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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왔다는 것 알려지는 순간 무시… 내 편 없어” 외로움 호소

입력
2019.03.12 04:40
수정
2019.03.12 14:3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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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마이너리티]<25> 탈북 학생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지난 4일 만난 탈북 학생 김아진(사진∙가명)양은 “대학 나와야 좋을 것 같긴 한데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탈북 과정에서 ‘학습 공백’을 겪은 많은 탈북 학생들이 한국에 와서도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송옥진 기자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지난 4일 만난 탈북 학생 김아진(사진∙가명)양은 “대학 나와야 좋을 것 같긴 한데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탈북 과정에서 ‘학습 공백’을 겪은 많은 탈북 학생들이 한국에 와서도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송옥진 기자

“우리 세금으로 먹고 살면서.”

한 아이의 말이 윤미진(18ㆍ가명)양의 뒤통수에 꽂혔다. 6년 전 윤양이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친구들은 그에게 이런 말들을 퍼붓고는 했다. 그 전에는 학교 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워낙 어릴 때(10세) 한국에 온 데다 말투도 다 고쳐 겉으로는 한국 아이들과 구분도 안 됐다. 하지만 우연찮게 학교에 북한 사람이라는 게 알려진 뒤로 아이들은 윤양을 콕 집어 놀리고 괴롭혔다. 수시로 ‘정말 북한에서 왔냐’ ‘북한으로 돌아가라’라는 말들이 어린 윤양에게 칼날처럼 날아들었다. 윤양은 “제가 감추고 싶었던 비밀인데 애들이 들쑤시려고 하니까 상처가 됐다”며 “장난으로 던진 돌에 맞아 죽는 개구리 같았다”고 당시의 심경을 토로했다.

‘먼저 온 미래.’ 남한에 온 탈북 학생들을 이르는 말이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이 세 차례나 열리는 등 통일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탈북 학생들이 그리는 통일 한반도의 미래는 정작 밝지만은 않다. 어둡기까지 하다. 현재 국내 탈북 학생 수는 2,538명(2018년 4월 기준)이다. 이들은 윤양처럼 학교에서 일상적인 차별을 받았고, 낯선 사회문화적 환경에 적응하느라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았다. 기초학력이 낮은 탓에 특히 수학, 영어 과목에서 수업 내용을 알아 듣기 힘든 것도 학교 적응을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였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환대 받지 못하는 자신들의 현실을 볼 때, 통일된 미래는 극심한 갈등 사회가 될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저작권 한국일보]연도별 국내 탈북 학생 현황_김경진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연도별 국내 탈북 학생 현황_김경진 기자

◇기초학력 부족으로 인한 학업부진

탈북 학생들이 한국 학교에 진학하면 가장 먼저 학습 수준 차이에 좌절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북한에 살 때 학교를 다니지 않았던 이들이 대다수이고, 학교를 다녔다 하더라도 북한과 한국은 교육과정이 완전히 다른 탓이다. 또 한국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제3국에서 짧으면 6개월 길면 수년간 체류하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 학습 공백이 발생하기도 한다.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의 ‘2018년 탈북청소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북한 거주 시 학교에 다닌 적이 없다고 밝힌 탈북 학생은 23.3%나 됐다. 또 72.1%의 탈북 학생은 제3국 체류 시 재학 경험이 없다고 답했다. 이를 감안해 탈북 학생들은 대개 같은 나이 학생들보다 한두 학년씩 낮은 학년으로 편입되지만 그렇다 해도 학습 진도를 따라가는 일은 보통 벅찬 게 아니다. 수십년간 탈북 학생들의 멘토링을 해온 한상훈 전 구로중 교사는 “북한과 배우는 과목 자체도 다르고 학교를 꾸준히 다닌 학생들도 많지 않다 보니 학습 이해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북한 아이들도 학원에 등록해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일반고등학교 2학년 김아진(17ㆍ가명)양도 북한에 있을 때 학교를 다녔던 기억이 손에 꼽을 정도다. 양강도가 고향인 김양은 “북한에 있을 때 워낙 작은 마을에 살았고 걸어서 한 시간 거리에 학교가 있어서 학교는 가고 싶을 때 몇 번씩 간 게 전부”라고 말했다. 그는 “국어는 그래도 한두 글자 다른 것 빼고는 괜찮은데 수학 기호는 아예 본 적이 없었다”며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은 먹었는데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학습 부진으로 인한 어려움은 대학까지 이어진다. 탈북 학생들은 정원 외 특례로 비교적 대학 입학의 문이 넓다. 하지만 졸업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 교대를 졸업해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 중인 북한 출신 이수현(25ㆍ가명)씨는 “고려대나 서강대, 한국외대 등 이런 상위권 대학에서 탈북 학생들을 많이 뽑는데 별 생각 없이 들어갔다가 여기가 내가 낄 자리가 못 된다고 깨닫고 그만두는 학생들이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탈북 학생들이 정치외교학과나 경영학과와 같이 학과 이름만 보고 진학했을 경우 방황이 더 심하다”며 “탈북 학생들에게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자기 적성과 진로를 안내하는 직업 교육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에서 북한 출신 대학생들에게 학비를 지원하기는 하지만 평균 학점 C+ 이하를 2학기 연속으로 받으면 장학금 지원을 끊는 등 학교마다 성적 제한이 있다 보니 학점 미달로 학비 지원이 중단되면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들이 많다. 남북하나재단에 따르면 탈북 대학생의 중도탈락률(제적 포함)은 약 10%로 일반 대학생의 두 배를 웃돈다.

