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대의 설립자 존 하버드의 동상.

기부금과 예산 등 몇몇 주요 기준으론 세계 최고 대학으로 꼽히는 하버드대가 1939년 3월 13일 하버드 칼리지란 이름을 얻었다. 1936년 미국 매사추세츠 식민지 일반의회(the Great and General Court of the Massachusetts Bay Colony)가 의원 표결로 대학 설립을 결정했지만, 39년 당시 대학은 교사(校舍)도 교수도 학생도 없고, 심지어 이름도 없어 ‘유명무실’하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영국 본토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에 빗대 편의상 뉴 칼리지, 또는 뉴타운 칼리지라 불렸고 그렇게나마 불리는 경우도 그리 많지 않았을 테다.

식민지 의회가 저 이름을 붙인 까닭은 한 해 전 숨진 케임브리지 찰스타운 제일교회 목사 존 하버드(John Harvard, 1607~1638)의 ‘관대한 기부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하버드는 재산 절반(780파운드)과 장서 329권을 이름조차 없던 뉴 칼리지에 기부했다. 그가 원한 건 성경을 읽고 가르칠 수 있는 성직자를 양성하는 거였다.

하버드는 영국 서리주 서더크(Southwark)의 한 도축업자 집안에서 태어나, 일가 구성원 중에선 유일하게 이매뉴얼 칼리지를 졸업한 ‘가문의 대들보’였다. 청교도 지도자를 양성하는 최고 교육기관 이매뉴얼 칼리지의 당시 졸업생들은 미국으로 건너가는 걸 소명처럼 여겼고, 1635년 석사학위를 받은 하버드 역시 연전 결혼한 아내 앤(1614~1655)와 함께 37년 대서양을 건너 뉴잉글랜드 찰스타운에 정착했다. 당시 찰스타운 주민은 150여 가구가 다였고, 젊은 목사는 아버지처럼 소를 키워 생계를 유지했다. 그리고 얼마 뒤 폐결핵으로 숨졌다.

원년 하버드대 캠퍼스인 ‘하버드 야드(yard)’에 1884년 세워진 그의 동상은 ‘세 가지 거짓말’로 유명한 관광상품이 됐다. 동상 좌대의 명판 ‘John Harvard, Founder, 1638’이 거짓이라는 건데, 우선 동상 형상이 그의 얼굴이 아니고, 그가 설립자가 아니라 기부자이며, 설립연도도 1636년이라는 것이다.

처음 지적은 옳지만, 나머지 둘은 정황상 거짓이라 말하기 힘들다. 그래서 그의 동상은 ‘그의 발을 만지면 하버드대에 입학한다’는 미신을 즐기는 관광객들의 손길에 발을 맡긴 채 지금도 건재하다. 그리고 동상의 거짓은 ‘위인’에 대한 알레고리라 할 수도 있겠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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