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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ㆍ청년ㆍ비정규직 대표가 밝힌 경사노위 보이콧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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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ㆍ청년ㆍ비정규직 대표가 밝힌 경사노위 보이콧 이유

입력
2019.03.07 08:56
수정
2019.03.07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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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회의실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회의실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7일 열리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본위원회 참석을 보이콧한 여성ㆍ청년ㆍ비정규직 대표들이 불참 이유로 노사정의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과정에서 자신들이 배제된 점, 미조직 노동자 보호 장치가 부족한 등을 꼽았다. 이들은 민주노총에 대해서도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경사노위 근로자 위원 4명 중 3명인 나지현 전국여성노조 위원장, 김병철 청년유니온 위원장,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전날 밤 늦게 ‘사회적 대화의 첫 단추, 제대로 꿰어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공동 입장문을 내고 회의 불참 이유를 밝혔다.

이들은 “경사노위 내에서 여성, 청년, 비정규직의 목소리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모으고 제안해 나갈지 고민과 논의를 모아나가던 중 2월 19일 탄력근로제 확대가 합의돼 버렸다”며 “본위원회 위원도 모르는 내용이 경사노위 합의로 발표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조직 노동자들은 실질적 보호를 받기가 어려운 합의안이 고스란히 본회의로 올라와 오직 표결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며 저희는 자괴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3인은 또 “저희 계층3대표는 탄력근로제 확대 합의 건을 계기로 주요 현안 합의에서 계층별 대표들의 참여가 배제되어 있는 점과 합의안에 미조직노동자에 대해 안전과 건강권, 임금보전이 보장되지 않을 우려를 제기하며 반대의사를 표명했지만, 이미 한 합의에 대해서는 변화하기 어렵다는 답을 받았다”며 “주요 의제의 논의와 합의 과정에서 배제된 채 거수기가 되는 구조를 반드시 바꿔야 하겠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이들은 정부와 양대 노총을 모두 비판했다. 3인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경사노위는 정부가 곤란한 쟁점 현안에 대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노사에게 책임을 떠넘겨 해결하는 정부 고충 처리기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이대로는 사회적 대화의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을 두고서는 “전체 노동자의 과반을 훌쩍 넘는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현실이 심각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민주노총도 사회적 대화 기구에 참여해 적극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며 “장외 투쟁만으로 전체 노동자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탄력근로제 확대에 합의해 준 한국노총에는 “사회적 대화를 진전시키기 위해 애쓰는 고심을 잘 알고 있지만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미칠 영향이 정밀하게 검증되지 못한 상태에서 계층별 대표들(3인)이 배제된 가운데 합의가 도출된 것은 아쉽다”고 했다.

다만 이들은 “첫 단추를 제대로 다시 꿰어야 경사노위가 우리 사회의 대안을 만드는 진지가 될 수 있다. 사회적 대화가 가장 어려운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도록 저희도 무거운 책임감으로 최선을 다하겠다”며 앞으로 경사노위 참여 가능성은 열어뒀다.

당초 경사노위는 7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2차 본위원회를 열고 탄력근로제 확대 안건 등을 의결하려 했지만 이들 3인의 보이콧으로 무산됐다. 경사노위 법에 따르면 안건 의결을 하기 위해서는 사용자 위원과 근로자 위원이 각 2분의 1 이상 출석해야 하는데 총 4인 중 3인이 빠지며(나머지 1인은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출석 요건을 채우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참여와 불참을 두고 막판까지 고민하던 이들이 불참으로 기운 것은 입장문에서 밝힌 이유 이외에도 민주노총 등 장외 투쟁 세력의 입김이 한 몫을 했다. 장외 투쟁 세력은 이들의 본위원회 참여를 막기 위해 “청년 등을 대신해 탄력근로제 개악에 동의해줄 대표성이 있냐”면서 3인을 압박하고 경사노위 회의실 점거, 온라인 서명 운동 등에도 나섰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7일 오전 11시 이번 사태에 대한 입장과 향후 계획을 밝힐 예정이다.

 

 

 ◇계층별 대표 3인 입장문 전문 

사회적 대화의 첫 단추, 제대로 꿰어야 합니다

- 경제사회노동위원회 2차 본위원회 회의를 불참하며 -

2019년 본회의를 하루 앞둔 오늘 여성/청년/비정규직 계층별 대표 3인은 무거운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힙니다.