특히 탈북 학생 중에서도 북한 출생이 아닌 제3국 출생 학생들은 한국어 자체에 서툰 경우가 많다 보니 학업에 더 어려움을 겪는다. 요즘 탈북 학생의 10명 중 6명은 고향이 북한이 아닌 중국과 같은 제3국이다. 탈북 여성이 중국에서 체류하는 동안 경제적인 이유로 한족이나 조선족 남편과 결혼해서 낳은 아이들로, 북한 어머니와 중국인 아버지를 두고 있는 사례가 가장 많다. 2011년 전체 탈북 학생의 36.2%였던 제3국 출생 탈북 학생은 2015년 전체의 50.5%(1,249명)를 차지하며 절반을 넘어섰다. 제3국 출생은 지난해 기준 전체 60.3%로 탈북 학생의 주류가 됐다.

정부는 이들도 탈북 학생의 범주에 포함해 여러 교육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북한 출생에 비해 대학 특례 입학이나 학비 지원과 같은 혜택에서는 배제된다. 정부는 대학 입학과 관련된 지원의 경우 국내 학생들과의 형평성 논란이 일 수 있는 만큼 제3국 출생들로까지 범위를 확대하는데 신중한 입장이다. 신효숙 남북하나재단 교육개발부 부장은 “제3국 출생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며 “제3국 출생도 북한 출생과 같이 부모가 탈북의 어려움을 겪었다는 측면에서 제도적 지원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유은혜(오른쪽)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1월 경기 안성에 위치한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한겨레중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졸업생과 이야기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유은혜(오른쪽)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1월 경기 안성에 위치한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한겨레중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졸업생과 이야기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차별에 멍드는 아이들

한국 사회에 첫 발을 디딘 탈북 학생들은 심한 외로움과 고립감을 토로한다. 10년 전 탈북해 이제 대학생이 된 김혜은(22ㆍ가명)씨도 “내 편이 없다는 느낌이었다”며 처음 한국에 왔을 때를 회상했다. “북한에서는 옆집에서 무슨 싸움을 하면 거기 다 몰려 가서 싸우지 말라고 말릴 정도로 친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여기는 저를 아는 사람도 제가 아는 사람도 없고 가족과 함께 왔지만 엄마도 여기 와서 새로 시작하는 거니까 외로운 느낌이 커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동급생보다 두 살이 많다 보니, 친구들보다 사춘기도 빨리 왔고요.”

탈북 과정에서 가족들과 헤어졌거나 홀로 탈북한 무연고 학생들은 외로움을 배로 느낀다. 윤미진양은 “저 역시 탈북할 때 일이 틀어져 엄마랑 2년 넘게 떨어져 혼자 살게 되다 보니 애정결핍이 심했다”고 떠올렸다.

특히 친구를 중요하게 여기는 청소년기에 인간 관계에서 받은 상처는 후유증이 오래간다. 박성진(15ㆍ가명)군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북한에서 온 것이 알려지면서 심한 따돌림을 당했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아직도 트라우마에 시달려 사람을 사귀는데 소극적으로 변했다. 박군은 “북한은 못 사는 나라, 가난한 나라라는 인식 때문에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무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학생들에게도 (북한 출신이라는 것을) 들키기 전까지는 말하지 말라고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탈북 청소년들의 85.3%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북한 출신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수현씨는 “이대로라면 통일이 되도 사회 갈등이 심각할 것”이라며 “내가 상상하는 통일은 회색 빛에 가깝다”고 말했다.

교육당국에서는 탈북 학생들의 빠른 적응을 위해 이들의 일반 학교 진학, 즉 ‘통합 교육’을 장려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기초학력 부족이나 교우 관계 등의 문제 때문에 그리 간단히 결정할 문제라는 목소리가 높다. 탈북 학생들을 위한 위탁교육기관인 부산 장대현학교 임창호 교장은 “제3국 출생, 북한 출생, 북한에서의 경제적 수준 등 아이들마다 배경이 천차만별”이라며 “잘 교육시켜서 일반 학교로 돌려보내라고 하지만 일반 학교에서 이런 학생들을 한국어 교육부터 하나하나 신경 쓰는 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한겨레중고등학교에도 1년에 약 20명의 학생들이 부적응을 이유로 일반 학교에서 전학을 온다. 심하면 학교를 그만두기도 한다. 지난해 탈북 학생 59명이 학교 부적응, 이민 등 출국, 진로 변경 등의 사유로 학업을 중단했다고 교육부는 설명했다.

임창호 교장은 “탈북 학생들을 1대 1로 붙잡고 가르치는 등 국가적인 배려를 해야 한다”며 “아이들이 사회로부터 존중 받지 못한 채 분노를 품고 자라면 이는 결국 한국 사회를 분열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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