눈 맞추는 ‘꿈을 담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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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공간 사람] 문턱 대신 단, 방문 대신 켜… 언제라도 아이와 눈 맞추는 ‘꿈을 담은 집’

입력
2019.03.13 04:4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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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은 ‘사고 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집 공간 사람’ 기획을 수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세종 아름동 사선으로 잘린 길 모퉁이에 들어선 ‘꿈담집’ 전경. 벽돌을 촘촘히 쌓아 바깥에서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것을 차단했다. 입구 역시 길가에서 한 발짝 들어가 있다. ©진효숙 건축사진작가
세종 아름동 사선으로 잘린 길 모퉁이에 들어선 ‘꿈담집’ 전경. 벽돌을 촘촘히 쌓아 바깥에서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것을 차단했다. 입구 역시 길가에서 한 발짝 들어가 있다. ©진효숙 건축사진작가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려고.’ 어린 아이가 있는 부부들은 이런 이유로 누구나 한번쯤 아파트 탈출을 꿈꾼다. 그러나 현실을 따져보면 만만치 않다. 직장에 다니면서 아이를 키우려면 회사 근처(도심)에 살아야 하고,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학교에 보내려면 8학군(서울 강남)과 가까워야 하고, 아이를 안전하게 키우려면 주거관리시설이 잘 돼 있는 집(아파트)이어야 한다. 주택을 꿈꾸다가도 아파트에 눌러 앉고 마는 이유다. 현실은 현실이라 해도, 네모 반듯한 콘크리트에 갇혀 사는 아이에게 미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발소리를 크게 내는 아이를 야단 치다 보면 ‘이게 집이냐’ 싶다.

1월 완공된 세종시 아름동의 ‘꿈담집(꿈을 담은 집)’ 건축주 부부도 이상(주택)과 현실(아파트) 사이를 수도 없이 줄타기 했다. 3년 전 남편의 직장이 세종으로 이전한 것을 계기로 집 짓기의 꿈을 실현했다. 남편이 공무원이라 익명으로 인터뷰에 응한 부부는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 옆에 들어선 꿈담집. 건축주 부부는 “ ‘막상 나와보니 어떻게 저곳에 살았을까’싶다”며 “집짓기는 수도꼭지 하나까지도 직접 고르는 재미가 크다”고 말했다. ©진효숙 건축사진작가
대규모 아파트 단지 옆에 들어선 꿈담집. 건축주 부부는 “ ‘막상 나와보니 어떻게 저곳에 살았을까’싶다”며 “집짓기는 수도꼭지 하나까지도 직접 고르는 재미가 크다”고 말했다. ©진효숙 건축사진작가

 아파트에서 캥거루 주택으로 

197.50㎡(연면적ㆍ60평)의 꿈담집에는 맞벌이를 하는 40대 초반 부부와 10세와 11세인 두 아들, 그리고 60대인 할머니가 함께 산다. 3대가 함께 사는 ‘캥거루 주택’이다. 할머니는 발달 장애가 있는 큰 손주를 돌보기 위해 10년 전부터 아들 부부와 함께 지낸다. 집을 짓기 전까지, 다섯 식구는 서울, 경기 과천시, 세종의 99㎡(30평) 짜리 아파트를 옮겨 다녔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부부는 주택을 꿈꿨다. 남편은 “아파트에서는 주변의 시선이나 층간 소음이 신경 쓰여 불편했다”며 “아이들이 클수록 땅을 밟고 살고 싶다는 생각도 커졌다”고 말했다. 의사인 아내는 “아파트는 아침에 나오고 밤에 들어와 잠만 자는 곳이었다”며 “똑같은 구조의 아파트에서 일상을 반복하다 문득 ‘나는 과연 집에 살고 있나’ 하는 회의감이 밀려왔다”고 말했다.

아파트에 살면서 부부는 늘 미안해 했다. 방이 없어 거실에서 지낸 첫째 아이에게도, 한창 뛰어 놀 나이인 둘째에게도, 집이 좁아 종일 돌봄 노동에서 벗어나기 힘든 어머니에게도. 그래서 용기를 냈다.

남편이 세종으로 옮기면서 땅을 살 기회를 만났다. 부부의 직장, 학교, 마트, 병원 등이 모두 가까운 택지개발부지를 샀다. 3년 전엔 땅값이 그다지 비싸지 않았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6억원)이면 세종에서 땅을 사고 집을 짓는 비용을 충당할 수 있었다. 땅을 구입한 뒤 부부의 로망을 실현해 줄 건축가를 섭외했다. 부부는 “아이들이 잘 지낼 수 있는 집이면서 가족들의 독립 공간도 있는 집을 짓고 싶다”고 건축가에게 부탁했다. 설계를 맡은 김창균 소장(유타건축)은 “발달이 늦은 첫째 아이의 안전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며 “손주들을 돌보는 할머니와 한창 활동이 많은 나이인 둘째,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한 부부까지, 가족 구성원을 각각 배려한 공간을 만드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꿈담집 1층 입구에서 바라본 주방과 거실. 30㎝가량 단이 낮아지는 거실은 발달 장애가 있는 첫째의 운동신경을 자극해주면서 안락하고 편안한 공간이 됐다. ©진효숙 건축사진작가
꿈담집 1층 입구에서 바라본 주방과 거실. 30㎝가량 단이 낮아지는 거실은 발달 장애가 있는 첫째의 운동신경을 자극해주면서 안락하고 편안한 공간이 됐다. ©진효숙 건축사진작가
1꿈담집 2층에도 단이 마련돼 있다. 단 아래는 가족실로 쓰고, 단 위로는 각 방을 연결해주는 통로와 통로 서재가 있다. 책꽂이와 단이 공간을 구획하는 역할을 한다. ©진효숙 건축사진작가
1꿈담집 2층에도 단이 마련돼 있다. 단 아래는 가족실로 쓰고, 단 위로는 각 방을 연결해주는 통로와 통로 서재가 있다. 책꽂이와 단이 공간을 구획하는 역할을 한다. ©진효숙 건축사진작가