작년 11월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야심차게 출범하였습니다. 불평등 양극화 사회가 심각해지고 있는 현실에서 사회적 대화가 내실 있게 추진되어야 한다는 목표 아래 불안정 노동 계층인 여성, 청년, 비정규직 대표가 본 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저희가 각 계층을 대표하는 본 위원으로 위촉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계층별 대표란 이름으로 경사노위에 참여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환상적 기대를 했던 건 아닙니다. 그럼에도 저희 3단체는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을 오래전부터 느껴왔으며, 한 번에 커다란 변화가 이뤄지지 않을지언정 어떻게든 사회적 대화기구 안에서 여성, 청년, 비정규직의 목소리를 내고 양극화 해소를 위해 기여하겠다는 의지로 경사노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경사노위 내에서 여성, 청년, 비정규직의 목소리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모으고 제안해 나갈지 고민과 논의를 모아나가던 중 2월 19일 탄력근로제 확대가 합의되어 버렸습니다. 저희 3단체는 언론의 속보를 통해서 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위원회 위원도 모르는 내용이 경사노위 합의로 발표되었습니다. 사실 탄력근로제를 논의하는 문제는 미조직 노동자들에게도 중요한 사안이기에 1차 본회의에서 노동시간개선위원회에 계층별 대표 1인의 위원 참여도 제안했지만 거부되었습니다. 탄력근로제 확대가 합의되는 과정에서 계층3대표는 아무런 개입도 할 수 없었고, 미조직 노동자들은 실질적 보호를 받기가 어려운 합의안이 고스란히 본회의로 올라와 오로지 표결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며 저희는 자괴감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희 계층3대표는 탄력근로제 확대 합의 건을 계기로 주요 현안 합의에서 계층별 대표들의 참여가 배제되어 있는 점과 합의안에 미조직노동자에 대해 안전과 건강권, 임금보전이 보장되지 않을 우려를 제기하며 반대의사를 표명했습니다. 사회적 대화가 올바르게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과 탄력근로제 확대 합의와 같은 일이 또다시 반복되어선 안 된다는 절실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제기과정에서 이미 한 합의에 대해서는 변화하기 어렵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주요 의제의 논의와 합의과정에서 배제된 채 거수기가 되는 구조를 반드시 바꿔야 하겠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탄력근로제 확대에 그치지 않습니다. 최저임금 결정구조 이원화를 강행하면서 30여 년 동안 유일하게 작동해온 작은 사회적 대화 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를 무력화시켰습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3단계인 민간위탁 관련해 정규직화를 포기하는 정책 방향을 발표했습니다. 진작에 정부가 매듭지었어야 마땅한 ILO 협약 비준을 빌미로 노동기본권 문제를 경사노위에 떠맡겨 협상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경사노위라는 사회적 대화 기구에서 가장 힘이 센 행위자는 정부입니다. 정부가 디딤돌이 되느냐 걸림돌이 되느냐에 따라 경사노위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묻고 싶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에게 사회적 대화란 무엇입니까. 90% 미조직 노동자들의 이해대변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통령께서 자문기구인 경사노위에 힘을 실어주었지만 현실은 우려스럽습니다. 경사노위는 정부가 곤란한 쟁점 현안에 대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노사에게 책임을 떠넘겨 해결하는 정부고충처리기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대로는 사회적 대화의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아직도 경사노위에 들어오지 않고 있는 민주노총은 자신의 사회적 책무를 제대로 다해야 합니다. 전체 노동자의 과반을 훌쩍 넘는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현실이 심각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민주노총도 사회적 대화 기구에 참여하여 적극적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장외투쟁만으로 전체 노동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기 어렵습니다. 노동계의 주요한 일원으로 민주노총이 제몫을 해줄 것을 요청 드립니다.

저희는 사회적 대화를 진전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한국노총의 고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미칠 영향이 정밀하게 검증되지 못한 상태에서 계층별 대표들이 배제된 가운데 합의가 도출된 것은 아쉽습니다. 계층별 대표들이 논의에서 배제되고 결정만 함께 책임져야 한다면 곤란합니다. 이번 탄력근로제 합의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가 재발되지 않도록 반드시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한국 사회 양극화는 임계점을 넘어선 지 오래됐습니다. 남북관계가 아무리 개선되더라도 민생의 핵심인 취약계층 노동자들과 영세자영업자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언제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저희는 경사노위가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대화 기구로 안착되길 열망합니다. 그래야 노동인권 사각지대에서 일상적으로 차별받고 고통 받으며 남몰래 눈물 흘리고 있을 익명의 노동자들을 대변해야 하는 저희의 역할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첫 단추를 잘못 꿰면 옷이 비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첫 단추를 제대로 다시 꿰어야 경사노위가 우리 사회의 대안을 만드는 진지가 될 수 있습니다. 사회적 대화가 가장 어려운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도록 저희도 무거운 책임감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19. 3. 6.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여성 대표 나지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청년 대표 김병철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비정규직 대표 이남신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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