 문턱 대신 단, 방문 대신 켜 

꿈담집은 보통 집에 비해 ‘단’과 ‘켜’가 많다. 계단처럼 바닥 높이 차이를 두는 단과 공간을 칸칸이 나누는 켜가 문턱과 방문을 대신해 공간을 분할한다. 1층은 움직임이 불편한 첫째아이와 할머니가 주로 지내는 공간이다. 거실은 다른 공간의 바닥보다 30㎝가량 낮게 설계했다. 아이가 거실을 드나들 때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운동을 하도록 유도해 운동 신경을 자극하는 게 좋겠다는 김 소장의 배려였다. 이사한 이후 실제로 아이의 활동량이 늘어났다. 김 소장은 “특수학교 사례를 찾아 보니, 적당한 단 차이가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만든 거실은 확 트인 거실보다 안락하고 포근한 느낌이라 아이의 정서 안정에도 도움을 줬다. 주방은 거실에서 노는 아이와 얼굴을 마주보고 일할 수 있는 ‘대면형’으로 만들었다. 아이와 눈빛을 주고 받기 위해서다.

2층에 있는 둘째 아이 방의 한쪽 벽은 실내 암벽 등반장처럼 꾸몄다. 암벽을 올라 가면 다락으로 연결된다. 다락엔 그물 다리를 설치했다. 밤이면 다락 창문으로 달과 별이 보인다.둘째 방과 부부 방을 연결하는 통로엔 서재와 가족실이 있다. 문 대신 책꽂이와 창문으로 구획한 서재는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천창에선 사선으로 빛이 들고, 창문 밖으론 나무가 보이는 서재는 엄숙하기보다는 편안한 북카페 같다. 부부가 생각지도 못한 공간이다.

김 소장은 “방문을 닫는 독립적인 공간들을 만들면 주택이 아파트와 똑같아져 버린다”며 “켜를 잘 쓴 건축물은 단조롭지 않고 입체적인 움직임을 준다”고 했다. 또 “언제라도 가족들이 눈 맞추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 정서적으로도 풍요로운 집이 된다”고 덧붙였다.

꿈담집 2층과 연결되는 다락은 오롯이 둘째의 공간이다. 꿈담집에 온 후로 아이는 다락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꿈담집 2층과 연결되는 다락은 오롯이 둘째의 공간이다. 꿈담집에 온 후로 아이는 다락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부부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는 꿈담집의 별채. 외부의 시선을 막기 위해 마당으로 통 창을 냈다. ©진효숙 건축사진작가
부부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는 꿈담집의 별채. 외부의 시선을 막기 위해 마당으로 통 창을 냈다. ©진효숙 건축사진작가

 꿈꾸는 가족의 꿈을 담은 집 

본채가 가족을 위한 공간이라면 10㎡(3평) 크기의 별채는 부부를 위한 사랑방 같은 곳이다. 마당이 보이는 한 면에 통 창을 내고 층고를 본채와 같은 6m로 맞춰 답답한 느낌을 없앴다. 길가에 접한 벽면엔 창문을 내지 않아 영화 스크린으로 활용한다. 부부는 별채에서 영화를 보고, 담소를 나누고, 친구들을 초대해 밤새도록 시간을 보낸다. 남편은 “집 짓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제일 많이 드는 공간”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꿈담집 내부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지만, 바깥과는 차단된다.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적고 벽돌을 촘촘히 쌓아 올렸다. 벽면이 북향이라 햇빛을 들이는 데도 문제가 없다. 담장은 따로 쌓지 않았고, 울타리로 낮은 대문을 만들었다. 적고 벽돌 외벽이 담장 역할을 겸한다. 외벽 앞엔 조경을 좋아하는 남편이 자작나무와 블루엔젤을 심었다. 주택으로 이사한 뒤 아이들 표정이 달라진 것은 부부가 가장 기뻐하는 대목이다. 부부는 “예민한 첫째는 활동 반경이 넓어졌고, 둘째는 시도 때도 없이 친구들을 초대한다”고 했다. 이사온 지 두 달 만에 텃밭을 마련한 할머니도 봄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부부는 ‘꿈담집’이라는 문패를 단 사연을 소개했다. “타일과 벽지부터 수도꼭지 하나까지 손이 안 간 데가 없어요. 집 지으면 10년은 늙는다고 하는 얘기가 정말이더라고요. 그래도 하나하나 고르는 재미가 컸어요. 그렇게 완성한 집이라 ‘우리에게 꼭 맞춘 집’, ‘우리만의 집’인 것 같아 더욱 특별해요. 꿈은 꾸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이룰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아이들도 집에 꿈을 담으라는 뜻에서 ‘꿈담집’이라는 문패를 달았습니다.”

세종=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아름동 단면도. 유타건축 제공
아름동 단면도. 유타건축 제공
아름동 1층 평면도. 유타건축 제공
아름동 1층 평면도. 유타건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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